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시 당국이 두 달간의 도시 봉쇄를 풀자 빛나던 봄이 다 지나가 버렸다. 동네 거리의 담장 너머로 농염한 능소화가 고개를 내밀었고 시나브로 강남땅 특유의 습하고 더운 날씨가 시작되었다.
두 달간의 상하이 전역 봉쇄는 유월이 되면서 풀렸지만 구역별로 통행 허용과 출입통제가 반복되고 있다. 상하이 시 전역 동네마다 설치된 임시 검사소에서는 시민들이 이삼일에 한 번씩 핵산검사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식당 등 건물이나 공공장소, 심지어 거주하는 아파트를 출입하는데도 삼일 이내에 코로나19 핵산검사 음성 증명코드(건강마, 健康码)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 상하이 지하철(소묘)
코로나19 방역 소재 그림 전시품
식당가의 음식 배달원들
토요일 오후 넉넉한 낮잠으로 주중의 피로를 잠재워 보려 했다. 불현듯 와이탄을 한 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리루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밝은 얼굴의 남녀노소들이 졸졸 흐르는 개울물처럼 경쾌하고 발랄하게 유월의 거리를 채우고 있다. 전철역 지하도 입구로 내려서니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땀이 배인 이마며 팔과 겨드랑이로 파고들며 몸을 움츠리게 한다.
젠캉마를 제시하고 탑승장으로 내려섰다. 봉쇄 이전의 아무 일 없던 예전 상하이 주말처럼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철도 아무 일 없었던 일상처럼 플랫폼으로 들어와서 승객을 내리거나 태우고 다음 역을 향해 출발한다.
봉쇄 중 상하이 시의 보급품/ 아파트 주민 공동구매 계란
아파트 단지의 코로나19 핵산검사
와이바이두(外白渡) 다리
난징동루 전철역에서 내려 보행가 거리 초입 통유리창 너머 사람들로 북적이는 애플 매장에 들러보았다. 가볍고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스마트 폰 신상 등 여러 제품들 가운데 노트패드가 특히 오래도록 눈길을 끈다. 특이한 것은 손님들 못지않게 매장 점원들 숫자가 대등하게 많은 점이다. 애플의 영업전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행가 거리를 한 번 왕복한 후 출출해진 배를 채울 겸 해서 닝보루, 저장루, 광시루, 베이징루, 샨시난루 등 그 주변 곁가지 길을 둘러보며 적당한 식당을 살펴보았다. 많은 식당들이 실내 취식이 불가하지만 몇몇 곳은 손님을 받기도 한다. 푸지엔중루(福建中路)에 자리한 즉석 곱창구이 가게 '추이파지 루따창(崔发记卤大肠)'과 텐진루에 자리한 훠궈 가게 라오푸지아 티에궈뚠(老朴家 铁锅炖) 앞 보도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두 달간 집에 갇혔다가 발이 풀리자 봉쇄 전에 즐겨 찾던 맛집으로 한달음에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자전거로 쑤저우허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쩐루교(乌镇路桥) 옆 황산반점에서 '광밍(光明)' 맥주 한 병을 곁들어 늦은 저녁을 들었다. 식당 주인 부부도 내 탁자 옆에서 갓 스무 살 정도 보이는 남매와 마주 앉아 맥주 두 병과 함께 밥상을 차려 막 저녁을 들기 시작한다. 막내딸인 듯 보이는 아이의 밥상머리 투정이 여느 가정의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내리는 쑤저우허(苏州河) 강변 길로 들어섰다. 쑤저우 허는 바다처럼 넓은 황푸강에 비해 강폭이 5-60미터로 좁아 정감이 가고 고즈넉하여 상하이니즈들이 사랑하는 산책 코스다.
쑤저우허 주변 골목
항상 인파로 북적여 시끌한 와이탄 쪽에서 바라보는 푸동의 야경은 화려하고 장쾌하지만, 황푸강으로 흘러드는 쑤저우허 언저리에서 저 멀리 한눈에 들어오는 푸동의 빌딩군은 미니어처처럼 소담하고 신비스러워 보인다.
쑤저우허 위에 놓인 자푸루교(乍浦路桥) 위에서 쑤저우허 물 위로 화려한 조명으로 화장을 한 제 모습을 비추고 있는 푸동 빌딩군의 야경을 한동안 감상했다.
지하철역, 베이와이탄 강변공원, 쑤저우허 강변 산책로, 식당 등 어림잡아 예닐곱 번 젠캉마를 스캔을 하고서야 와이탄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중국 당국은 언제까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할 것이며, 팬데믹의 긴 터널은 언제쯤 끝이 날지 기약 없는 하 수상한 시절이다. 2022.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