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행 마지막 날 아침을 맞는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잔뜩 먹구름을 머금었다. 1층 식당은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어제보다는 한긋지다. 아침 아홉 시가 넘어 호텔을 나서 가장 가까운 롱진루베이(荣军路北) 버스정거장으로 가서 롱탄공원(龙潭公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곳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류저우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첫손가락에 꼽으니 주저할 필요가 없지 싶었다.
바이두 지도에서 목적지를 찍고 교통수단을 선택해서 조회하면 대중교통 검색, 택시호출,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해서 편리하다. 대중교통으로 검색하니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419미터 거리의 롱진로베이(荣军路北) 정거장에서 10분 후에 도착하는 69번 버스를 타면 37분 만에 롱탄의원 정거장에 도착하다고 안내한다.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 더위의 기세를 꺾었는지 시원하게 온몸을 스친다. 버스 정거장 부근 작은 상점에 들렀는데 우산은 팔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해서 한동안 퍼붓더니 잠시 후 잠잠해진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처럼 지나가는 비면 좋겠다.
정거장으로 하나둘 모여든 남녀 노인 대여섯 분과 함께 69번 버스에 올랐다. 저푸바오(支付宝)의 '류저우 대중교통 승차 큐알코드(柳州公交乘车码)'를 스캔하여 2위안을 지불하고 좌석에 앉았다. 출근 시간이 지난 후라 그런지 버스에는 대부분 노인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롱탄의원 정거장에서 공원의 동문까지는 380여 미터 거리다. 공원이 가까워지자 다시 소나기처럼 굵은 비가 세차게 내리친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건물 아래 처마로 냅다 내달렸다. 열대지역의 스콜처럼 빗줄기는 굵고 강렬하다.
한참 동안 비를 피하며 쪼그리고 앉아서 위챗 페이스북 밴드 카*스토리 등을 둘러보고 일어섰다. 현재의 시공을 잠시 벗어나서 내게 맞춰진 또는 내가 맞춰놓은 관심 사안들과 인물들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빠져나와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핑 돈다.
버스에서 내린 지 30여분이 지나자 빗줄기가 가늘어져 길 건너 가게로 가서 우산 하나를 사들고 숲 한가운데로 곧게 뻗은 아스팔트 보도를 따라 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분황사탑 모형을 닮은 구층 지붕의 목조 건물은 동족의 고루(侗寨鼓楼)를 재현해 놓은 것이다. 곧게 솟은 야자수와 비스듬히 누운 활엽수 숲을 지나자 연못 위에 4층 기와 누대 다섯 개와 회랑처럼 지붕이 덮인 풍우교(风雨桥)가 자태를 드러낸다.
댐처럼 다리 아래 윗 물을 가두고 있는 좁은 보도를 따라 호수를 둘러싼 수려한 봉우리들과 어우러진 발치의 풍우교를 찬찬히 올려다보며 건너편으로 가르 지르며 걸었다. 화교(花桥)또는 복교(福桥)로도 불리는 풍우교는 중국 남방 일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다리, 탑, 정자로 구성된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다리 표면에 판자를 깔고 양쪽에 난간과 벤치를 설치하고 기와를 덮은 긴 복도식 목재 구조물이다.
풍우교를 올려다 보고, 호수 속 물고기에 눈길을 주고, 스마트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셔터를 누르는 등 많은 사람들이 빼어난 풍치에 흠뻑 취해 있다. 풍우교에 오르니 눈에 들어오는 풍치가 한층 더 아름답다. 장랑 양벽 상단에는 풍우교 전설, 결혼풍속, 직물을 짜는 모습, 음식을 만들고 함께 식사를 하는 등 다양한 동족(侗族)의 습속에 관한 아름다운 채색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인생 숏 한 컷을 남기려는 듯 많은 유람객들이 쉬이 발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한다. 한동안 다리 위 누대 가장자리의 벤치에 걸터앉아 땀을 식혔다.
전통 동족(侗族) 마을을 재현해 놓은 '동족심처(侗族深處)' 입구에서 중년의 동족 여인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입장해서 둘러보라는 그녀의 권유를 사양하고 야오족 마을인 '야오자이(瑶寨)'로 걸음을 옮겼다. 비는 말끔히 그쳤고 열기는 누그러져 숲길에는 서늘한 바람이 간간이 스쳐간다.
