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고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그람 Jun 27. 2024

보이는 것의 이면

하나 베르부츠의 소설 '우리가 본 것'을 읽고.

답을 주는 책도 좋지만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게시물 삭제자입니다'를 읽고 질문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흥미로운 소설이라 이곳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사용하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튜브와 같은 곳에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영상이 올라올 것이다. 사실상 영상을 보는 것 뿐아니라 올리는 것도 '아무나'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영상이 올라올 것으로 생각된다. 개중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잔인해서 공개됐을때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영상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영상들을 일일히 확인해서 검열하고 삭제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껏 그들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일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네덜란드 작가 하나 베르부츠의 소설 '우리가 본 것'은 그렇게 유튜브와 같은 곳에 올라오는 유해게시물을 선별하고 삭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도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는 대략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그러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흥미로운 소설을 쓸 수 있을지가 궁금한 점이었다. '유해게시물 삭제자'라는 소제를 너무 부각시킨다면 소설이 다소 흥미를 끌 수는 있으나 입체감은 떨어질 것으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점을 고려했을 때 이 소설이 뛰어난 점이 이 소설은 다 읽었을 때 내게 유해게시물 삭제자라는 소제보다는 사랑이야기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왜 작가는 '유해게시물 삭제자'라는 소재를 가지고 사랑이야기로 풀어냈을까.



소설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인 구성은 인터뷰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인 케일리는 앞서 언급했듯이 유튜브 같은 곳에서 유해게시물 관리를 위해 하청을 준 헥사라는 업체에 고용되어 일을 했었다. 소설 첫부분에서는 맥락없이 대화 중간에 툭 던져져서 맥락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것이 이 작가의 의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들이 맥락없음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앞서 인터뷰형식이라고 밝혔는데, 누구와의 인터뷰인가 하면, 이해가 잘 안되어 두번째 읽었을 때 명확해졌는데, 헥사에 고용되어 일했던 사람들이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고, 케일리도 고용된 사람 중 한명이기에 그녀도 소송에 참여시키기 위해 변호사가 설득하는 와중인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러면서 케일리는 변호사가 물었던 듯한 질문에 답을 하면서 소설은 진행되는데, 변호사는 한번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문자 뒤에 숨어 있다. 이것 또한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의 형식을 상기시킨다. 카메라 뒤에 숨어있는 질문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모습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질문자도 그렇고, 케일리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이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고나서는 모두 '무엇을 봤느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번역체의 이 질문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도대체 뭘 묻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나중에는 이해가 되었는데, 케일리와 동료들이 했던 일이 유튜브 같은 곳에 올라오는 유해동영상을 검열하는 작업이었으니, 동영상중에는 엄청 잔인하고, 피가 낭자하고, 자해를 하거나, 폭행을 가하거나,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거나 누군가의 죽음이 목격된 영상도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들이 본 것중에 잔인한게 어떤 것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나라도 그런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사람을 죽이는 영상도 올라올까? 자해하는 영상도? 누구나 궁금해할만한 것이기에 작가는 그러한 질문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영상을 하루에 수백건씩 보고 검열을 한다면 어떨까. 아주 어린아기에게 동영상을 많이 노출시키면 ADHD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어른이 매일 8시간씩 앉아서 유해동영상만 본다면? 그것이 영화에서처럼 연출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벌어진 일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면? 그런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 같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위의 헥사라는 기업에 고용되어 유해게시물을 검열하는 일을 하다가 정신적 피해를 입고 기업에 집단 소송을 하게되는 내용이 바탕이 되고 있다. 주인공인 케일리가 고용되고부터 그만두기까지의 내용을 다루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받은 정신적 트라우마나 열악한 노동환경 등에 대해서는 중간중간 짧게 언급이 되면서 주변적으로 다루어진다. 위에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중심에는 사랑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케일리는 헥사에 고용되면서 시흐리트를 알게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지게되고, 그러다가 둘은 같이 살게된다. 둘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술자리에서 즐겁게 어울리기도 하고, 근무시간에는 다른 층에 몰래 숨어서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중심에 사랑이야기가 있다고는 하나, 사실 그 이야기가 그렇게 특별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고있는 유해게시물 삭제자라는 일과의 괴리감이다.



