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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05. 2024

자연과 인간의 매개자로서의 삶.

베리 로페즈의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읽고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치 세계는 인간의 무대이며, 지구의 거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자연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을 만나게 되어 여기 소개해본다. 자연주의자 베리 로페즈의 사후에 그의 에세이를 엮어 만든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책이다.



베리 로페즈는 1945년에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자연을 탐구하면서 기록한 것들이 책이 되어 많은 저서를 남겼고, 1986년에는 << 북극을 꿈꾸다 >>라는 책으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책은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자연에 관한 책은 내게는 좀 생소하다. 평소 자연이라고 하면 내게는 우선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탐험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은 이 책에도 많이 나와 있다. 남극에 가고, 밀림 속의 오지에 가고, 그곳에서 몇날 며칠을 야영을 하며 야생동물과 조우하기도 하는 작가는, 그 순간이 위험하다는 것을 작가도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적었다. 처음에는 작가가 왜 그리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이 살지 않는, 머나먼 오지를 탐험하고자 하는지 의아했다. 책을 읽다보니 그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넓게는 지구를 향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인간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여기에 살아 숨쉬는 것, 즉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 주지하듯이 말이다.


내게 자연 깊숙히 빠져들어본 경험으로 생각나는 것은 수년전 스쿠버다이빙을 해본 것이다. 바닷속에 들어가보고 싶어서 스쿠버다이빙 초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그뒤로 다시 바다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자격증을 따면서 몇 번, 전에 가본적 없는 비교적 깊은 바다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나의 생명유지장치, 즉 산소통의 무게감이다. 산소통이 짓누르는 무게는, 그 짊어지기도 힘들고, 내가 잘 알지못하는 기구에 의지해 깊은 물속에 들어가야한다는데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막상 물속에 들어갔을 때는, 나의 숨소리가 나의 감각을 지배하고,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소리가 둔탁해진 바닷 속에서는 나와 바다가 오롯이 홀로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멀리 빛나는 햇빛만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줄 뿐이었다.


내가 바닷속에서 느꼈던 것을 떠올리며, 아마도 베리 로페즈가 자연속에서 이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퓨마나 늑대와 같은 동물들이 나오는 정글에서 헤매고 싶지도, 얼어죽을지도 모르는 남극에서 야영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있었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단지 호기심이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런 미지의 세계 이외에도, 그는 미국에서 원주민이 학살된 장소라던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이 인간의 잔혹함이 행해지던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또한 남극과 같이 인간의 삶이 존재하기 불가능한 곳에서도 그의 시선은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향한다. 그는 자연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것을 통해서 인간이 동물과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삶을 지속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몰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예술가'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제까지 예술가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른 세상을 창조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관점은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그의 관점으로 예술가는 그들만의 관점으로 세상과 우리를 매개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해석을 통해서 자연과 세계의 진실에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시 계획을 할 때, 자연에 변화를 가할 때, 그는 예술가들의 시선을 참고하고 그들과 소통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글을 읽다가 예전에 적어놓은 글을 읽어보았다. 한창 예술과 사진에 심취해있을 때였고, 나는 세상이 '예술적'이길 바란다고 적었다. '예술적'인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표현이 자유로운 세상, 그리고 대립된 의견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베리 로페즈의 생각도 그것과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술가 이외에도 그는 탐험을 나설때 다양한 학자들과 함께한다. 사실 그의 탐험 중 대부분은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재밌는 것은 예술가도, 학자들도 세상과 인간의 매개자라는 점이다. 예술가를 통해서, 그리고 학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된다. 베리 로페즈 자신은 어떠한가? 그는 새로운 자연을 경험하고 글로 남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매개자를 중요시여기는 것을 보면, 그가 왜 작가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지구 깊숙히 탐구하는 모습은 그의 깊은 트라우마와 연결된 거 같아보인다. 그는 책의 초반에는 그의 어린시절에 겪은 고통에 대해서 언급한 글이 몇 편있었다. 그가 7살 무렵이던 때부터 엄마의 지인이며 의사로 알려진 사람에게 4년이 넘도록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고,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 일이 큰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임에도 그는 잘 성장하여 작가가 되었는데, 그의 글을 보면 어린 날의 고통은 평생 그를 뒤흔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저 추측해볼 뿐이다. 그가 자신의 깊은 내면의 깊은 곳에, 어둠과 고통 뿐인 그 곳에 닿아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깊은 고통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타인의 고통에 가깝게 닿으려고 했던 그의 삶과 기록은 이제껏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책속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가 세계 80여국이상, 그리고 수많은 장소를 여행했음에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오리건주 픽록 지역에 있는 숲속의 자신의 집이라고 한 점이다. 그는 오랜시간을 매킨지강과 그것을 둘러싼 숲 속에서 보내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부분을 읽고 나는 나에게 묻게되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내가 평생을 두고 가까워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내게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나를 기다려줄 그곳, 나의 부족한 인간성을 품어줄 그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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