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려서 온 천지가 흰 옷을 입고 있다. 팔당대교를 건너 팔당전철역 부근에 주차했다. 일출 시각이 되지 않아 강과 호수의 마을 팔당은 아직 미명이다. 팔당 2리 마을을 가로질러 예봉산 들머리로 향했다. 드문드문 흩날리는 얇은 눈송이는 하늘의 눈 망태기에서 마지막으로 털어내는 파편인양 가볍게 하늘대며 낙하한다.
마을 어느 집 닭이 회를 치며 새날이 밝았다고 알린다. 도로에 쌓인 눈은 발길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서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들머리에 다다를 즈음, 예봉산강우레이더 관측소 근무차 올라가는 중이라는 남성 한 분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3년 전쯤 예봉산 정상에 건립 중이던 관측소가 완공되었나 보다.
율리봉 쪽으로 향하는 그분을 뒤쫓아 계곡 옆길을 따라 오르니, 관측소 베이스 건물이 나온다. 눈을 쓸고 있던 또 다른 관측소 근무자의 율리봉 코스는 가팔라서 오르기 힘들다는 말에 따라, 예전에 들머리로 삼던 코스로 회귀해서 산행을 시작했다.
중년 남성 한 분과 남녀 한 쌍이 나를 지나쳐 들머리로 들어선다. 아이젠을 채우고 스틱을 펴며 느긋한 마음으로 그들을 뒤따른다.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았고, 까치들은 신명이 났는지 들머리 부근에서 합창을 하며 산객을 맞아 준다.들머리에서 1km 조금 지나, 예봉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 줄기에 올라섰다. 앞서 갔던 세 분이 능선마루 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스틱을 펴고 아이젠을 채우는 등 본격적인 산행 채비를 한다.
예봉산 산정으로 난 능선길은 가파른데, 가파른 만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리에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파른 길은 고통이 따르지만, 한 발짝을 옮길 때마다 고도는 쑥쑥 올라갈 터이다. 누구나 성장통을 앓듯 비약과 약진은 고통이 동반하기 마련이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바람이 없고 공기는 차고 상쾌하여, 찔끔 삐져나올 뿐 땀도 별로 흐르지 않는다. 솜이불 위를 걷는 것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다.
정상 어깨춤 능선으로 올라서자, 좌우 깊은 골 너머 산정에서 갈라져 내린 산줄기들이 드러나며 시야가 툭 트인다. 우측 전방 율리봉 위로 태양이 눈부시게 얼굴을 내민다.눈은 세상의 추한 모든 것들을 덮어 주고 때론 아름답게 비춰주기도 한다. 내린 눈이 바위에 달라붙어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바위를 캔버스 삼아 자연이 그린 그 그림은 한 무리의 양 떼가 목자를 따라 초원에서 풀을 뜯는 광경을 연상케 한다.
눈길을 오를 때는 발을 얹어 놓듯 지그시 누르면서 천천히 걸어야지, 내던지듯 급하게 걸으면 미끄러져 넘어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산정 턱밑에서 비박을 하고 내려온다는 남성 한 분과 인사를 나눴다. 큰 배낭을 벤치에 올려 두고 틈틈이 말을 나누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그, 비박의 감흥을 기록하며 되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설 예보에 들뜬 마음으로 무게가 16kg쯤 된다는 배낭을 챙겨 들고 하루 전 산정으로 올랐을 것이다.
막바지 된비알이 만만찮다. 보폭을 조금이라도 크게 잡을라치면 미끄러지고, 스틱을 욕심껏 넓게 내 짚으면 팔의 힘줄이 당긴다. 산정 지척 등로 오른편으로 모노레일이 나타나고, 그 끝에 강우레이더관측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해발 683미터 산정으로 올라서니 낯익은 정상 표지석이 반겨준다. 큰 배낭을 지고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정으로 오르던 남성은 산정 바로 아래 움막 매점에서 배낭을 내리고 짐을 풀고 있다.
산정 바로 아래 자리한 관측소의 둥근 돔형 지붕은 산정보다 높이 솟아 있다. 관측소 건물은 한강 쪽 방향에 턱 하니 버티고 앉아 조망을 가로막고 있어, 예봉산을 찾는 산객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굳이 조망을 가로막는 자리에 세워야 했다면, 옥상에 산객들을 위한 조망대라도 설치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용문사 은행나무, 두물머리, 세미원, 남한강 자전거길 등 양평팔경에 더하여 양평의 제9 경이될 수도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좌측 옆으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 두물머리 수면 위에 드리운 주홍빛 아침 낙조가 황홀하다. 한동안 주위 경관을 조망했다.
