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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OM Jan 09. 2016

씨푸드가 되고 싶은 딸

어느 아침, 세 살 그녀가 말하길.....

세 살된 딸이 있습니다. ‘따님’은 일하는 엄마 덕에 생후 7개월째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는 집 앞 데이케어로 출근합니다. 아빠 품에 안겨 영아반(Infant class)에 들어갔고, 지난해 여름에는 토들러반(Toddler class)으로 승진했습니다. 이젠 ‘언니반’인 프리스쿨 클래스(Pre-K)의 일원이 되어 교실에서 벌어지는 각종 일들에 먼저 아는 척을 해대는 ‘잔소리꾼’이 됐습니다.


아침 출근 길마다 우린 집 앞에 와 있는 신문을 만납니다. 호기심 천국인 따님은 “신문이다”며 먼저 반겨줍니다. 어느 날은 저도 호기심에 “저 신문은 누가 만들었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다솔이가 만들었지”라고 대답하더군요. 


장난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신문엔 엄마 글이 있어. 엄마는 ‘롸이러(writer)’자나.” 

그리고 다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다솔이도 롸이러가 될꺼야?” 

“응, 다솔이도 롸이러가 될꺼야.” 

“그래, 다솔이도 롸이러가 되서 좋은 글, 많이 쓰기 바래.”


분주한 아침 출근 길 치고는 세 살 딸내미와 나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하며 뿌듯한 마음에 아이를 차에 태웠습니다. 카시트의 안전벨트를 매어 주려는 찰나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한마디 덧붙입니다. 


“그런데 다솔이는 리포터(Reporter) 안좋아. 롸이러 좋아. 롸이러가 될꺼야.”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쿵’하는 소리가 심장에서 들렸습니다. 모든 것이 '얼음'하고 멈추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아이, 리포터와 롸이러의 차이를 아는 걸까요. 엄마가 소위 ‘리포터’라며 정신없이 다니던 시절,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하던 때를 기억하는 걸까요. 이제는 ‘집에서 글 쓴다’면서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엄마가 예전의 ‘리포터’ 엄마보다 좋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 일까요.

 

“그래, 리포터 말고 롸이러가 되렴. 롸이러 좋아”라고 아이 말을 한번 따라해주고는 운전대를 잡았는데 머리 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때 또다시 들려온 한 마디. 그 많았던 생각을 한번에 지워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엄마, 다솔이는 씨푸드가 될꺼야.”


씨푸드는 남편인 다솔이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눌 때 수없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씨푸드 있냐 없냐’는 물론이고, 씨푸드가 좋다느니, 씨푸드가 있어 행복하다느니, 아빠에게서 수 많은 ‘씨푸드’를 들었겠지요. 그리고 그때마다 즐거워하는 아빠 얼굴을 보았을 겁니다. 


유난히 바쁜 ‘워킹맘’을 엄마로 두었던 탓에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 그래서 아빠를 참 좋아하는 그 아이의 장래희망은 결국 씨푸드로 밝혀졌습니다. 리포터 좋네 안좋네 했던 말은 아이가 생각나는 대로 던진 단어에 ‘워킹맘’이 었던 엄마 혼자 도둑이 제발 저린 것이고요. 


“그래, 씨푸드가 되어 아빠랑 다른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렴”이라고 대답하며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씨푸드가 되고 싶다는 미운 세 살. 그 해맑은 표정을 보니 우린 모두 누군가의 ‘씨푸드’가 되고 싶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출근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꽃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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