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LAN 란란 Jan 18. 2023

스타트업에게 제일 소중한 자원은 ‘시간’이다.

스트릿 출신의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의 기록

저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기존 시장의 관습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UIUX디자이너 등 다양한 포지션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을 다니다보니 제 나름 얻게된 가장 큰 인사이트가 있습니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자원은 돈이 아닌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자체 매출이 나기 전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인 경우에는 이 자원이 더 귀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스타트업의 시간은 주로 창업자와 투자자의 소중한 돈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남의 속도 모른 채 빠르게 흘러가 채무감과 초조함이 창업자를 괴롭힌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처음을 

기다려주지 않는 자본주의 시장


제가 만나본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힘은 가지고 있지만 회사 경영은 처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경영을 안해봐서 다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옆에서 보더라도 해야할일이 한두개가 아닌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그들도 처음 해보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작은 실수, 약간의 어긋난 판단은 좋게 표현하면 ‘값진 경험’이지만 본질은 ‘시간을 더 빨리 소비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처음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업자의 처음’을 기다려주는 시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을 많이 다녀보니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장의 가능성’와 ‘성장의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 시기에 원치 않게 주저앉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투자금을 보태고 코파운더로 참여했던 한 스타트업에서는 1년 만에 크게 투자를 받아 멤버가 50명으로 늘어나는 급성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지 못해 50명을 다시 내보내야 하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또 한 곳에서는 우리만의 UVP를 찾기 위해 지방으로 유저 인터뷰를 다녀가며 프로덕트를 오픈했지만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서비스 종료를 겪은 적도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1년을 준비한 프로덕트를 오픈하고 한 달째 되던 날, 투자자가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일주일 만에 전원 해고처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다음 시리즈를 받기 위해 진화된 프로덕트를 내놓기 위해 준비하던 중 팀이 와해되어 준비하던걸 중단한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그 안에 속해 있었던 모든 구성원들은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창업자는 심리적, 물리적 고통에 괴로워했고 구성원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괴로워했습니다.


이 괴로운 상황을 회고해보니 모두 공통점이 있었는데 투자자에게 받은 것은 사실 돈이 아닌 시간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모두 알고 있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받은 결과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자와 그 구성원들은 스타트업이 처음이겠지만 나는 아니잖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의 포지션으로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먼저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공유하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제 경험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시드 투자~시리즈 A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게 필요한건

'성장'할 수 있는 프로덕트


시드 투자나 시리즈 A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성장 가능성을 확인’ 하는데 시간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프로덕트 마켓 핏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프로덕트 마켓 핏은 가설과 검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설 안에 우리만의 UVP, 시장, 타깃, 니즈를 명확히 넣은 다음 빠르게 MVP를 뽑아 가설을 검증하는데 시간을 써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실제 개발에 들어가기 전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고객 인터뷰를 함으로써 고객에게 주고자 하는 가치가 프로덕트에 잘 반영되었는지를 1차로 검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주 간단하게라도 잠재고객을 대표할 퍼소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발에 들어가면 프로덕트 마켓 핏 검증은 서비스 오픈 후에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 틀린 답안지를 받게 된다면 돌아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MVP를 만들기 시작했다면 기본적인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어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서비스 오픈 후 수정과 보완, 확장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픈할 때는 고객이 남기고 간 흔적을 추적할 수 있도록 데이터 트래킹 환경을 세팅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가설을 검증할 수 있고 왜 기대했던 수치가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시리즈 B 이상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에게 필요한건

'증명'할 수 있는 프로덕트


시리즈 B를 준비하거나 그 이상의 스타트업에게는 ‘성장의 증거’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쓸 것입니다. 이 단계 역시 허투루 쓸 수 없는 건 똑같습니다. 

B2C라면 매출의 증가나 높은 리텐션, B2B라면 고객사 증가나 객단가 증가 같은 각 비즈니스의 특성에 맞는 성장 지표를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초창기 보다 더 부담스러운 단계입니다. 

이때는 프로덕트 마켓 핏은 찾았으니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전 고객 마음속에 우리 브랜드와 서비스가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매출과 리텐션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이니 이게 ‘왜?’ 일어나는지를 찾아 강화시켜야 합니다. 

이때는 고객을 퍼소나가 아닌 니즈별로 세그먼트를 나눠서 ‘왜’를 찾아 고객 경험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A/B테스트와 정교한 SEO, 그리고 세그먼트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매체광고 등을 진행하며 지표를 성장시킵니다.


또한 고객에게 통일된 느낌을 주기 위해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만들 필요를 느끼는 단계입니다. UX 라이팅 가이드, 각종 용어 통일, 디자인 가이드 고도화, CS 고객 매뉴얼 제작 등등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고객을 우리의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잠재 고객으로 분류할지를 결정하여 UVP는 강화시키고 그에 맞게 프로덕트를 재설계합니다. 그 과정에서 디바이스 확장이 일어나거나 디자인 수정이 대거 일어나게 됩니다.


만들어져 있는 것들의 논리를 다듬고 재정비하는 일은 새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지부진합니다. 많은 히스토리와 그 안에 숨겨진 레거시들은 발목을 잡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기간에 창업자들을 괴롭히는 건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인 것 같습니다. 진도를 앞당기기 위해 추가 인력 채용을 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준비된 인력 추가는 진도를 앞당겨줍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인력 채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도를 더 더디게 만듭니다. 


더불어 정책이 없었다면 정책을 세우고, 정책이 있었다면 논리와 구멍을 점검합니다. 

이 때는 현황 파악만 해도 오래 걸릴뿐더러 많은 팀이 협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이 쓰입니다.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를 만든다는 것은
'시간'이라는 자원과 싸운다는 것


시리즈 초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멤버를 찾고 이해시키면서 프로덕트 마켓핏까지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많은 창업자들이 각각의 단계를 잘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단계든 잘 넘기는 분들은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힘’이 강해 보였습니다. 그 힘이 있어야 시간이라는 자원을 잘 쓸 수 있기 때문임을 알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프로덕트를 만드는 멤버들에게 필요한 건 ‘이후 단계가 없는 것처럼 일단 만들고 보는 프로덕트’가 아닌 ‘보완, 수정, 확장을 최소한이라도 고려한 설계’인 것 같습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는 창업자가 그 필요성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앞으로의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하는 스타트업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그 안에 있었기에 창업자에 비하면 덜한 고통이겠지만 제 나름의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왜 그 순간에 내가 더 도움이 되지 못했을까?' 와 같은 자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결국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기록하고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걸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하나씩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시간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어도 구성원 모두의 시간을 잘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위한 설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