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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Dec 28. 2023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방법, 위로하는 방법.

책 읽다가 든 생각,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낸시 슬로님 애러니

 방금 책에서 읽은 부분인데, 사실 나도 잘 모르는 것이라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어졌다.


32번째의 "한문장"이라는 꼭지에 나온 내용이다.


작가는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둘째 아들 댄이 9개월때부터 소아 당뇨진단을 받아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했었고, 22살때는 다발성경화증이 발병해서 28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댄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네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라고 했던 당시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했어야 하는 말은


"네가 얼마나 힘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그녀의 친구 게리는 댄이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고 몇 년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뒤에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네 고통이 너무 커서 댄이 자신의 고통을 느낄 여지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뒤 작가는 아들 앞에서 괴로워하는 대신에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남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을 해야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다른 이의 고통의 순간에 애써 외면하기도 했던 것 같다. 누구를 탓하기는 싫지만, 나는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아프거나 고통속에 있을 때면 엄마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당혹감'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난처함이다. 내 마음을 공감해주기보다 내가 어쩌다 그 상태에 놓였지?를 생각하면서 빠르게 그 상황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마디의 공감인데 말이다. 엄마가 어찌할바를 몰라하는 거 같아서 나는 고통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엄마에게 내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는 겉돌 뿐이다.


작은 나의 고통에도 당혹감을 보이는 엄마는 아주아주 큰 고통은 완전히 모른 채 했다. 난 죽는날 까지 나를 고통과 암흑속에 혼자 버려둔 부모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화해와 용서를 하기보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보니 나는 치유가 필요한가보다. 적어도 그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게 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빠는 얘기해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들어도 못들은척, 못 들어도 들은척 하는 분이라 이해를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나이 먹고도 답답함과 분노는 쌓여만 간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만 같다.


공감을 어떻게 해줘야하는 것인가. 우리는 남의 고통 앞에서 그 일을 빠르게 해결해주길 바란다. 우는 아이한테 사탕을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는 소리가 싫으니 사탕을 주는 것이다. 어른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같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품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가장 좋은 공감은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인 것 같다.


대학생때의 일이다. 암으로 오랜기간 투병하신 아버지를 떠나보낸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와 단둘이 만남에서 친구는 눈물을 보였다. 사람들 앞에서 씩씩한 친구였기에 난 그 친구가 우는 모습이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해줘야할까 사실 나는 잘 몰랐다. 다만 내게 감정을 표현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이 느껴졌다.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이었을까.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뿐이지 않을까. 그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또 생각나는 일은,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배울 때였다. 나보다 두어살 어린 친구와 친해져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둘다 유학을 준비했고, 그친구는 나만큼 차분한 사람이라서 서로가 편했던 것 같다. 우리는 독일어를 매개로 만났고,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가 어학실력을 늘리는 것이었기에 우리의 만남은 공부가 주 목적이었다. 매일 수업시간에 만났고 카페에서 같이 독일어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친구는 미래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우울한 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나 내가 먼저 독일로 떠나게 됐을 때, 그녀는 유학을 접고 취직을 준비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내가 독일에 가서 유용하게 썼던 베를린 지도와 작은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그녀가 미래의 고민으로 우울했고,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힘든 시간을 극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적었다.


사실 내가 한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독일어를 늘리려고 만나서 공부를 한 것인데 말이다. 그녀의 편지를 받고, 내가 생각없이 했던 말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어쩌면 우울한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가 겉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진실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을 만나기를 바란다. 내가 한걸음 그 순간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얼굴을 보고, 상대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그것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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