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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탕산(雁荡山) 탐방기(2/3)

암봉들과 그림자놀이

by 꿈꾸는 시시포스

객잔 부근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든 후 걸어서 영봉(灵峰) 풍경구에 도착하니 오후 여섯 시 반경이다. 이 구역은 야간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밤늦은 시각까지 개방을 한다고 한다. 자못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증이 인다.


검표소에서 안면인식 후 입구로 들어서니 계곡 앞쪽에 한 쌍의 죽순이 솟아 있는 듯한 모습의 높이 80여 미터의 쌍순봉이 맞이한다. 그 뒤 첩첩 암봉들이 희미한 안개구름을 걸친 모습이 잠시잠깐 사이에 인간계의 경계를 넘어 선계(仙界)로 들어선 느낌이다.


계곡에 걸린 1902년 건립된 아치형 돌다리 과합교(果盒桥)는 건너지 못하게 낮은 목재 문을 잠가 놓았다. 그 아래 연초록 빛깔 맑은 물이 고인 계곡에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닭 두 마리가 목을 빼들고 버틴 모습이라는 두계봉(头鸡峰)을 지나 500여 미터 거리 합장봉으로 향한다. 이어서 화산 분출 시 두꺼운 유문암 층이 형성된 봉우리라는 약 백 미터 높이의 초운봉(超云峰)이 눈에 들어온다. 과합정에서 바라보는 코끼리 코처럼 생긴 길쭉하게 높이 솟은 암봉 상비암의 형상도 일품이다.


계곡을 타고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 땀에 젖은 얼굴의 열기를 식혀준다. 이정표가 각각 500, 100, 300미터 지점에 자리한다는 관음동(观音洞), 오동각(五洞), 영봉고동(灵峰古洞) 방향은 길을 차단해 놓았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니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일 터이다.


계곡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자니 발 밑으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길옆에 '풍동(风洞)'이라는 표지판 아래 바위 절벽 갈라진 틈새에서 에어컨 바람처럼 차가운 바람이 밀치고 나온다. 한동안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열기를 식혔다.


진입로를 차단해 놓은 영봉고동 입구에 다다를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관음동 은은한 종소리와 불경 암송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잔잔히 흐를 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씻어 내며 출구로 향한다.


언제 몰려 올라왔는지 관음동 아래 공터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어둠에 잠긴 봉우리들을 올려다보며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계곡 좌측 내려가는 길에서 어둠에 잠긴 건너편 봉우리들을 조망하면서 해설사로부터 봉우리에 담긴 얘기를 듣는 영봉 야간 투어를 하는 모습이다.


각각의 봉우리들이 잘 조망되는 곳마다 커플봉(情侶峰), 목동 훔쳐보기(牧童偷看), 잠자는 미인(睡美人), 할미봉(婆婆峰), 시아버지봉(公公峰), 과일상자 삼경(果盒三景), 황혼의 로맨스(黄昏恋), 연대관음(莲台观音), 소녀 마음을 열다(小女开怀), 수성송객(壽星送客) 등 각양각색 이름의 푯말이 서있는데, 해설사들은 각각의 봉우리에 곁들여 놓은 그럴듯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대부분 하늘과 암봉의 경계나 암벽의 음영이 만들어 낸 형상에 상상을 더하여 이름을 짓고 이야기를 곁들여 놓은 것이다. 레이저 건으로 비추며 설명을 하는 것이 마치 동심으로 돌아가 그림자놀이를 하는 기분이 든다. 해선탕(海鲜汤) 한 그릇을 시켜서 들었던 식당 여주인이 야경 관람 시에는 여행해설사(导游)가 필요하다고 한 이유를 알만하다.


7시 반경 영봉(灵峰; 링펑) 풍경구 입구에서 눈에 띄는 택시를 잡아타고 지척에 있는 객잔 앞에 내렸다. 로컬 맥주 '옌탕산 피지우(雁荡山啤酒)' 한 캔과 주전부리 두어 가지를 사들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만보기 앱을 켜니 하루 동안 걸은 걸음이 약 25,000보라고 알린다.


고속열차로 반나절을 달려와서 오후 반나절과 야경 투어로 짧은 시간이나마 옌탕산을 둘러보니 '중국 십 대 명산의 하나'라는 이름에 걸맞은 명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두 살 때부터 평생토록 중국 전역을 유람하며 60만 자에 이르는 <서하객유기(徐霞客游记)>를 후세에 남긴 서하객(徐霞客, 1587-1641)도 세 번이나 옌탕산을 찾았다고 한다.


여행가이자 탐험가요, 지리학자이자 탐험가로 '만고 기인'으로 불리는 그도 옌탕산을 "빼어남이 천하 제일(天下奇秀)”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늦은 밤 객잔 주인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 여권을 한 번 더 확인을 하며 번거롭게 했지만 옌탕산 품속 객잔에서 하룻밤을 묵는 감회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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