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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16. 2023

우울하던 엄마는 그렇게 작가가 되었다

엄마의 삶에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위한 책, '질문이 될 시간' 임희정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가 되는 이야기. 실제로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이제껏 무엇을 말하고 무엇은 말해지지 않았는지를. 나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진료를 받고 출산을 하고, 그 뒤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가슴을 열어서 젖을 줘야하는 시간들. 젖몸살로 가슴을 도려내고 싶은 고통, 출산 후에 찾아오는 몸의 이상한 질병들, 우울감. 결코 아름답게 포장할 수 만은 없는 이 시간들에 대해서 나의 엄마에게 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 없이 나는 임신과 육아에 던져지게 됐다. 첫째를 낳고 신생아 시기가 사실 육아를 하며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때의 망망대해에 혼자 풍랑을 만난 것 같은 막막함은 아직도 내게 절망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누구도 나를 심적으로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던 그 순간이 말이다.


임희정의 '질문이 될 시간'에서 작가는 그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보냈던 시간 속의 고통과 분노와 슬픔과 우울, 기쁨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적고 있으며, 나와 같은 다른 엄마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속에 끄집에 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책 곳곳에 엄마와 엄마에 대한 인용문은 그녀가 얼마나 엄마의 이야기에 몰두하며 찾아다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나도 바로 그러한 엄마의 이야기를 찾고 있었던 덕분에, 내가 읽고싶은 책의 목록은 길어졌다.


개인적이고 촉촉한 에세이를 기대하며 책을 시작하던 내게, 서문에서 '우리가 힘을 합치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설픈 영화의 얼버무린 해피엔딩 같이 느껴져서 좀 의아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얼마 넘기지 않고 나온 출산의 실상, 통계자료 등을 보고, 책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이야기거리가 떨어져서 페이지를 늘리기 위한 수법을 쓰는 것인가 싶었다. 끝까지 읽어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그녀가 절절히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도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진정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의쌰의쌰 대충 얼버무린 해피엔딩 같은 말이 아니었다. 육아의 실상을 알리고, 왜 젋은 사람들이 아이 낳기를 꺼릴 수 밖에 없는지를 알리며,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육아 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세상에, 정치인들에게, 입법자들에게 알려서 진정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진실되고 절절했기에 책은 내게 울림을 줄 수밖에 없었다.


10년 경력의 프리랜서 아나운서였던 작가는 오랜기간 연애하던 남자친구와 30대중반에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곧바로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작가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아이는 좀 더 미루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가 36살이던 때에 임신을 결심한다. 1년에 절반 정도밖에 배란이 되지 않는 생리불순을 겪었던 그녀는 임신이 잘 되지 않아 난임 병원에도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운좋게 자연임신이 되었고 열달을 품어 엄마가 된다.


배가 불러오고 직장에서는 배부른 아나운서를 원하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입덧을 겪고, 임신중 가려움증이라는 임신소양증을 겪으며 임신기간을 보냈고, 출산 후에는 젖몸살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내가 만약 이런 것을 겪어보지 않았더라면, 누구나 겪는 거겠지하면서 가볍게 넘길 페이지일지도 모르겠다. 몇 달, 몇 년의 시간에 걸친 고통이 몇 페이지에 서술이 된 것을 보면 그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일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직장내에서의 고통이면 일을 그만두면 되고, 사람사이의 갈등은 만남을 피하면 되지만, 혹은 대부분의 모든 일은 잠시 인내하면 지나가버릴 만큼 시간적으로는 짧은 기간 지속될 뿐이지만, 출산과 육아에서 오는 고통은 훨씬 장기간 지속되고,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고, 잠시 멈출수도 없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다. 삶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없어지지 않으면 이 끝없는 고통이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출산 후에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출산 직후에는 호르몬으로 인해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고 들었다. 2주 뒤에도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보아야 한다고 들었다. 작가는 산후 7개월쯤 병원에 찾아갔고, 자신에게 맞는 의사와 약물을 찾아다니는 긴 과정 속에서 14개월쯤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의사는 출산후 30개월 쯤에 만남 것 같다. 그녀는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즉시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고통에 둔감한 나는 우울감을 느꼈지만, 끝내 병원 문턱을 넘어보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때 집근처 정신과를 검색하며 전화를 걸어본적도 있기는 했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남 앞에서 울 자신이 없었다. 나의 답답함, 고통을 이야기하며 울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그만두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힘든 시간을 나는 잘 견뎌냈구나 싶어서 대견하고도 미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를 바란다. 비록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세상엔 나보다 용기있는 사람이 많을테이까 말이다.


