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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23. 2023

같은 주제의 글을 두번 쓰라

책 읽는 하루하루,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낸시 슬로님 애러니

90페이지에 나온 말. 이 '모든 사람이 스토리텔링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는다'라는 꼭지 마지막에 나온 글쓰기 길잡이다. 본문 내용에서는 스토리텔링 재능은 누구나 타고나는 것은 아니라면서 작가의 두 아이의 예를 들고 있다. 같은 영화에 대해서 한쪽은 줄거리를 잘 요약해서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은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모른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같은 내용에 대해 빙 둘러서 이야기하는 것과 곧장 핵심으로 나아가는 것의 두 예시를 보여준다. 곧장 핵심으로 나아가는 글에서는 당연히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삭제되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적어두고 싶은 내용은 삭제된 부분에 있었다. 작가는 무엇이 더 나은 글쓰기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길잡이에서 보듯이 같은 내용을 두번 써보라고 한다.


어제 나는 내가 최근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적은 시점으로부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글을 쓸 당시에는 써야만한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머릿속에서 날아가기 직전이라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다. 나의 글을 읽어보니 조급함이 느껴지고, 쉴새없이 밀어닥치는 문장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때의 나의 글쓰기를 보면 곧장 핵심으로 나아가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부분을 보면 나는 얼마전 언급했던 엘레나 페란테의 글쓰기 방법중에 즉흥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때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나도 붙여잡고 싶은 머릿속의 아이디어가 있는 모양이다.


여튼 내 글을 읽다보니 분량이, 사람이 한두번의 호흡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이 되는, 계속 핵심으로 나아가는 글을 읽게 되는 것은 좀 피로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됐다. 내 글들을 다시 읽으며, 나는 조금 주변적인 것을 천천히 돌아보는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사실 좀 의외이기도 하다. 나는 말을 할때면 빙 둘러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니까 말이다. 이과인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늘 '결론부터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내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사실 나는 말하기에서는 그런 점을 즐기기도 한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것이지, 말에서 서론본론결론을 따져가며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렇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처음에 말하고자 했던 방향에서 반대대는 결론이 도출되는 모순된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곳에서 또한 재미를 느낀다. 내가 대화를 통해서 내 논리의 모순을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무엇을 수정해야할지도 알게될테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남편의 기분은 분노에 가깝게 변한다.


글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를 생각해보게 되는 꼭지였다. 핵심 전달을 위한 것일까, 그 도달의 과정을 위한 것일까.


핵심으로 나아가는 글을 쓰게되는 이유는 우선 퇴고가 없어서인 것 같다. 다시 엘레나 페란테의 말과 연관된다. 즉흥적인 글쓰기로 초안을 잡았더라도 다시 읽어보면서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호흡에 맞추기 위해서 주변적인 것을 추가하고 다듬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작업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것이 힘이 든다는 것을 해보지 않고도 직감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글을 한편 완성하고나면 그 쾌감이 상당하다. 그런데 그 글을 다시 고치려고 하면, 그것은 다시 미완의 상태로 바뀐다. 언제 어떻게 완성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상태 말이다. 난 그 상태를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그 기저에는 나의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글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 말이다. 그러고보면 퇴고라는 것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불안과 불확실성의 상태를 견디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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