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LAN 란란 Apr 09. 2022

UX 라이팅, 중요한건 아는데 왜 어려울까?

스트릿 출신의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의 기록

고객 경험을 신경쓰며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막상 쓰려면 잘 안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신경쓰며 적으려니 너무 어렵다..)


번역가 김지현이 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진저브레드’와 ‘생강빵’이 비록 같은 종류의 음식을 가리킨다 해도 두 단어의 용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월귤’과 ‘블루베리’는 같은 과일을 뜻하지만 단어의 어감은 판이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라즈베리 코디얼’을 마시는 소녀와 ‘나무딸기 주스’를 마시는 소녀는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다를 것만 같다. 그러므로 진저브레드, 블루베리, 라즈베리 코디얼이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과 생강빵, 월귤, 나무딸기 주스가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종종 대화를 할 때 이런 상황을 겪는다



“아 그 왜 동물중에 있잖아 그 신체 일부가 좀 다른 동물에 비해 길고 덩치도 엄청 큰 동물인데 그 뭐더라’ 

“아 코끼리? 그래서?” 

“아니 코끼리 아닌데.. 아 나 지금 단어가 생각이 안나네 그 뭐지” 

“코끼리 아냐? 암튼 알았어. 그래서?” 

“응 코가 긴게 아니라 어 그래 목! 목이 길어!” 

“아 기린? 아니 코끼리나 기린이나 그게 뭐 중요하다고 그걸 계속 설명하려고 해.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데?" 


말하는 사람은 코끼리인지 기린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코끼리인지 기린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어서 다음 이야기를 해보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대화 내용 속의 동물이 코끼리이냐 기린이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코끼리로 알고 들을때와 기린으로 알고 들을때는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말이 달라지는게 아닌 ‘예상했던 결말이 아님’을 경험한다는 것에 있다.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들을때와 대충 어영부영 오해하며 들을때의 사용자 경험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말할때와 들을때의 입장이 달라진다. 

우리 뇌는 말을 할때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들을 때는 자신이 편한대로 해석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 뇌는 게으르기 때문이다. 


뇌는 의외로 생각하는걸 싫어하고 복잡한 처리를 하는것을 최대한 피하게끔 설계 되어 있다. (뇌의 시스템1과 시스템2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겠다.) 


그러니 세상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려면 잘 말해야 한다’ 라는 책이 그렇게 많은것이다. 듣는 사람이 대충 들으니까. 우리가 프로덕트를 디자인할때도 UX라이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저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안에서
대충 해석하며 프로덕트를 사용한다


유저에게 절대로 페이지를 샅샅이 훑고 기획 의도를 파악하며 단어를 정확히 읽으리라 기대하면 안된다. 


유저는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떤 화면이 나올까?’ 라며 호기심 넘치는 탐험을 하지 않는다. 

‘이 버튼을 누르면 이런 화면이 나오겠군’ 하며 예측가능한 길로만 장애물 없이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예측가능한 플로우를 준비함에 있어 그 플로우를 유저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 멋잇는 말을 쓰는게 중요한게 아닌 예측 가능한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는게 중요하다.



사용자 경험을 설계는
프로덕트 번역하는 일이다


프로덕트가 내보내는 피드백을 프로덕트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유저가 알아듣기 쉬운 언어와 문장으로 번역해서 전달해야 한다.

 

진저브레드를 접한 독자와 생강빵을 접한 독자마다 그 소설책이 자신에게 남기는 여운과 느낌이 다른것처럼 프로덕트를 접하는 유저도 어떤 단어와 문체로 프로덕트를 접하는지에 따라 사용자 경험의 종착지가 달라진다. 만큼 UX라이팅은 더 간결하고 명확한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기 위한 노력이다.


사내에 UX라이터가 있거나 또는 카피라이터가 있거나 또는 국문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큰 회사가 아닌 이런 포지션의 동료는 이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본인 뿐만 아니라 같이 프로덕트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 그래야 우리가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쓰던 모국어를 ‘듣는 사람’을 고려하여 번역해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글을 다듬는 행위가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한 스타트업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싯가인 관계로 선 주문, 후 결제를 해야하는 시스템을 가진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었다.


고객은 특정 물건을 원하는 수량만큼 구매한다. 그리고 판매하는 쪽에서 무게를 달아 최종 금액을 고객에게 통보한다. 요금이 통보된 뒤 3시간이 지나면 자동결제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 때 금액을 안내 받기 위해서는 고객이 앱 알림을 켜놔야 한다. 그러니 알림을 끄면 요금 정보나 출발 정보 같은 중요한 정보를 받을 수 없으니 끄면 안된다는걸 전달해야한다. 