사실 유해게시물 삭제라는 일은 사람이 하기에는 부적합한 일이다. 반복적인 일이고, 각각의 영상을 보고 메뉴얼에 따라서 삭제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어찌보면 기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보기에는 영상이 충격을 줄 수 있기에 더더욱 사람에게는 부적합한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설속에서 헥사에 고용된 사람들은 마치 기계가 되기를 요구받는 것 같다. 기계처럼 앉아서 일하고, 그들이 잠시 쉬려고 일어나면 그때부터 타이머가 작동되어 카운팅이 된다. 그들이 영상을 변별해내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메뉴얼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정확도를 따진다. 정확도가 80%가 되는 사람도 있고 , 95%인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는 정확도를 더욱더 높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루에 500편의 영상을 판별하기를 할당받는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주인공인 케일리에게는 주변적으로 느껴진다.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시흐리트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만난 순간, 그녀와 나눈 이야기, 그녀와 나눈 밤들 그런 것들이 케일리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소송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고, 다만 다시 시흐리트를 만나서 다시 잘 되기를 꿈꾼다.



이렇게 작가가 유해게시물 삭제자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사랑이야기를 대치시킨 것이, 그들이 했던 일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부각시키는 목적으로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소설은 또한 그들이 하는 일이 맞닥뜨리게 되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헥사에 고용된 이들은 일로서 어떠한 영상이 공개되어도 될지 말지를 판단하기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영상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목격되었다면,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어도 되는 걸까? 소설속에서는 언뜻, 그런경우에 어딘가에 신고하고 대처하는 메뉴얼이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한다. 하지만 유해게시물 삭제자들의 일은 영상에 담긴 위험에 처한이들을 구하는데 있지 않고, 단지 영상을 선별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영상에 담긴 이들의 실질적인 안전은 부차적으로 생각하기를 강요받는 것 같다. 소설속에서 그런 점으로인해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있어보인다.



유튜브같은 매개체가 생기면서 우리는 영상을 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졌다. 그런 곳에 올라오는 영상이라는 것은 맥락이 없다. 연출된 것일수도 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찍은 것일수도 있고, 어제 일어난 일일수도 있지만 몇년 전에 일어난 일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런 영상들은 유튜브라는 평평한 화면상에 맥락과 정보가 제거된 채로 같은 크기의 작은 썸네일로 균등하게 보여진다. 우리는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 카메라 이면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할때도 있지만, 수많은 영상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면서 그러한 질문들은 금새 잊히게 마련이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세상 괜찮은걸까? 그런데 유튜브에 찍혀서 올라오는 장면들은, 물론 유튜브를 위해 일부러 연출된 것도 있겠지만, 유튜브 이전에도 존재하던 것들도 많다. 누군가의 죽음, 자해, 폭행 같은 장면들. 유튜브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찍을 수 있고, 찍은 것을 올릴 수 있게 되면서 그 이전에는 그때 그곳에 있었던 이들만 목격하던 일들을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올릴 수 있게 됐을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 소설속에서처럼 유해게시물을 우리가 볼 수 없도록 선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러한 잔인한 장면을 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일은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 일인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한 요즘같이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기 쉬운 시대가 되면서 증거가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생겨나는듯 하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던 홀로코스트의 가스실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없으니 지구는 평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사진과 영상, 소위 증거가 난무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보는 것 이면의 것들을 경시하게 된 것을 아닐까.



비교적 짧은 소설이라 두번을 읽어보았다. 첫번째 보았을 때의 풀리지 않던 의문이 두번째에서는 해소가 되기도 하고, 여전히 궁금한 부분들도 많다. 아마도 작가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자하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책에서 제기하는 의문들은 이시대에 누구나 생각해보아야할 지점 같다. 또한 맥락없이 던져지긴 했지만 흥미롭게 전개가 되기에 몇시간만에 후루룩 읽히는 페이지 터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왜 저출산 사회로 가고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