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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Dec 01. 2020

한국 축구 발전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했던 대회


한국 축구 한 해를 결산하는 아마추어 성인 축구대회로 전통적으로 11월에 열려 왔으며 2001년부터는 FA컵에 통합되었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실업·대학을 망라 전국의 모든 성인 아마추어팀이 출전하여 (…) 국내 축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매년 연말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올해(1996년)로써 제51회째를 맞고 있는데, 반백년 연륜을 거치며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 배출과 한국이 세계 축구와 어깨를 겨룰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해준 대회기도 하다.


두 글은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설명하고 있다. 위 글은 대한축구협회가, 아래는 언론사『중부매일』이 1996년 11월 남긴 소개 글이다.


"2001년 FA컵에 통합되었다"는 설명은 현재 협회가 운영 중인 FA컵과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공통점이 있었음을 뜻한다. 만약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면 대회를 그냥 폐지해 버리지, 통합하지는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부터 열린 전조선축구대회와 해방 후 1946년부터 열린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전신으로 한다.


협회가 현재 운영 중인 FA컵을 소개하는 글이다. 연관성을 밝혀 놓고 있다.






축구 발전 5단계 흐름을 구현했던 대회


세계 최초로 FA컵 대회를 만든 잉글랜드의 축구 역사를 간략히 돌아보자.


축구 규칙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A)가 창립됐다. (1863.10)

협회는 FA컵(FA Cup, 축구협회컵) 대회를 통해 자신들이 만든 축구 규칙을 전국으로 보급했다. (1871.11)

대회는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규칙 정립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고, 전국으로 축구 저변이 확대됐다.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나타났고 이들에게 웃돈을 주는 행태가 생겨났다.

부정선수였지만, 대세로 자리 잡으며 축구선수라는 직업이 만들어졌다. (1885.7)

이후 잉글랜드 북부와 중부 클럽팀이 모여 세계 최초 프로리그, 풋볼리그를 만들었다. (1888. 9)


프로리그는 FA컵을 주관하던 잉글랜드 축구협회 규칙으로 운영됐다.

기존 FA컵과 새로 생긴 프로리그는 규칙이 같아 '호환성'이 있었다.

프로팀들은 기존 FA컵과 프로리그 모두 참가할 수 있었다.

FA컵은 프로화 이후 아마추어팀과 프로팀이 모두 참가하는 대회가 됐다.

"아마추어팀과 프로팀 모두 참가할 수 있는 토너먼트 축구 대회"라는 설명이 붙은 배경이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1946년부터 이어졌고, 한국에 프로리그가 처음 출범한 건 1983년이었다.

1983년 이래로 한국은 전국축구선수권대회와 프로리그를 함께 운영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처럼 곧바로 프로팀과 아마추어팀이 모두 참가하는 대회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변화가 나타난 건 5년 후인 1988년이었다.



FA컵 축구 15일 개막 프로·실업 등 42팀 참가(경향신문, 1988.11.10)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개최를 알리는 기사다. 결승전에서는 럭키금성과 대우 로얄즈가 만난다. 둘 다 프로팀이었다. 럭키금성이 우승을 차지했다. 기존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프로팀이 참가했었다.


대회 이름을 이미 축구협회컵, 'FA컵'으로 칭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FA컵이라는 말 자체가 축구협회컵을 뜻한다. 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FA컵(축구협회컵)이라는 이름이 붙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대회 명칭을 FA컵으로 썼다는 점보다는, 기존 대회에 프로팀도 참가하는 외연 확대가 이뤄졌다는 데 요점이 있다.



 "조직 창설 - 대회(FA컵)를 통한 규칙 정립 - 저변 확대 - 직업선수(부정선수) 출현 - 프로화 및 리그 창설"


축구 발전 5단계 흐름의 마지막 단계인 프로화 및 리그 창설이 1983년 이뤄졌고, 1988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는 프로팀도 참가했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아마추어 대회로 시작해 프로팀도 참가하는, 축구 발전의 마지막 5단계를 완성한 한국의 FA컵이었다.


(앞선 단계는 일제강점기 있었던 전조선축구대회에서 구현됐다. 관련 내용은 대한민국 FA컵의 뿌리는 따로 있었다. ② 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1년 11월. 제36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고려대 : 건국대)을 찾은 축구팬. 프로 출범 전 실업팀, 금융팀, 대학팀 등이 참가했다. 
1988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한 럭키금성. 기존 대회에 프로팀이 참가하는 외연 확대가 이뤄졌다.





의문. 그런데 왜 대회는 FA컵에 통합됐을까?


대회 배경을 확인하고 나니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2001년부터는 FA컵에 통합되었다"는 설명이 어색하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이미 FA컵 기능을 하고 있었다. 

기존 대회를 두고 왜 'FA컵'이란 이름으로 하는 별도의 대회를 만들었을까? 

여기서 말하는 FA컵은 1996년을 원년으로 하는, 현재 대한축구협회가 운영 중인 FA컵 대회를 말한다.



1946년부터 시작된 전국대회는
1983년 프로리그 출범 이후 아마추어팀만 참가했기 때문에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국내 축구 챔피언을 가리는
토너먼트 대회를 정식으로 창설하기로 하고 1996년 제1회 FA컵을 개최했다.



대한축구협회가 밝힌, 현재 운영중인 FA컵 창설 배경이다.

"1983년 프로리그 출범 이후 아마추어팀만 참가했기 때문에 의미가 퇴색되었다."

앞서 1988 대회에서 확인했듯이, 이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1988 럭키금성, 1989 대우 로얄즈, 1990 대우 로얄즈. 3개 대회 연속으로 프로팀이 우승을 차지했었다.


석연치 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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