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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fodil May 22. 2024

발리 한 달 살기

짧지만 아름다웠던 순간들

2019년 여름, 나는 발리 여행을 위해 약 25일의 일정으로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다. 처음 목적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서핑을 제대로 배워보는 것이었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싶어 찾아간 길리섬에 처박혀 결국 그곳에서 내내 머물렀다. 발리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한 달 살기 상위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곳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삼십 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다. 발리가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바다와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저활동, 비교적 안전한 치안과 저렴한 물가 덕분일 것이다. 트렌드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과 전혀 인연이 없는 1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인터넷에 넘쳐나는 발리에 관한 정보 덕이었는데, 당시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지쳐있던 와중 힐링 여행지를 검색하면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발리 여행 후기와 추천 글이 제일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며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처음부터 길어질 계획이 아니었던 여행이 급변경되어 한 달 가까이 늘어난 이유는 목적지가 발리였고, 행선지에 길리섬이 있어서 가능한 때문이기도 했고.  길리는 발리 중심에서 약 1시간 반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세 개의 섬이다. 길리섬은 어느 해변을 가든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얀 산호 위로 강물보다 맑은 옥색 바다가 돌돌 흐르며 푸른 수면 위로 조가비가 둥둥 떠오르다 가라앉는 아름다운 곳이다. 길리섬은 세 섬 중 가장 큰 길리 트라왕안과 길리 메노 그리고 아이르로 이루어져 있다. 길리 메노와 아이르에는 깊은 고요가 흐르는 반면 길리 트라왕안은 젊은 에너지로 넘친다. 길리 트라왕안은 해변마다 비치 클럽이 마련되어 있고 거리 곳곳에서 젊은이들의 흥과 낭만이 새어 나온다.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가장 세 섬 중 많은 곳으로, 과거 예능 프로그램 <윤 식당> 출연자인 배우 정유미가 해질 무렵 스노클링을 즐기던 그 바다가 거기 있고 주변에선 언제나 한국인도 한두 명쯤 만날 수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한 달이라는 기간은 생각하기에 따라 참으로 짧고 별 것 아닌 시간일 것이다. 잠시 스치듯 훅 지나가는 순간이자 1년 열두 달을 생각하면 그냥 특별할 것 없는 서른 번의 일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바꾸지 못해도 장소는 사람을 바꾼다고 했던가. 어느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 이 짧은 시간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한 달간 여행을 다녀와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이고 내 몸도 성격도 다 변함이 없다. 그럴지언정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시간은 의미 있는 일(또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히 길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한 달간의 여행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기간이었으며, 설령 아주 작고 사소할지라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지금,  더위에 자칫 무기력에 빠질 수 있는 계절을 보내며  속칭‘발리 한 달 살기’ 여행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추적하는 일을 지난 추억을 더듬으며 한 번 시도해보고자 펼친 수줍은 첫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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