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결혼식 '웨딩 케이크' 얽힌 전통
미국에 와서야 알게된 웨딩 케이크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전엔 잘 몰랐습니다. 결혼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웨딩 케이크도 생일 케이크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날’을 기념하며 촛불을 켜고, 자르고, 여러 사람들과 축하하며 나눠먹는 정도의 의미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결혼식에 등장하는 웨딩 케이크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웨딩 케이크는 3단짜리로 많이 만드는데, 가장 윗층(Top Tier)은 결혼식에서 먹지 않습니다. 대신 잘 포장해서 냉동실에 보관합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처음 이 전통에 대해 들은 것은 미국에서 결혼 준비를 하던 유학생 친구를 통해서 였습니다. 친구들 중 처음으로 미국식으로 결혼하게 됐는데, 웨딩 케이크를 주문하고 오더니 이 믿기지 않는 '전통'에 대해 말해줬습니다. 웨딩 플래너가 케이크를 만들어줄 베이커리를 소개하며, 케이크의 맨 윗층도 아주 잘 포장해 줄 거라고 했답니다.
케이크 맨 윗층이라니? 무슨 뜻인지 몰라 이유를 물으니, 미국에선 결혼식 케이크의 가장 꼭대기층은 먹지 않는다고. 포장을 아주 잘해서 오랫동안 보관하기 때문에 이 것까지 잘해주는 베이커리가 인기가 많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냉동실로 간 케이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특별한 날 다시 테이블에 오릅니다. 전통적으로는 결혼 1주년 기념일이나 첫째 아기의 세례식이 ‘그날’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첫 아기의 세례식보다는 결혼 1주년을 먼저 맞이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1주년을 기념하며 부부가 먹는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케이크를 자르는 방법도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2층이나 3층짜리 케이크를 자를 때 보통 가장 윗층을 먼저 자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아래층에 칼을 댑니다. 맨 윗부분은 그 모양 그대로 유지해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케이크를 잘라 한 조각은 신랑이 신부에게, 그리고 또 다른 한조각은 신부가 신랑에게 각자 먹여주는 것도 전통적인 ‘케이크 먹는 법’입니다.
사실 '전통적인 방법'은 케이크 크림을 얼굴에 범벅하는 것인데, 정말 이렇게 했다간 예쁜 화장이 망가지기 원하지 않는 신부에게 평생 잔소리를 들어야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경우 케이크를 서로 먹어주고 입이나 볼에 약간의 크림을 묻히는 '귀여운 전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곤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가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 친구들에게 ‘웨딩 케이크 꼭대기층’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아직도 냉동실에 보관중인지를요. 그리고 항상 물어봅니다.
"진짜로 1년 뒤에 먹을꺼야? 1년 뒤에 먹는다고?"
그런데 이 전통은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 친구들에게까지 통용되는 듯 합니다. 최근 콜롬비아에서 온 메리벨이라는 친구를 알게 됐는데 메리벨 역시 현재 냉동실에 케이크를 보관 중입니다. 결혼 1주년이 되는 올해 11월, 남편과 같이 먹을 거라고 합니다.
친구는 “콜롬비아에서 결혼식을 하고 케이크를 챙겨서 가져왔다”며 사진까지 보여줬습니다. 미국으로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특별히 맨 윗층을 얇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1년이 지나서 먹는 웨딩 케이크. 과연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전통이 생긴 것은 19세기경으로 전해집니다. 당시엔 술에 담근 과일을 케이크 안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요. 하지만 요즘은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도, 재료도 많이 달라져서 보관법이 전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친구가 찾아간 베이커리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내세울만 합니다. 물론 구글만 해봐도 '웨딩 케이크 맨 윗층 보관법'에 각자의 조언을 해 놓은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거든요.
제가 “1년 뒤 케이크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고 하니 메리벨과 함께 있던 다른 친구가 아주 멋진 대답을 내놨습니다.
"냉동실에 있던 케이크의 맛은 남편에 따라 달라질꺼야. 1년 동안 남편이 잘해줬으면 케이크가 아주 달콤할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가장 맛 없는 케이크를 먹게 되겠지."
우리는 정말 그럴 것이라며 모두 신나게 웃었습니다.
문득 만약에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에 웨딩 케이크가 있다면 과연 어떤 맛이 날까, 생각해봤습니다. 반대로 남편은 그 케이크에서 어떤 맛을 느낄지, 궁금합니다.
덧붙여 한가지 더 재미있는 전통을 소개하자면 '케이크 풀(Cake Pull)'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빅토리안 시대에서부터 전해오는 전통으로 알려져 있는데 뉴올리언스 같은 남부지방에서 많이 행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동부와 서부에서만 지낸 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케이크 풀 이벤트를 하려면 처음부터 케이크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가지 모양의 '참(Charm)'을 리본에 연결하고, 이를 웨딩 케이크 맨 아래쪽에 넣어놓습니다. 참은 목걸이나 팔찌 같은 곳에 끼우는 작은 장식품을 말합니다.
신부의 들러리들은 케이크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각자 동시에 리본을 잡아 당깁니다.
'참'은 여러가지 모양이 있는데 각각 다른 의미를 담고 있어, 들러리들은 그날 자신이 고른 참을 행운의 부적으로 간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열기구나 에펠타워 모양을 선택하면 인생이 모험과 여행으로 가득찰 것이란 의미가 있으며, 별모양은 소원 성취, 네잎 클로버는 행운, 하트는 새로운 사랑, 연은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반지 모양을 뽑는다면 부케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번 결혼할 사람'이라는 행운을 안는 것이고요.
저는 단연, 에펠타워를 뽑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