멀리서 우리 동요 <반달>의 반주 소리가 들려 무슨 연류인지 의아했다. 대나무 모양 자재로 벽과 기둥을 세운 낮고 단출한 소담한 건물과 정자들이 자리한 야오자이를 가로질러 이정표가 가리키는 산기슭 위 묘족 마을로 향했다.
경사진 산록에 자리한 정자들과 묘왕정(苗王亭) 등 번듯한 건물들만 덩그러니 자리할 뿐 정작 거처를 지키고 있어야 할 묘족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소수민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성(省)이라 할지라도 성도나 대도시들은 한족들이 차지하고 있고 소수민족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곳도 적지 않다.
묘자이(苗寨) 정문을 나서서 롱탄공원 북문 쪽으로 가는 길 좌측에 장족 마을로 인도한다. 가장자리에 작은 정자 진수정(进水亭)을 낀 연못에 수면 위 키높이로 자란 연(莲)이 줄기 끝에 쟁반처럼 큰 연잎을 펼치고 있고 더러는 연분홍빛 연꽃을 피워 올리기도 했다.
류저우의 택시나 식당에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았던 장족(壮族) 여인네들은 하나같이 싹싹하고 다감했다. 수려한 산수 속에 터전을 잡고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소수민족들의 심성에 어찌 사악함이 깃들 수 있을까.
공원의 북문 출구 쪽에 어린이 놀이터가 자리한다. 유후공원도 마찬가지이지만 중국 여느 도시든 웬만한 규모의 공원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딸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야오족 마을로 가던 길에 들려오던 <반달> 반주와 중국어 노래 가락은 놀이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인데, 우리 동요가 중국에서도 불려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원 북문 쪽 버스정류장에서 19번 버스를 타고 화양니엔샤오취(花样年小区) 정거장에서 내려 70번 버스를 갈아타기로 했다. 마침 점심 때라 출출해하는 배를 달래기로 했다.
'구이린 미펀점(桂林米粉店)'이라는 식당으로 들어서서 니우난펀(牛腩粉) 한 그릇을 시켰다. 류저우에 오면 반드시 뤄쓰펀(螺蛳粉)을 먹어 봐야 한다고 하지만 주구장창 뤄쓰펀만 고집하지 않은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70번 버스를 타고 호텔 부근 마안산(马鞍山) 정류장에서 내렸다.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당초 예정된 퇴실 시간을 오후 여섯 시쯤으로 늦추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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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류저우 시내 명산 중 하나인 판롱산(潘龙山)을 산정까지 올랐다 내려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류강 강변을 끼고 판롱산 옆 덩타이산(灯台山) 가장자리로 난 계단길을 지나 문묘로 향했다. 산 언저리에 자리한 덩타이정(灯台亭)을 넘어서니 덩타이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한 문묘가 황금빛 지붕을 드러낸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대성전, 명륜당, 숭경당이 자리한 경내로 드는 정문은 굳게 잠겨 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이 잠긴 문에 오히려 안도한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쟝빈공원(江滨公园)으로 접어들어 호텔 쪽으로 향한다. 원후이교 부근 강물 속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어울려 수영을 즐기고 있다. 그 아래쪽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는데 수영장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부럽고 한 번 물속에 뛰어들고픈 마음을 억지로 다독였다. 다음에 류저우에 올 기회가 있고 그때가 여름이라면 반드시 수영복을 챙겨 와서 저들처럼 류강에 몸을 담가 볼 것이다.
류강(柳江)에서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
좁은 포지아항(颇家巷) 골목길을 통과하여 큰길에 접한 시장 골목으로 걸음을 옮겨 쫑즈, 미엔빠오, 음료수, 복숭아 두어 개 등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서 허기를 달랬다.
옛 친구 얼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갑천하(甲天下)'라는 구이린(桂林)의 산수와 류저우(柳州)의 수려한 풍광을 둘러보았으니 중국 남방 땅에 대한 궁금증의 허기도 조금은 가신 기분이다. 상하이로의 비행을 위해 류저우 바이리엔(白莲) 공항으로 향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