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그람 Jan 08. 2024

편지글의 시대로 들어서다.

'바르트의 편지들'을 시작하며.

'바르트의 편지들'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을 연구한 학자로 알고 있다. 대학교때는 수업시간에 이미지 분석에 대한 그의 짧은 글을 읽어보았었고, 나중에 사진을 배울때 읽은 '밝은 방'이라는 책은 내게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할지에 대해 많은 울림과 지침을 준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그와 같은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그의 사후에 그가 주고받은 편지글의 묶음이 출간되었고, 이번에 그 책을 같이 읽을 기회가 생겨서 참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책은 작가가 독자에게 읽혀질 것을 고려해서 쓰여진다. 이 책 속의 편지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가 살아 있을 때, 다른 누군가와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그의 사후에, 그의 허락없이(바르트 생전에 허락을 구했을수도 있겠지만) 읽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예전에 독일독서토론방송에서 잉에보르크 바흐만과 막스 프리쉬가 주고받은 편지가 사후에 출간되었을 때도 비평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개인적인 글이라 읽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고, 사후이기에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별로 문학적이지 않아보이는 글은 가치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런 글에서도 작가들의 문학적인 면과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둘에 대해서 이름만 들어봤을 뿐 잘 모른다.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이 책을 읽기로 했으니 나는, 책이 내게 어떤 감흥을 주는지를 보면서 판단을 유보하고자 한다. 우리 인생에서 많은 부분은 이렇게 결과론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편지'라는 형식의 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도 90년대에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친구들과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 현재 내가 편지를 주고받지 않게 된 것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더이상 손으로 쓴 편지를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결혼식에 찾아준 지인들에게와 같이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때 선택한 방법도 편지였는데, 그것은 지금은 편지가 거의 쓰지 않기에 그래서 더 특별해보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효과도 좋았고 말이다. 하지만 바르트가 살아간 시대는 달랐다. 전화조차 널리 퍼지지 않았던 시대에 편지는 지인들과 연락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책에서의 편지는, 바르트를 들여다볼 좋은 기회가 될 뿐더러,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전의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바르트의 생에는 1915년에 시작해 1980년에까지 걸쳐있는 것으로 안다. 편지가 시작된 1930년대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시기이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로, 현재 읽고 있는 다른 책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나의 인생'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의 인생'을 먼저 시작했기에, 유럽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두 나라에서, 한쪽에서는 거리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이에, 다른 한쪽에서는 그 일을 인지하고 있을지, 당시에 분위기는 어땠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많은 이들이 기차를 타고 죽음의 수용소로 옮겨지던 1942년 무렵, 프랑스의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던 바르트도 전쟁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그는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뿐아니라 무력감으로 괴로워한다. 전쟁에 대한 언급은 자세하지는 않지만 여러곳에서 나온다. 나는 현재 이 시대에 자행되는 전쟁과 공포, 비인간적인 행태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자문하게되기도 다.



초반의 편지들을 보면 바르트를 괴롭힌 것은 전쟁의 그림자보다도 자신의 나약한 신체, 그가 오랜기간 고통받았던 병, '결핵'인 것 같다. 평생을 왕성하게 탐구하고 연구하고 글을 썼을 그는 20대에 결핵으로 오랜시간 요양원에 입원해있었던 걸로 보인다. 몸이 아프고, 그에 따라 정신이 나약해지고,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없을 때 어떤 기분일지는 나도 경험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그가 몸이 회복되었을 때는 어떤 글이 이어질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한가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그가 매 편지마다 친구를 그리워하고, 답장을 기다린다고 하고 하는 말들은 당시에 흔히 편지글에서 쓰이던 예의상 말인가, 아니면 실제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 당사자와 각별해서 그랬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부분도 좀 더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