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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fodil May 22. 2024

터틀포인트

길리섬의 핵인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바다거북이다. 길리에는 스노쿨링, 다이빙, 패들보트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정말 많지만, 나는 온종일 거북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것이 가장 좋았다. 길리섬에서 만난 거북이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왔던 것 같은 바로 그 거북이었다. 진짜 쌀자루 몇 대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거북이가 해초를 냠냠거리며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여기서 거북 저기서 거북하며 나타났다. 거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느긋하며 독보적인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속도를 내지는 않았으나 수영 실력이 정말 제대로여서 유유히 물 속을 헤매고 다니는 그 아름다운 자태에 나는 정말 넋이 나가버렸다. 등껍질도 머리도 팔다리도 모두 탐스럽고 잘빠졌으며 둥그렇지만 약간 납작한 팔다리가 지느러미 역할을 하며 추진력을 내주고 있었다. 등껍질의 무늬는 원초적 자연을 그대로 담은 듯 소용돌이치는 기하학 문양이었고, 그 앞으로 타원형의 매끈한 머리가 오똑 솟아있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입을 씰룩거리며 거북이가 해초를 물었다가 놓았다가 했다. 거북이를 따라다니던 그 날들을 떠올리니 길리섬이 마치 고향처럼 정겹고 가깝게 느껴진다.      

길리섬 내, 낡은 시멘트 벽면에 한국어로 낙서가 그득한 윤식당 촬영지 앞에는 돌담이 둘러쳐진 아주 작은 모래사장이 있다. 나무 그늘에 놓인 해먹 앞으로 마련된 이 모래사장에는 바닷물은 들치지 않고 햇살만 따스하게 든다. 윤식당 촬영지 앞은 섬 내에서 거북이가 가장 많이 출몰하는 터틀 포인트였는데 동시에 그 자리는 나의 낮잠 포인트였다. 물질을 하느라 차갑게 식은 몸을 태양 아래 데우다가 다시금 더워지면 나무 그늘 아래로 피신하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해먹에 나른하게 누워 오늘은 거북이를 몇 마리를 보았나 세어보면서 혼자서 이유 없는 황홀감에 젖어 들곤 하던 나날들. 그도 그럴 것이 거북이는 나에게 아직 신비한 동물이었고, 수족관이나 갇힌 공간에서가 아닌 자연에서 직접 그러한 거북이를 봤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장수의 상징으로 각광 받는 동물이다. 또한 고귀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움직임이 느린 만큼 오래 살아서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지 않나. 거북이처럼 느리다는 것은,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삶을 오래도록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뜻이라는 사실을. 또한 천천히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고귀한 삶을 살다 갈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도 말이다. 욕심부리고 서두르는 사람에게서는 행복의 아우라가 풍겨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거북의 탐스럽고 풍만한 몸체와 여유로운 움직임은 그 자체로 행운과 행복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마치 영겁의 세월을 거쳐 다시 태어나 초탈의 경지에 이른 마지막 존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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