이 내용을 유저에게 어떻게 전달할것인가? 


‘알림을 끄면 최종 요금 정보나 물품 출발 정보같은 중요한 알림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꼭 알림을 켜주세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평소에 말로 설명 하듯이 적어보니 너무 길다.


위에서 말했듯이 유저는 프로덕트가 내보내는 피드백을 오해없이 정확하게 받아들이려 애쓰지 않는다. 특히나 ‘긴 글’은 더더욱 읽지 않는다. (참고로 사람의 뇌는 글을 읽지 않는다. 보고 넘어간다. 이 내용도 추후에 따로 다루겠다.) 


무조건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일것인가? 우리팀은 이 내용을 가지고 이틀을 고민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이 워딩을 확정지었다.


‘요금 정보와 같은 중요한 알림 받는중’ 


유저에게 구구절절 ‘이 내용의 알람도 중요하고 저 내용의 알람도 중요하니 꼭 켜놔야 한다’ 라고 설명해봐야 ‘아 뭐라는거야 너무 길어’ 라며 아예 문장을 읽지 않는다면 이 구구절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리 좋은 글도 결국

유저에게 읽혀야 의미가 있다


읽히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딱 하나의 가치’만 내세워야 한다. 


이는 우리 눈은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닌 아주 작은 점 정도의 크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주변시로 주변을 백그라운드처럼 채우기 때문이다. (주변시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로 다루겠다) 


유저 입장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 정보일까? 아마도 가장 놓치지 않고 받아보길 바라는 정보는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이 얼마인지’ 일 것이다. 그 외의 정보 역시 ‘요금 정보와 같이 중요한’ 이라고 적어뒀으니 요금만큼이나 경중이 비슷한 다른 중요한 정보들이 있구나 라고 생각할것이다.  


또한 ‘당신이 알림을 끄면 ~하게 된다’ 이라는 미래형이 아닌 ‘지금 ~하는 중’ 이라는 현재형으로 접근하면서 게으른 두뇌가 좀 덜 일해도 빠르게 상황을 인지할 수 있게 하였다. 


이렇듯 UX라이팅이라는 행위를 할때는 우리가 평소에 별 생각없이 모국어를 구사할때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기때문에 쉽지 않다.



만드는 사람의 욕심이 많이 들어갈수록

문장은 구구절절해진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원해서 찾아서 읽는 행위를 하게 만드는 소설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이 프로덕트를 통해 일반 유저를 회원으로 전화시키고 결국 매출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은 트래픽이 높은 페이지를 그냥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회원이 되면 뭐가 좋은지를 알려주고 싶어하고 우리 제품이 뭐가 좋은지를 알려주고 싶어한다.


조개구이나 횟집 등의 식당 상권이 발달한 바닷가에는 호객행위가 엄청 많다. 우리는 그런 곳을 지날 때 최대한 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앞을 지날때는 괜히 긴장하게 되며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로 인해 그 식당의 매력을 알아볼 새도 없이 지나쳐버리는것이다.


만드는 사람의 욕심이 너무 많이 들어간 문장은 이 호객행위와 똑같아 오히려 유저가 외면하게 만든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유저는 프로덕트를 사용할 때 절대 모든걸 훑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빠르게 습득하길 원하기 때문에 덕지덕지 구사된 문장안에서 뭔가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아예 외면해버린다.


헷갈리게 만드는 단어나 문장도 똑같다. 이 헷갈림을 이해하려 할때는 본인이 필요해서 특정 정보를 찾아야 할때만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외면해버린다.



혼자 하려고 해서 어렵다.


UX 라이팅은 그래서 UX 디자이너 혼자서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최종 톤앤매너를 잡고 프로덕트 화면에 맞게 정돈하고 입히는건 UX 디자이너의 몫이겠지만 고민하는 단계에서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평소 쓰던 말을 담백하고 명료한 단어와 문장으로 만드는게 이렇게나 어렵구나'를 함께 느끼며 어떤 문장을 빼고 어떤 단어를 덧붙여야 할지를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UX 라이팅 전문가가 없어도 우리 브랜드의 방향성에 맞는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다.


만약 단 한명의 UX 디자이너 혼자서만 고민하고 결정하고 반영한다면 그 디자이너의 문장력에만 기대는 프로덕트가 나올것이다.(물론 평소 쓰는 단어의 종류가 많고 남들보다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는 디자이너라면 차라리 그 디자이너 한명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수도 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 중 한명이라도 이 어려움을 느꼈다면,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다면 아마도 그 프로덕트는 조금 더 유저에게 사랑받을것이다. 훌륭한 번역가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이 사랑받는것처럼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