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얼마나 다양한 얼굴이 있을까? 시골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시내를 나가면 갈때나 올때 중 한번은 서너시간씩 걸어서 돌아올만큼 나름 걷기와 산책을 좋아하는 나이다. 그런데 그렇게 산책을 할때마다 도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었는지는 의문이다. 늘 걷던 길로 걷고 보던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토록 지적인 산책'이라는 책을 받아들었을때, 그리고 이 책이 열한번의 산책을 통해서 이루어진 책이라고 들었을 때, 산책이 어떻게 책으로 엮어질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도시를 발견하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나도 보는 방법, 경험하는 방법을 바꾼다면 늘 똑같다고 느껴지는 풍경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은이는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인데 베스트셀러 '개의 사생활'의 저자라고 한다. 컬럼비아대학교 바너드 칼리지에서 심리학, 동물 행동, 개의 인지능력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앞서 밝혔듯이 열한번의 산책을 통해 쓰여졌다. 각각의 산책마다 저자는 매번 다른 사람과 혹은 반려견과 산책을 했다. 당시 19개월인 그녀의 아들과 했던 첫번째 산책과 그녀의 개와 했던 마지막 산책을 제외하면 지질학자나 곤충박사, 혹은 야생동물 연구가 등 모두 어떤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이루어졌다. 19개월 아기와 반려견 또한 자신만의 관점에서 산책을 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전문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산책은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대도시에서 진행이 되었다. 대부분은 뉴욕이었던 것 같지만 사실 책속에서 어느 도시인지가 중요해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모두 소위 자연속에서의 산책이 아닌 도시산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의 산책은 그녀가 모르는 곳이 아닌 일상적으로 거닐던 곳의 산책이었다. 즉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익숙한 곳에서의 새로운 발견을 하기위한 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첫번째 산책은 앞서 말했듯이 저자의 19개월 아들과의 산책이다. 이또래의 아이와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어린아이들과 걷는 것은 몇걸음 가다가 멈추고 이리저리 관찰하고 또 몇걸음 가다가 관찰하기의 반복이다. 아이들에게 A에서 B로의 이동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대부분의 것 들이 새로우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만져보고 느껴보려고 한다. 아이와 걷다보면 나도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두번째 산책인 지질학자 호렌슈타인과의 걷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뉴욕에서 그렇게 여러가지의 암석을 발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어느 박물관 외벽에서 예순가지도 넘는 암석을 발견해낸다. 이를테면 '미주리주 출신의 붉은 화강암과 로드아일랜드 출신의 화강암이 나란히 있고 그 옆에는 사우전드아일랜드에서 온 암석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박물관 안에서 4억살이나 먹은 독일 암석을 발견할 수 있다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된다. 그리고 암석에서 고대 생물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여기서의 새로운 시각은, 건물같은 사람이 지은 구조물들은 보통 '인공적'이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한데, 건물을 이루고 있는 암석이나 나무같은 자재들은 사실 모두 자연에서 왔기에 건물들 또한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번째 산책은 폴 쇼라고 하는 타이포그라퍼와의 산책이다. 그는 '글자디자인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글꼴을 창조하기도 하고 연구하고 그에대해 글을 쓰며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20년넘게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 산책 속에서 수많은 글자들, 레터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을까? 도시에는 간판, 광고문구, 안내표지판 등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에 글자가 넘쳐난다. 그런데 그 레터링 디자인을 살펴보면 그것이 어느시대에 제작된 것인지 추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느 곳은 레터링이 여러겹 덧입혀진 곳도 있었다. 그것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간판을 보며 아름다운 폰트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을 찾아볼 수 도 있고, 글자마다의 느낌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쇼의 관점에서 &는 임산부같고, R은 다리가 길고, S는 허리선이 높아보인다고 한다. S는 약간 우울해보이고, 또 다른 S는 자아도취에 빠져있다고 한다. 어떤 글자를 보고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글자를 보고 그렇게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을 보면 폴 쇼가 얼마나 글자에 빠져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네번째 산책인 일러스트레이터 마이라 칼만과의 걷기도 재밌다. 보통 산책은 A부터 B까지의 여정이다. 그런데 칼만은 가는 동안에 들어가볼 수 있는 모든 공간에 들어가보고, 눈이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눈다. 어느 곳에서는 한참동안 한곳에 머물러 있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그녀와의 산책은 A부터 B까지 가기는 하지만 C부터 Z까지 모든 곳을 탐색하는 산책이 된다고 한다. 칼만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새로운 곳에 가면 만나는 사람에게 대뜸 말을 거는 것을 잘 하신다. 그러므로써 새로운 정보를 알아오시기도 하고, 기다려야하는 따분한 시간을 때울 친구를 사귀시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칼만은 교회라던가, 노인복지 시설같이 대중에게 열려있는 모든 공간에 자유자재로 들어가보았다. 대부분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공간에는 선뜻 들어가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굳이 그녀를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 곳이 아닌 그러한 장소들에 가서 누군가와 시선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고 나오므로써 그녀는 산책길에 새로운 방점하나를 찍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처음 인사동에서 갤러리에 다니게 된 계기가 생각이 났다. 사진에 관심이 있었고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어서 사진학원에 다니던 때였다. 그때 선생님중 한분이 학생들을 데리고 인사동 갤러리에 한곳 한곳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는 어떤 작품들이 주로 전시가 되는지 등을 설명해주셨다. 