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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책,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육아 경력 5개월 만에 찾은 루틴

by Lanie

새벽 4시 40분, 아기가 울며 맘마를 찾았다. 끊은 줄 알았던 새벽수유가 다시 시작되나 싶었는데, 분유 한 병을 원샷한 아기의 눈이 말똥말똥하다. 이런, 새벽수유가 아니라 아침밥이었다.


다행히 수유를 하면서 내 잠도 깼다. 원래는 남편과 아기를 함께 씻기고, 아기를 재우고, 그렇게 육아퇴근을 하고 나서야 나도 씻고 잘 준비를 했지만, 며칠 전부터는 그냥 아기 씻길 때 나도 씻어버린다. 아기를 다 재우고 나서 씻으려면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아기를 재우며 나도 함께 눕는다. 그렇게 해야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아기가 잠에서 깨더라도 나도 아기와 함께, 피곤하지 않게 하루를 시작할 수가 있다.


밤잠을 푹 자고 난 아기는 아침에는 유독 컨디션이 좋은지 혼자서도 잘 논다. 아기가 보채기 전까지 집안일을 대충 해놓는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보습을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언제든지 외출할 수 있는 옷으로 갈아 입어 놓는다. 육아를 해보니 집에 있더라도, 바로 나가지 않더라도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상태"로 있는 게 중요하다. 아기가 언제 신호를 보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준비하면 늦다.


아기는 집에서 어느 정도 놀고 나면 심심해졌다는 뜻인지 돌고래 소리를 내고 보채기 시작하는데, 그때 이제 데리고 나가면 된다. 참 신기하게도 밖에만 데리고 나가면 언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냐는 듯 조~용해져서는 얌전한 아기 코스프레를 시전한다. 그러면 동네 할머니들은 "아이고, 아기가 어쩜 그렇게 순해?", "울지도 않어.", "이런 애면 열이라도 키우겠다." 하신다. (네, 집에 데리고 가 보세요 ㅎㅎ) 그렇게 두리번두리번 바깥 구경을 열심히 하다가 낮잠에 든다.


산책 중에 잠든 아가




6시 즈음, 4시 40분에 일어나 이미 한 차례 먹고 논 아기의 첫 번째 낮잠을 재우러 산책을 나갔다. 새벽, 혹은 이른 아침 산책의 좋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이렇게 아기를 데리고 나가주어야 어제 밤늦게까지 공부한 남편이 한 시간이라도 더 편하게 잘 수가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거실에서 아기 보채는 소리가 나면, 아무리 배우자가 이해해 준다 해도 늦잠을 자거나 쉬는 게 편하지 않다. (내가 늦잠을 자거나 혼자 잠깐이라도 쉬도록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나가줄 때도 있기 때문에 그 마음 불편함을 잘 안다.)


둘째,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심인데 이렇게 새가 많았나, 싶다. 아마 새들은 언제나 그곳에서 지저귀고 있었겠지만 해가 떠오를수록 거리에 가득 차는 차소리에 묻혀 그들이 그렇게 있는 것을 몰랐다.


셋째, 신선한 새벽공기를 맛볼 수 있다. 이 건 뭐니 뭐니 해도 새벽산책의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이른 아침에 우유를 사러 잠깐 편의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얼마나 좋던지... 내가 이 좋은 걸 놓치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깊어올수록 새벽 공기는 더욱 빛을 발하는데 시원한 자연 바람을 그 시간 아니고서야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히나 무더운 여름에 장마철 한가운데였지만 빗물에 씻긴 새벽공기가 유독 시원했다.


넷째,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도록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이른 시간 산책길에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 같지만 큰 오산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어찌나 부지런히도 사는지, 이른 새벽부터도 벌써 운동 나온 사람이 꽤나 많다. 그렇게 나 말고도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


나의 산책길, 새벽의 정릉천 풍경.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운동중이다.




그렇게 여름 새벽공기를 즐기며 산책을 다녀오니 이제 남편도 일어나 육아할 태세를 하고 있다. 나는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우리 부부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여유 있게 아침도 먹었다. 오늘은 화요일, 남편과 시어머니가 육아를 하고 나는 공부를 하는 날이었다. 아기가 두 번째 낮잠에 들려할 때쯤, 집을 나서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사는 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며 5개월을 지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역할과 생활이 완전히 뒤바뀌고,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갈등하던 시간을 지나 일상의 루틴이 잡히기까지. 육아라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나도 챙기고, 남편도 챙기며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유지하는 지혜를 터득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앞으로도 이걸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적지 않게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오늘 아침이 꽤 행복하길래,

이 평범한 아침의 행복을 기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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