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그람 Dec 17. 2023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

흰 백지를 채워나갈 나의 이야기를 위해

새로운 이를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거나 하는 등의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면 자극을 받게되고, 나는 그런 자극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새롭게 자극을 받을 일이 없었다. 앞에 언급한 새로운 경험을 할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해도, 예를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 나는 '아이엄마'라는 틀에 규정지어져 나를 보는 시선에서 뭔가 나를 일깨우는 자극을 느끼기란 어렵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러니 하게도 내게 새로운 자극을 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유튜브로 알게된 아이 넷의 엄마 '아넷맘'이다. 뉴질랜드에서 아이넷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워킹맘인데, 남편이 파일럿이라 거의 아이들을 혼자키운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인 것 같다. 유튜브에는 그런 그녀가 뉴질랜드에서 일하며, 아이키우며 겪는 고충에 대해 올려놓았고 나는 그것을 그냥 가벼운 공감과 재미를 느끼며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올라온 영상을 보고, 나는 그녀가 이미 책을 두권이나 출판한 '출판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열정이나 그런것보다  질투심, 시기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처럼 대기업에 다녔다거나 세쌍둥이를 키우고 있다거나 하는 화려한 이야기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삶으로 보면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엄마로 보이는 그 사람이 책을 두권이나 썼다니? 난 그 책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첫번째 책인 '어느날 갑자기 벼락엄마'는 절판된 책이라 구하는데 손품이 좀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살 수는 있었고, 두번째 책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둘다 크게 차이는 나지 않았다.


첫번째 책은 자신이 남편을 만나고 아이 넷의 엄마가 된 과정을 좀 더 시간 순으로 적은 책이고, 두번째 책은, 엄마가 된 과정보다는 엄마이면서 그녀의 새로운 꿈인 '작가'를 향해 하는 과정에 약간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생각보다 글을 잘 쓰고, 책들이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내 인생책이라 할 정도로 내게 감명을 주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글은 작가라는 지위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듬어져 있었고 전체적으로도 잘 엮여 있었다. 그랬기에 한권의 책으로 출판이 되어서 나온 것이리라. 물론 대기업에 다니다 퇴사한 아이넷의 엄마라는 점은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키기에 좋은 배경이지만, 그것만으로 책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그녀가 아이 넷을 키우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직장을 다니지 않아서 새로운 무언가로 찾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이직 제의가 왔음에도 거절하고 작가의 길을 가려고 할만큼 그녀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이제 거의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며 없어져가는 '김아영'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한번 꽃피울 수 있는, 아니 이제까지와는 달리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성공한 작가가 아니어도, 글쓰기로 큰 돈을 벌지는 못해도, 잘 구성된 글 하나가 무엇보다 그녀를 잘 대변해주고, 그녀를 가치있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렇게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이리라.


하루종일 일하고 아이들 돌보며 늦은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 그녀가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모습은 내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하루의 절반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으면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너무도 대비가 되었다. 나도 그녀와 같이 내가 엄마일 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나도 무언가 창작활동을 해보고 싶은데, 나도 무언가에 몰두해서 정신없이 빠져들어보고 싶은데, 나는 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다시 시작한 것이 독일어로 책읽기였다. 최근 10년간 한 활동 중에서 내게 가장 몰입하는 기쁨을 느끼게해준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아넷맘처럼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전에도 여러번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핑계만 가득한 변명의 글이 될 것 같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모든 것에 실패하고 엄마가 된 이야기, 꿈만 많고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엄마의 이야기를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이다.


나는 대학시절의 꿈을 자주 꾼다. 좋지 않은 성적이지만 요구조건을 충적시켜 분명 졸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꿈 속에서 졸업을 못해서 아둥바둥 하는 내 모습에 시달린다. 엄마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내 모습에 하루에도 몇번씩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런 나와 화해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좋은 방법 같아 보인다. 혹시 아는가, 그 과정에서 잊었던 나를 찾게될지.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하던 엄마는 그렇게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