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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fodil May 22. 2024

메종 드 길리

꾸따 시내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숙소의 현실은 사진을 통해 보았던 것과 아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덕분에, 길리에서는 내가 머무를 곳을 직접 보고 정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첫날 하루 외에는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길리섬은 두 시간 만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고 숙소의 수는 매우 많아서 골목마다 ‘방 있음’표시가 걸려있는 집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 중 항구와 메인 스트리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시끄럽지 않은 곳의 방갈로를 찾아서 들어갔는데 파란 수영장과 나무로 만들어진 방이 청량감을 주었다. 환하고 순수한 웃음을 머금은 현지 점원의 친절함이 호감도를 더해 두 번째 날부터 길리에서의 나의 숙소는 ‘메종 드 길리’가 되었다.      

길리에서 온수가 나오는 숙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숙소 여건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길리섬 자체가 온수를 잘 활용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날은 뜨겁고 바닷가는 습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굳이 일상 생활에 온수를 이용하지 않는다. ‘메종 드 길리’에서도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뚫려있는 천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밤에는 검푸른 하늘과 별을 보고 샤워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숙소는 온수는 나왔다. 남색 밤하늘과 풀벌레 소리와 함께한 시간, 오롯이 나만을 위한 그 시간에는 조금 짠물이 섞인 듯한 수돗물조차 낭만적이었다.       

아침 식사는 주로 바나나 팬케이크와 과일주스였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팬케이크로 아침식사를 하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다양한 팬케이크 조리법이 등장했다. 때로는 치즈를 넣은 팬케이크가, 때로는 초컬릿이 들어있는 팬케이크가 식탁에 올랐다. 환한 미소를 가진 점원 청년은 매일 오렌지주스와 함께 아침식사를 내 방문 앞 테이블에 시간에 맞추어 올려놓고 갔다. 이윽고 내가 식사를 위해 나오면, 숙소에 사는 잿빛 고양이 두 마리가 조용히 다가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곤 했다. 가끔 남은 팬케이크 조각을 던져주었는데, 그때면 고양이가 빵을 이렇게 먹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먹고 잘 먹어서 다음날부터는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메종 드 길리’의 나의 방에는 도마뱀이 먼저 와서 서식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끔 보던 손가락 크기의 도마뱀이 아니라 거의 사람 손목만한 도마뱀이었다. 살다살다 그렇게 빠르고 긴 꼬리는 난생처음 보았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으니 도마뱀은 길리섬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고 한다. 도마뱀은 깨끗한 동물이라 해도 끼치지 않고 문제 되는 것이 없으니 숙소에 컴플레인을 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점원에게 도마뱀 출몰 사실을 알리고 조치를 취해달라고 한 뒤 그날 밤 잠을 청하는데, 혹여나 그 커다란 도마뱀이 내 몸 위를 지나다닐까 상상하느라 잠이 오지 않고 눈이 말똥말똥했다. 하지만 이내 걱정도 잠시, 현지인들이 괜찮다고 하니 그냥 믿고 자자 하는 심정으로 눈을 붙인 후 한 번도 뒤척이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개운하게 일어났다. 수영장에 비치는 따뜻한 햇살과 점원의 친절한 웃음, 그리고 방갈로 위로 보이던 변화무쌍한 하늘.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함께‘메종 드 길리’는 나에게 레트로 사진같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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