철문봉으로 가는 내리막길은 가파르고 발목 높이로 눈이 쌓여 있다. 난간의 허리 높이 밧줄에 의지해서 미끄러지듯 그 길을 내려갔다. 백설탕처럼 태양빛을 반사하는 발 밑만 쳐다보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다 보니, 설맹(雪盲) 현상이라도 온 듯 눈이 부시다. 철문봉에서 경사로를 내려서고 억새와 철쭉 군락지도 지나자, 한강과 좌우로 구리시와 하남시 전경이 툭 트인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이 맞이한다. 산중 평원처럼 순백 눈이 덮인 활공장 위, 어린 나무숲 그림자 사이에 내 그림자 하나를 만들어 세우자, 숲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하다.
마주쳐 오던 산객 한 분은 운길산 쪽 비탈길이 많이 얼어서 두어 번 넘어졌다며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산행 3시간 만에 적갑산 표지석을 지났다. 길 옆 덩치 큰 참나무에 시비라도 걸듯, 간간이 등산화 밑창 가장자리 부분으로 밑동을 툭툭 걷어차며 신발에 엉겨 붙은 눈을 털어 냈다. 운길산 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이 냉기를 품어 제법 싸늘하다. 모자에 달린 귀가리개로 귀를 덮고 점퍼도 자크를 턱밑까지 바짝 올려 여몄다.
적갑산 능선을 비껴 내려서며 3킬로 거리의 운길산 쪽으로 향한다. 등로 눈 위를 지나간 발자국 덕분에 잘못된 길로 들어설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새고개를 지나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내려오는 산객 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숨을 돌렸다.
눈을 이고 있는 나무들은 흰 껍질이 고귀해 보이는 박달나무처럼 보인다. 비탈길로 작은 능선에 올라서자 고사한 노송 두 그루가 서있다. 새하얀 눈이 쌓인 산비탈에 앙상한 가지에 껍질까지 벗겨진 모습이 처연해 보이지만, 두 그루가 친구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서있어 다행이다.두어 번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자, 깊이 주저앉은 능선 저 멀리 우뚝 서있는 운길산 정상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산정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길 주변 나무 위에서 까마귀들이 우악스럽게 짖어 댄다.
오후 1시경 해발 610미터 운길산 정상에 올라섰다. 전망대에서 한강 쪽을 마주하고 섰다. 예봉산과 지나온 능선들, 두물머리로 모여드는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 양수대교, 양수철교...
벤치에 앉아 미리 보온병에 불린 누룽지를 주위를 맴도는 작은 텃새들과 함께 나누었다.운길산 산정에서 800여 미터 거리의 수종사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산행의 종착지인 운길산역까지는 3km여 거리이다. 수종사 쪽에서 올라오 산객들이 제법 많은데, 그들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수종사의 불이문 쪽으로 내려섰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해탈문으로 난 좁고 긴 돌계단길을 오르면, 한강 쪽으로 돌출된 안부에 수종사가 자리하고 있다. 경내로 들어서서 대웅보전, 범종각, 삼정헌(三鼎軒 ), 수령 600여 년의 은행나무, 오 층 석탑 등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산령각 앞 전망대로 올라서면, 수종사 전경을 비롯해서 북한강과 그 너머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겸재의 그림 <독백탄>
이처럼 수려한 경관 때문에 옛부터 수많은 명인묵객들이 찾아 들었을 것이다. 이 부근을 둘러본 겸재 정선도 '독백탄(獨栢灘)' 제하의 두물머리 풍경 산수화를 남겼다. 네 해 전 초여름 산행 때, 수종사에 들렀던 감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말미에 만난 수종사는 기대했던 대로 이번 산행의 백미이자 큰 기쁨이다. '수종사가 동방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 격찬했다는 서거정의 평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금껏 가보았던 사찰 중 수종사의 풍치에 견줄 만한 곳은 잘 떠오르지 않으니까!" _2019.6월
수종사에서 운길산역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포장길로, 긴 산행에 지친 다리가 삐걱거려 고역이다. 운길산역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경의중앙선 전철에 올라, 예봉산과 예빈산의 능선 밑으로 뚫린 긴 터널을 지나 팔당역에 도착했다.
팔당역 화장실 한편 벽면의 눈에 띄는 낙서 "김정ㅇ 똥돼지ㅅㄲㅣ"에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복궁 낙서 사건이 오버랩된다. 문화재를 훼손한 낙서범에 대한 엄정한 처벌의 목소리가 높지만, 우리 사회는 공공 이용시설인 은밀한(?) 공간에서의 일탈엔 관대한 편이다. 누군가는 "화장실은 문화"라고도 했는데, 화장실에서의 일탈 행위는 경복궁 낙서범의 주장처럼 '예술 행위'로 봐줘도 되는 걸까!
눈과 안개의 마을, 양평으로의 겨울산행은 언제나 특별하다. 이번 산행도 그랬다. 배추 전에 막걸리 한 잔 걸치기에 제격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