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 도전기(2) -필기보단 빌기..

by 김한량

토익시험이 5월에 마무리 된 후 , 두 번쨰로 준비해야 할 것은 필기 과목이었다. 오랜만에 큰 성취를 한 뒤라 공부 하는데에 불이 붙었고 아자 !를 외치며 바로 다음날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후기들을 보면 어렵지 않고 할 만 하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남은 120일 정도는 여유롭게 설렁설렁 하면 붙을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내 몸을 지배했다.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Mike Tyson-



시간은 어찌나 이리도 자비가 없는지 눈 깜짝 할 새에 60일이 지나가 버렸다.

5-6월은 토익 붙고 신나서 솔직히 이미 붙은 것 마냥 따면 앞으로 뭐할까? 라는 설렘을 안고 보냈던 것 같다.

일하면서 앞에 있는 컴퓨터는 세상에 대해 궁금한걸 다 알려주기도 하고

새로운 관심을 유도하는데에도 너무나 완벽했다. 시험기간엔 벽만 쳐다보는 것도 즐겁다 하던가, 그와중에 전자파 덩어리가 내 뇌를 자극해 무한한 도파민을 분출시키니 인생 더 할 나위 없었다. 정신 차려야지..차려야지 해도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공부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운동,공부 다 할 수 있다. 삶의 질이 확 올라가면서도 독서실 가는 습관 들이는게 참 힘들었다. 가도 핸드폰 보는게 너무 재밌고..그 당시 운동은 왜이렇게 재밌는지.. 수영 대회 나갈생각이나 하며 연습하고 그랬다. (물론 아예 공부를 안한건 아님)

그래도 하루에 한두시간이라도 하자라는 마인드로 하다 보니 어느새 약간은 적응이 된 것 같았다.



7월부터는 약간 발등에 불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안함이 조금씩 내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때 부터는 조금은 더 발전된 모습이 되어가는 듯 했다. 퇴근을 하고 11-12시까지는 늘 독서실에 남았던 것 같다. 순 공부시간이 적더라도 어떻게든 있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놀자는 유혹도 최대한 뿌리치며 공부가 되지 않는 날 멍때리면서라도 독서실에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시간 낭비니까 차라리 놀았으면.. 생각도 들긴 하지만, 나름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겠다는 그 태도가 조금씩 변화시킨다고 믿었던 것 같다.



8월에는 거의 뭐 좀비였다. 무한한 지식과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 합격점임에도 하나 틀리면 왜 틀렸지 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운동하는 시간마저 아까워서 공부에 올인하고 하루 순공부 6-7시간씩은 올인 한 듯 하다. 잠도 줄여가며 계속 하다보니 피곤함이 늘 묻어나왔다. 그냥 단순히 일자로 쭉 그어진 표시 자체만 봐도 불안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냥 했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교재를 제외하고 시중 문제집 4권을 더 구매하기도 하고, 최근 5년동안의 기출문제를 다 뽑아서 5번씩은 돌렸던 것 같다. 한국사 과목도 있었는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도 10회분을 따로 두세번씩 돌리면서 풀기도 했다. 그냥 더 이상 풀 문제가 없으면 풀었던 문제의 답을 잊어버리려 노력하고 처음부터 다시 풀었다. 한 달 동안 이걸 무한히 반복되니 몸이 기억되고 약 두 달 가량 검정 볼펜은 3개 이상을 갈아치운 듯 하다.



난 솔직히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기에 그냥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했다. 별 생각 안하고 그냥 했다. 뭐 공부머리 아니면 어떤가. 도전 자체로 아름답고 후회없이 무언가를 해보는 것 자체가 내가 추구하는 삶 아닌가.



그렇게 시험 당일이 되었다. 사실 밤잠을 설쳤다. 꿈만 5개를 꾼 것 같았다. 무서웠다. 가장 자신이 없는 공부이기에 확신이 없었다. 날씨는 왜 그리도 습한지 그냥 좀 답답했다. 머리도 안돌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차를 타고 1시간 전 도착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빠르게 가던 시간이 그날 따라 정말 느렸다. 근데,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안들었다. 그냥 이 시험을 빨리 끝내고 운명에 맡겨보자라는 생각 뿐이었다. 대기를 약 1시간 반 정도 했는데 거의 1년은 절 다녀온 것 같았다. 그렇게 인천소방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다. 낯선 장소가 좀 더 펜을 쥐는걸 어색하게 만들었다. 제발 높은 점수는 기대도 안하니 과락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평생 믿어보지도 않던 신을 한 번쯤 믿어볼까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조그만 교실 속에서 믿을건 나 하나밖에 없었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첫 페이지를 받았다.



마이크 타이슨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1번 문제부터 헷갈려서 동공은 요동쳤다. 그리고 문제들을 그냥 촤라락 넘겨보는데 여태 공부한 것보다 난이도도 상당히 어려웠고 범위가 아니었던 것도 상당히 많이 나왔다. 눈물 찔끔 나오려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라는 심정으로..(내가 베임) 임했다. 낯선 문제들 천지 속에서 진주같은 문제들은 확실히 내가 아는 문제들이라 안심하고 풀었다. 풀면서 검토만 2-3번은 하고 약 40분정도 시험장에서 일찍 나왔다. 사람들이 올린 후기도 참 궁금했다. 그런데 역시..난이도가 역대급이었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작년,재작년 기출은 유난히 쉽다고 느끼고 용기를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좌천된 듯 하다..ㅎㅎ



차를타고 돌아가는 길에선 그냥 신세어린 한탄을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풀며 응원과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냥 떨어지면.. 세상 한 번만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지 뭐..하며 친구들을 엄마 부동산에 집결시켰다(?) 새로운 도파민 컨텐츠가 시작된 것이다.

가채점은 시험이 끝난 후 약 3-4시간이 지난 오후 2시부터 가능했는데 그때까지 수다나 떨며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때부터 온갖 실패와 성공, 희노애락을 겪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같이 이런 과정을 공유하는게 너무 재밌었다.

내가 답을 불러주면 친구가 채점을 해줬다. 근데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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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과목을 제일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76점 완전한 합격권 !(국사는 40%배점)

이어 차례로 다른 과목들을 채점했는데 이미 국사에서 선방을 해서 합격할거라는 믿음과 동시에 놀란 표정은 다시 넣어두었다.

되긴 하는구나.



평균 60점이 넘어야 하는데 안정권이어서 다행이었다. 그 날엔 주변인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다같이 기뻐하는 날이 되었다. 마치 전부 합격한 것 처럼..(면접 남았는디..)



그래도 오랜만에 또 무언가를 이뤄낸 것 같아 행복했다. 점점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내가 만들어지고 , 나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인 듯 하다.



이제 마지막 관문 면접은 다음 글에.




나무들아 미안해..(이미 저것들의 절반 되는 양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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