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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an 09. 2019

01. 당신을 보내는 길 -1

 한참을 논문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오전 10시 20분, 휴대폰 액정에 엄마라는 이름이 뜨는 순간 미쳐 막을 수 없는 일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온몸이 절망에 휩싸였다. 전화를 집어 드는 손이 떨리고, 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을 밀면서 제발 아니기를 하고 되뇌었다. 전화를 들고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어 그저 응.. 하고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의 훅 하는 한숨과 함께    

 

  “할머니 돌아가셨다... 지금 병원으로.. ” 


 라는 짧은 말과 흐느낌이 들려왔다.      


  누가 그랬다.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어젯밤 병원에서 할머니를 뵈러 가서 차가운 발을 주무르며, 할머니 기운 내시라고, 엄마가 아침에 올 거라고 말했던 게 할머니가 숨이 붙어 있는 살아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감정을 수습할 새도 없이 작성하던 논문을 마무리해야 했었기에 급한 대로 저장버튼을 눌렀다. 할머니의 기일은 11월 13일인데 그 날은 논문 제출 하루 전날이라 아직까지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냄비받침대로나 쓰인다는 석사 졸업을 위해 한창 고군분투하던 때에, 할머니의 생사만큼 할머니가 가실 날이 논문 발표일과 겹치지만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usb에 파일을 넣고 생전 할머니 휴대폰과 두꺼운 옷을 챙기며 집을 나섰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병원을 가는 길이 그날따라 너무 멀었다. 멍하고 걷다가 병원이 보이자 다급하게 뛰었다. 병원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에서 방망이질이 시작됐다. 콧김으로 훅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났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이다. 냄비받침을 위해 당신의 죽음에 대한 애도마저 밀어놓고 그저 저장하기에 바빴던 나는 너무나 나밖에 모르는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회색 콘크리트 벽을 지나 나선으로 된 난간을 잡고 건물 안으로 올라가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링거를 꼽은 환자를 보자 드디어 현실감각이 극대화되어 마침내. 통곡을 하고 말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어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마침내 5층에 엘리베이터가 섰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 데스크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자 회색빛의 병실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망연자실하게 엄마가 서 있었다. 그날 2014년 11월 13일의 병실 풍경은 너무나 생생하게 사진처럼 내게 인화되었는데, 회색 병실에서 베드마다 커튼이 쳐져있던 그 사이 엄마가 우두커니 서 있던 장면은 지금도 내네토록 가슴 아픈 장면으로 각인되었다. 


  티브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성통곡을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노인들만 있는 병실이 너무 고요했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 10시 반경. 너무나 평화로웠다. 침대에서 할머니 얼굴을 매만지고 이불을 그러쥐었다 말기를 반복하고 울었다. 다신 볼 수 없는 그리움보다도 이렇게 가엾게 당신의 인생이 끝난 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였다. 그렇게 몇 분이고 병실에서 멀리 가신 당신을 놓지 못하다가 이제 그만하라는 엄마의 부축에 그제야 당신을 놓았다. 이제 보내 드릴 길에 대해 의논하는데 차마 그 옆에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병실 복도로 나왔다. 이제는 고인이 된 할머니에 대한 감정을 다 추스르기도 전에 현실적인 여러 절차와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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