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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19. 2023

책속에서 내 마음의 웅크린 어린아이를 만나다.

책으로 받는 정신상담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 경조울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요즘처럼 이 문제에 대해 골돌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늘 내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본 적이 없고, 늘 나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찍힌 사진이며 동영상, 내 목소리가 녹음 된 것 등을 보고싶지가 않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속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면서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보니, 나의 불안정한 마음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아이들도 나처럼 마음 속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떤 것보다 막고 싶은 일이다. 내가 겪은 것을, 낮은 자존감으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아이들이 똑같이 겪게 할수는 없다.



그런 고민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던 중 내 삶을 돌아보게하는 의미있는 책을 만다. 의사이면서 이름도 생소한 2형 양극성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경조울 작가의 '가끔 찬란하고 자주 우울한'이라는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의사이면서 조울증을 겪고 있다니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교내 장애인휴게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 나는 조울증을 앓는 선배를 만나게 됐다. 그 선배에게 조울증을 겪을 당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을 통해 어렴풋이는 어떤 병인지는 알고 있었다. 98학번이었던 그가 20대 초기에 발병을 하고 2007년이 되어서야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을만큼, 그 병은 그를 오랫동안 뒤흔들었던 것 같다. 경청하며 듣기는 했지만, 그가 겪은 극단적 증상들은 실로 '질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되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가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말도 나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의사가 된 누군가의 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내 손에 들렸다. 나는 그 조울증, 양극성장애라는 세계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기회를 맞아 호기심에 들뜰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던 초반에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제껏 '조울증'과 '의사'라는 단어로 조합해낸 작가의 이미지는 내게 의심의 여지없이 '남자'였던 것이다. 의사이기에 당연히 남자를 떠올린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책은 내게 전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 속에서 아직도 웅크리고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는 내 마음 속의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의대를 다니던 작가가 우울증이 심각해짐을 느끼고 교내의 상담실을 찾아가면서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는 그가 2형 양극성장애라는 것을 알게된다. 양극성장애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조울증의 의학용어인것 같고, 양극성장애는 조증도 우울증만큼 강하게 나타나는게 1형, 조증이 우울증보다 좀 더 약하게 나타나는게 2형이라고 나는 단순하게 이해를 하였다. 작가의 경우도 우울증이 훨씬 길고 자주 나타나기에 조울증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우울증뿐아니라 가끔이지만 조증도 찾아오는, 단순한 우울증과는 다른 질환이라고 한다.


그녀가 우울증이 찾아올때 겪었던 시간들은 내가 대학시절 방황하던 때와 너무도 겹쳐보였다. 타인에게 나의 가치를 찾으려는 모습, 불안정한 이성관계, 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 등이 딱 내 모습이었다. 다만 작가는  2형 양극성 장애, 나는 개인적인 트라우마의 거대한 터널의 초입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말이다.


작가는 무엇때문에 자신이 2형 양극성장애를 얻게 되었는지에 골몰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녀는 어린시절 공부를 잘했음에도 칭찬받지 못하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자신보다 학업에 부족한 언니에게 관심과 사랑이 쏠리는 것을 보면서 차별을 느끼며 자라왔다고 한다. 그녀는 책 속에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막상 엄마와의 애착의 문제가 자신의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의학적 지식도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나도 지금 나라는 사람이 되고보니, 부모와의 관계나 어린시절의 가정환경이 나에게 꽤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대학생때 장애인휴게실에서 만났던 그 선배 또한 대학교 입학 후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이 되었다고 했다. 이 작가가 수많은 페이지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것으로 할애했다는 점도, 작가가 사실은 자신의 문제와 커온 환경이 많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반증하는게 아닌가 한다.


그녀는 막상 제2 양극성장애의 진단을 받고서도 그 질병을 받아들이는데 오랜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늘 머리가 좋았고 전교 1등을 하던 학생, 공부잘하고 촉망받는 의대생과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며 수없이 자살을 생각하고, 이성간의 관계가 편안하게 유지되지 않는 그녀의 모습 사이의 커다란 간극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녀는 속으로는 불면증과 자살에 대한 생각에 시달리며 죽을 것 같아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고, 주어진 일상생활도 착오없이 잘 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것을 '가면우울증'이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이해하는 뜻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한 경험은 내게도 너무 익숙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억누르고, 밖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삶 말이다.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것 외에도 그녀가 상담을 받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내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내게도 무언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그럼에도 한번도 그 생각을 실행한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기록한 상담과정, 치료과정은 내게 어떤 의사를 만나서 어떤 대화가 오고갈 수 있는지를 실제로 알 수 있게 해주어서, 내게도 병원에 찾아가볼 용기를 내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어 이야기를 한다는데에는 자신이 없지만, 나의 정신상태에 대한 전문적인 정신감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빠져들어서 책을 읽었다. 그녀의 치유과정은 아직 진행중이다. 상태가 안정적이지만 치료는 계속 받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완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이가 인생의 중반에 이르고보니, 누구나 어디 망가진데 한군데 쯤은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됐기 때문이다.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중간에 죽지않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만두지 않고 살아가면 되는 것 같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녀의 주치의가 했던, 늘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돌보라는 말이었다. 내 마음속의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을 걸고, 어떻게 느끼는지 말을 걸으라는 것이다. 내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바라는 게 그것이다. 내게 좀 괜찮은지 물어봐주었으면. 몸은 괜찮은지, 밥은 잘 먹었는지 물어봐주었으면. 나라도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


"은임아, 오늘은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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