그 이전까지는 그런 갤러리가 있다는 것도 잘 몰랐고, 들어가도 되는 곳인지도 몰랐었다. 알고보니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들은 모두 일반인들에게 '오픈'되어 있었던 것이다. 닫히지 않은 곳인 이상 들어가서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런 계기 이후로 나는 매주 인사동에 다니면서 새로 오픈된 전시를 관람하면서 산책하는 새로운 방법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이 산책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시선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야생동물 연구가 존 해디디언과이 산책이다. 챕터 제목을 보고 도시에 과연 야생동물이 있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둘은 산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은행나무에 다람쥐 둥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도시의 밤에 잘 발견되는 동물이 너구리라고 한다. 물론 도시에 쥐들도 많다. 그리고 집참새, 찌르레기, 비둘기 같은 새들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 챕터를 보고 놀라웠던 점은, 동물들이 의외로 도시의 환경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시끄러운 소음때문인지, 야생에서보다 소리를 덜 내게 되었고, 낮에 활동하던 동물이 사람들을 피해서 밤에 활동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장 놀라웠던 것이 '절벽생태학'이었다. 내게는 의외였던 사실이, 자연 절벽이 생명이 꽃피우기 좋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표면에 이끼가 서식하고, 돌 틈에는 작은 식물들이 살고, 곳곳에 그것을 먹이로 삼는 동물들도 살게된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도시의 고층건물이 자연절벽과 생태학적으로 유사성을 띈다는 것이다. 고층건물에도 자연의 절벽에서처럼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독수리같은 새들이 성당의 종탑같은데 둥지를 튼다고 한다. 코요테도 절벽지역에서 식량을 찾고 번식한다고 한다.
나는 이제껏 도시란 사람이 만든 지극히 인공적인 공간으로 사람이외의 생명이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곳이라고, 곤충이나 동물을 끊임없이 배척해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인간을 따라 도시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동물들이 상당하고, 새롭게 도시에 살기 시작한 동물이 있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도시의 삶에 맞게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면서 적응해간다는 것을 알게됐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보니 서울에서 살때 도심 한복판의 재래시장에서 족제비가 출몰한다는 TV방송을 본 일이 있었다. 미리 설치된 카메라에 잡힌 족제비들은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각 몰래 기어들어가 음식을 훔쳐서 달아나곤 했다. 그 방송을 본 뒤로 시장의 가게가 문을 닫은 늦은 밤 유심히 관찰해보니 작은 동물들이 내려진 천막 아래로 분주히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전같았으면 시장에 동물들이 돌아다닐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보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니 전엔 안보이던 것이 보였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아는 만큼 더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지식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인 알렌 고든과 함께 산책을 할때는 소리에 집중해서 산책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의 반려견 피니건과 산책을 할때는 냄새에 집중하는 법을, 음향엔지니어 스콧 레러와 함께 산책할때는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우리가 매일 오가는 일상속의 걷기, 산책이 얼마나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책에서는 비록 열한가지 산책이었지만, 그것은 수백가지 수천가지로 확장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사진에 집중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나는 대학교때 부터 시작한 사진을 오랜동안 함께 했다. 사진을 찍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산책'이다. 그러나 그 산책이 단지 A지점에서 B지점을 잇는 산책이 된다면 좋은 사진을 찍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천천히 걷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어느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면 오랜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바람과, 햇빛, 지나가는 사람들,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에 집중해보아야 한다. 지나가듯 걸어가며 사진을 찍으면 찍히는 사람이 열에 아홉은 기분나빠한다. 그러나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같은 공기로 호흡하고 분위기를 공유하고나면 사진기를 들어도 거부감이 덜하다. 무엇을 찍으려느냐고, 나 좀 찍어달라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책속에서는 나와있지 않지만 사진찍으며 산책하는 것도 도시를 새롭게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여럿이서 같은 장소를 촬영하고 결과물을 확인한다면 개개인의 사람들이 서로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가 극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초반부터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됐다. 이 책속의 열한가지 산책이 모두 좋고, 새로운 도시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감하겠다. 그러나 왜 그래야할까? 왜 굳이 더 시간을 들여서 더 신경을 곤두세워서 익숙한 곳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야할까?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답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자문자답해본다. 아마도 그것이,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예술적인 시선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삶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할 지점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해지기 위함이라고도 생각한다. 예술가가 될 수 없다면, 삶속에서 예술을 발견할 수 없다면 인생은 허무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소개한 열한가지 방법은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열한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나만의 방법 한가지를 추가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