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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Sep 08. 2021

야근 헤이는 밤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아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 싶었다. 밤 12시 사무실 컴퓨터를 끄고 컴컴한 건물을 혼자 내려가며 오른손 끝에 닿던 차디찬 콘크리트 벽면의 기운을 느끼고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 정말 이렇게 살다간 죽겠구나.     


“잘 할 수 있죠?”


중요한 보고서 마감을 앞두고 나의 보스는 그렇게 되물었다. 물음표만 붙인다고 다 질문이 아니듯, 정말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응당 너는 잘 해야만 해! 와 같은 느낌표 같은 보스의 질문이 나를 더욱 무겁게 눌렀다. 처음부터 이 보고서 마감의 끝이 나임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확인 사살을 당한 후 내가 할 수 있는건 잘 할 수 있다는 대답과 함께 마음에도 없는 결의에 찬 표정과 몸짓이었다. 잘 하는 것의 정량적 수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쟁쟁한 경쟁자들을 뚫고 마침내 지금의 일터에서 최종 합격을 하고 난 후, 서류 스펙보다도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채용이 됐다는 뒤늦은 후문에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욱 노력했다.      


그래서 보스가 나에게 잘 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한 그 날 이후부터 200여 페이지의 보고서를 작성하며 쓰고, 고치고, 확인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고, 확인하고의 반복을 거듭하며 나는 사무실 귀신처럼 한달 여 가량을 밤 12시 퇴근을 자처했다. 그리고는 마감을 앞둔 어느 날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내가 문득 너무 처량하여 견딜수가 없어졌다. 고요한 밤의 공기속에서 타닥타닥 타자소리만 낭자하던 사무실이 내 스스로 만든 파리지옥 같았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위이잉 하고 공허하게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고요하게 흘렀다. 이미 머릿속에선 로그아웃을 외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건 깊은 한숨과 함께 의자를 한껏 뒤로젖히며 잠시 모니터 앞에서 멀어지는 것 뿐이었지만.      


잘 하고 싶다. 그리고 칭찬받고 싶다. 나를 평가하는 그 누군가 혹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내편이 말하는 칭찬과 만족스런 미소를 볼 때 비로소 에너지가 꿈틀댄다. 이러한 칭찬은 곧잘 보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학창 시절 나의 보상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세상에 우리 둘 뿐 – 이라는 사실이지만 다소 서글픈 팩폭은 나의 열정을 자극하는 자극제이자 그럴 수 밖에 없는 명분을 만드는 말이었다. 그래서 둘 뿐이니깐 나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했고, 무엇이든 잘 해야 했고, 잘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열심히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책상 위 성실한 엄마 딸로 살기 위해 뭐든 열심히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마침내 박사과정수료를 마친 후 가진 두 번째 직장에서 나는 여전히 잘 하고 싶은 하나의 인간으로 사무실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것이다.     

 

잘 하고 싶다. 자라고 싶다. 비록 계약직일지언정 계약서의 숫자가 마지막이 되는 그날, 다시 새로운 곳에서 또다른 시작을 멋지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은 연봉으로, 더 안정적인 곳에서 내 일을,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그저 이력서 한줄일지라도, 언젠가 나의 내공을 패기있게 발표하고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구부정한 허리를 다시금 쭉 펴본다. 피곤해서 푹 꺼진 눈을 비비며 코앞에 닥친 마지막 최종 문서를 점검하며 오늘도 별 헤는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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