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만의 강점 5가지와 을이 갑을 대하는 업무 노하우 5가지
내 꿈은 '갑'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가 힘겨워질 때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주 하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갑과 을로 나눌 수 있을만큼 세상에는 무수한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갑을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갑을 관계는 원래 계약 진행 시 계약 당사자를 지칭하는 법률용어 '갑(甲)과 을(乙)'에서 사용되던 개념이었다. 별도의 상하위 개념이 없이 단지 계약 당사자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차원에서 사용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과 '을'은 상하 관계, 주종 관계로 사용되고 있다.
기업에서의 고용주와 고용자, 상사와 부하 뿐만 아니라, 기업 대 기업에서의 대기업과 하청업체, 발주처와 대행사에게도 갑과 을의 개념을 적용하고, 심지어 연인관계, 부부관계에서도 갑과 을의 관계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갑과 을은 계약서 상에서의 계약 당사자를 나열하는 단어를 넘어서서 일종의 '권한'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할 수 있겠다. 주로 갑은 본인이 가진 권한을 활용하여 을에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을은 갑에게 그에 따른 대가를 받고, 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때론 갑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을을 착취하는 옳바르지 않은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업무를 하게 되면 때론 갑의 자리에 있게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보다 을의 자리게 있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나또한 현재 하고 있는 업무의 특성상 대부분 을의 입장에서 일하고 있다. 쉽게 말해 '대행사'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을의 입장에서 일하는 것은 확실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을이라면 일단 갑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왠만하면 모두 다 응해야한다. 내 생각과 달라도 갑이 원하는 요구에 따라야 하며,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어떻게 해서든 도출해야 한다. 때로는 무리한 일정과 무리한 업무 요구에도 응해야 한다. (이 시장에서는 무리한 요구사항도 무조건 해오는 대행사가 환영을 받는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주체적으로 업무 일정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 시간과 내 몸은 내 것이 아닌 '갑님'의 것이다. 갑의 갑작스러운 요구로 계획되어 있던 퇴근 후 일정, 주말 일정을 변경해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없음에 삶의 만족도 또한 낮아지게 된다.
조절력 인식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 도서 <성격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을로써 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모든 것을 참아내야 하는 이유는 '갑'은 돈을 쥐고 있으며, 을은 비용을 받고, 그에 따른 인력, 재화 등을 제공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로 일하면서 을인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갑은 쉽게 얻기 힘든 자산 5가지를 얻었다.
1. 전문성
실무 차원에서 보면, '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을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반화 할 수 없는 정의이다.) 을은 제안부터 시작해서 계약, 기획, 운영, 그리고 결과 보고까지 A부터 Z까지 참여하게 된다. 전 과정을 겪으며 문서 작성 및 현장 실행, 보고 등을 가장 근거리에서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획득하는 노하우는 을만의 값진 자산이 된다. 전문성은 결코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상에서 학습한 지식과 현장 경험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라는 자산을 더한다면, 실무 현장에서 힘있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진정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갑도 관리자가 아니라면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를 경험하고, 그에 따른 전문성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을의 전문성은 업무의 가장 근거리에서 마이너한 부분까지 경험한 노하우가 더해졌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2. 다양성
갑은 형태, 업종, 분야 등 매우 다양하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수주한 이후에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매번 해당 분야에 대해 심층적인 스터디를 해야한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익힐 수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일할 수 있다.
또한, 을은 새로운 업무에 대한 두려움을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갑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봤기 때문이다. 직장보다 직업의 중요성이 더해지는 현 시대에 더욱 강점이 될 역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3. 커뮤니케이션 능력
을로써 일할 때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된다. 때론, 싫은 소리를 듣고도 참아야 하며, 내가 나이가 많더라도 나이 어린 갑에게는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이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것이다. 을로써 일을 하면 업무를 할 때 나의 관점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에 대해 훈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4. 적극성
개인적으로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강점을 어필하여, 갑의 이성을 깨우고, 마음을 두드려 우리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다른 업체가 가지지 못한 우리만의 필살기를 해당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게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어필해야 한다. 갑들은 을이 가진 전문성을 중요시 여기지만, 그들의 태도, 절실함 등 정성적인 요소들에 더욱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갑들과 지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적극성과 친밀성은 여타 사회생활에서도 매우 도움이 되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5. 갑으로 갈 수 있는 기회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갑이 을이되긴 어렵다. 그러나 을은 얼마든지 갑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을로 일하면서 얻은 실무 노하우를 간단히 공유해본다. 대행사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을의 노하우이다. 업무에서 아래의 노하우를 사용한다면, 업무의 효율을 조금이나마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자. 담당자의 성격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소통한다면 충분히 찰떡 같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시묻기 기법'을 활용하는 것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 주신 말씀은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시죠?"
2. 기획안을 제시할 때 최소 2-3개 이상의 안을 마련한다. 다만, 너무 많은 안들을 제시하면 갑님들이 오히려 선택을 하기 더 어려워하신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안에 조금 더 공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버리는 안은 상대방이 먼저 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3. 처음부터 100%를 하지 않는다. 경험상 거의 대부분의 갑들은 첫 결과물에 대해서 바로 만족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70%정도 해서 보고 후 피드백을 받아 나머지 30%를 추가하든, 방향을 바꾸든 하면 된다.
4. 내부적으로는 플랜 A부터 C까지는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특히 행사 진행시엔 아무리 120% 준비해도 현장에서 변수와 미스가 생긴다. 다차원의 플랜을 마련하고, 상황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처음부터 잘 되진 않지만, 훈련하면 된다.
5.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을로 일할 때 다음의 질문을 늘 염두에 두라. "내가 제안(보고)을 받는 입장이라면, 이 제안(보고)은 만족스러운가?"
+덧붙이기. 을로 일하다 보면 의사결정권이 없고, 아무리 좋은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갑의 의견에 따라 업무 방향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을은 매우 수동적으로 업무를 하기 쉽다. 그렇지만, 수동적인 태도는 프로젝트의 퀄리티는 물론이고, 을의 업무 만족도 또한 떨어지게 된다. 을은 능동적으로 갑이 원할 만한 아이디어나 업무 방식을 지속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을도 반드시 가져야 할 프로젝트에 대한 로열티이며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능동적으로 일한다면 을에게도 분명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든 애착을 가지고, 까이는 것을 두려워 말라.
마지막으로, 갑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을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갑에게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갑이 전문성을 가지지 못하면, 명확한 지시가 없게 되고, 일명 뻘짓, 개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중심을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를 하다보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담당자가 흔들리면 업무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업무의 본질을 파악하고, 내부의 의견들을 잘 조율하고 정리해서 을에게 명확하게 지시할 수 있는 멋진 갑질을 해주길 바란다.
이 세상의 모든 을들이여!!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