그녀가 산후우울증을 극복한 방법중에 하나가 글쓰기였다. 아이를 돌보며 시간이 날때마다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책 중간중간의 인용문에서도 수 많은 여성작가들이 육아를 하며 보냈던 시간동안의 감회를 글로 풀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읽었던 또 다른 엄마작가인 아넷맘 '김아영'의 경우에서도, 그녀는 가장 힘들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엄마들은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과정에서 그들의 고통은 치유가 되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행위이다. 생각을 하고, 그것을 자판을 두드려 문장으로 풀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면서도 생각을 할 수 있고, 아니 그 동안에는 다른 때보다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은 쉽지만은 않겠지만 조금의 짬을 내기만 하면 된다. 아이를 맡기고 어딘가에 갈 필요도 없고, 돈을 벌지 못하는 처지에 부담스럽게 돈을 낼 필요도 없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어떻게 엄마를 치유했을까. 나는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피로감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도 나를 공감하는 사람이 없다는 그 고독감과 외로움이 나는 가장 힘들었다. 러한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다른 이에게 읽혀짐으로 해서 공감을 얻고 위안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나의 첫 아이를 출산해서 신생아를 돌본지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는 초저녁에 졸릴 때를 놓쳐버리면 몇 시간을 자지러지게 우는 기질이었다. 초반에는 그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잘 몰랐다. 그래서 늦은 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이웃들을 깨울까봐 조마조마해하며 달래고 있는 엄마와 내게, 자다가 나온 남편이 "왜 애 하나 달래지 못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던게 기억이 난다. 우는 아기를 매고 집밖으로 나가야하는지, 나는 난감함과 절망감에 휩싸였다.


엄마도 내게 큰 지지가 되어주지 못했다. 당시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엄마가 한달동안 우리집에 머물러 있었다. 막 신생아를 병원에서 데려온 내게, 내가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를 먹이고 하는 와중에 조금이라도 어설픈 모습을 보일때마다 엄마는 농담처럼 "엄마 맞아?"하는 말을 뱉었다. 다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더라도 나의 엄마만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되는 그 말을 엄마가 뱉어내는 순간 엄마와의 심적인 거리는 너무도 멀어져갔다. 그때부터 엄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나를 염려하면서 했던 말들은 사실 내가 좀 더 '잘' 아기를 돌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좀 더 잘 먹어서 많은 모유를 만들어서 아기를 잘 먹이고, 내가 나를 좀 더 잘 돌보아서 건강해져야 아기를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보다 아기가 먼저였고, 나는 아기를 돌보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런 것은 엄마가 나를 출산 하자마자 '에미'라고 불렀던 호칭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나는 그 호칭에 진저리를 쳤지만, 부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에미라는 호칭을 다시 내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엄마에겐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와 남편조차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너무도 외롭게 만들었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는 내가 한 선택이었기에 나는 불만없이 견뎠다, 아니 그래야했다. 남편이 거의 대부분 지방에서 일을 하며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인 순간들을. 그리고 멀어서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지만, 일부러라도 나는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나는 이를 갈았다. 아이들이 커서 자유로워질 때, 나는 당신들의 고통을 모른척 할 것이라고, 내 마음을 분노로 채웠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이 생겼다. 아이들은 내 편이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힘든 시간 내 곁에 있어주었다. 셋째를 임신하고 입덧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 아이들은 내게 와서 배를 문질러주었다. 그럴때면 웃음이 나고, 입덧은 거짓말같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의 힘든 시간에 대한 보상이 그렇게 조금씩 새벽의 여명처럼 내 삶에 찾아왔다. 곧 있으면 내게 미래의 지원군이 하나 더 생길 것이다. 세상 속에 오롯이 혼자였던 내가 왜 엄마가 되었는지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세상 속에 든든한 내 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내 편을 원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의 몸과 마음이 아이들의 사랑으로 채워지면서, 가슴속의 분노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지난날에 했던 표독스러운 결심은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 남편이 나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조금 조급했고, 무엇을 보아야할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제는 잘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내가 힘든 얘기를 할때, "나도 힘들어"라고 이야기 할때면, "이럴때는 그냥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공감을 해주면 되는 거야."라고 말이다. 매번 이렇게 말해주니 남편도 조금 바뀌었다. 지금은 무언가 이야기하면 조금은 공감을 더 잘 하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주 깊은 곳의 이야기는 나도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다. 그녀들은 어떻게 치유되었을까? 내 생각이 활자화 되었다는게 왜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일까. 내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지만, 또 누가 읽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힘이 들다고 이야기하고, 그래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적은 것들은 나의 존재를 드러내어 준다. 사라져가는 나의 존재가 없어지지 않을 활자가 되어 백지를 채워가고 있다는 것은, 그래도 내게 작은 위안이 된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질문의 시간'을 읽었을 때처럼 눈물이 흘렀고, 눈물이 멈추자 피가 나던 가슴 속의 상처는 딱지가 앉았다. 글을 쓰면서 피가 나고 딱지가 앉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덧 나는 더 단단해지고,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있지 않을까. 어제보다 나를 사랑하는 인간이 말이다.




딸아. 너는 나의 가장 깊은 이야기다. 너는 내 몸 가장
깊숙한 자궁에서 탄생한 이야기다. 널 품고 난 더 좋은 사람이자,
쓰는 사람이 될 임무가 생겼다. 기록하는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내 남은 생의 미션이다.
'질문이 될 시간', 임희정 1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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