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기온이 30도 중반에 육박하여 폭염주의보 알림 메시지가 수시로 날아든다. 지리산 산행 대장정을 위해 21:30경 집을 나섰다. 지루하게 머물던 장마전선은 물러갔고, 한두 시간 전부터 가늘게 내리던 비도 그쳐 다행이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동서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동행할 친구들도 목동, 화정, 일산에서 각각 출발한다는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약 한 달 전에 친구들과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 산행 날자를 잡았었다. 이번 산행의 코스는 성삼재를 출발하여,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 능선을 거쳐, 대원사로 내려서는 이박삼일 일정의 소위 '성대종주' 산행이다.
지리산 첫 종주산행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대학 친구들과 함께 화엄사를 출발해서 중산리로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터목에서 추위와 싸우며 야영을 했던 처절한 기억과, 쏟아져 내릴 듯 밤하늘 가득 빛나던 황홀한 별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한 차례 더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에 올랐는데, 정상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뿐 산행 기록을 남기지 않아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 때문인지 30여 년 만에 다시 지리산 종주산행을 결행하기로 하고, D데이를 기다리며 마음은 한껏 기대와 설렘에 부풀었다. 지리산 종주산행이 처음이라는 H와 B도 기대가 남다를 것이다.
한편으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긴 시간 먼 거리를 무사히 종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출발하는 날을 기다리며, 장거리 산행에 필요한 큰 용량의 배낭, 에어매트, 버너 등 장비와 삼일 간의 식량 등을 틈틈이 준비했다. 가급적 최대한 줄이려 했지만 배낭 무게는 10kg을 훌쩍 초과했다.
동서울 터미널에 여유롭게 들어서서 먼저 도착한 M과 H, 뒤이어 도착한 B와 합류했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비도 제법 내리기 시작한다.서울에서 전국 각지로 떠나는 버스의 출발지인 동서울 터미널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편의점이나 식당 등 여객 편의시설을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 성삼재로 가는 23:00 발 버스가 출발하는 34번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남녀노소 삼삼오오 모여든 승객들은 하나같이 크고 무거운 배낭을 화물 칸에 넣고 차에 올라 빈 좌석을 거의 다 채웠다. 버스는 지리산 산행을 가는 승객을 태운 등산버스인 셈이다. 뇌우를 동반하는 빗속으로 나선 버스는 쉼 없이 밤길을 달려, 예정된 시각보다 이른 다음날 02:40경 성삼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 동서울터미널 -> 성삼재 행 버스 - 금요일 3회(22:50, 22:55, 23:00 출발) - 토~목 1회(23:00출발) * 동서울터미널->백무동 행 버스 3회/1일
동서울-성삼재 운행 버스/지리산 깃대종 반달이
종주산행 첫날
첫날인 산행은 성삼재(性三峙)를 출발해서 노고단, 임걸령, 노루목, 반야봉, 삼도봉, 화개재, 토끼봉, 연하천 대피소,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대피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튿날 코스는 벽소령을 출발해서 선비샘, 칠선봉, 영신봉, 세석평전, 촛대봉, 삼신봉, 화장봉, 연하봉을 거쳐 장터목대피소까지로 계획했다. 마지막 날인 3일째는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른 새벽 장터목을 출발해서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을 오른 후, 중봉을 거쳐 대원사로 이어지는 하산길에 오를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해발 1,102m 성삼재에 발을 디디니 팔에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다. 옅은 구름이 잔물결 치는 검푸른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뭇별들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던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지리산은 이번 산행의 첫 대면부터 총총 빛나는 별들이 가득히 밤하늘에 대한 고대를 십분 충족시켜 주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 휴게소로 이동해서, 일단의 산객들과 어우러져 떡과 음료 등으로 이른 아침을 들었다. 휴게소와 붙어 있는 24시간 무인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반바지를 긴바지로 갈아입고 윈드재킷을 꺼내 입는 등 산행 채비를 했다. 일행과 함께 주차장 가장자리 한편에 서있는 지리산 깃대종 반달이 동상 앞에서 인증 숏 한 장을 남기고, 03:40경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성삼재에서 2.7km 거리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산길이라기보다는 느슨한 오르막으로 비포장 도로에 가깝다. 앞서 출발한 M을 뒤쫓아 나머지 일행 셋은 해드랜턴에 의지해서 발길을 재촉했다. 짊어진 배낭의 무게에 익숙해지지 않은 어깨가 힘겨워 한다. 노고단에서의 일출을 보리라 계획했던 터라 일출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어 걸음은 느긋하다. 밤새 소나기가 내렸는지 등로 곳곳에 만들어진 물웅덩이를 피하며 무넹기를 지나고 나무계단길, 자연석을 깐 너덜길 등을 거쳐 다섯 시에 못 미쳐 노고단 고개에 올라섰다.
노고단에서의 해맞이
노고단 운해와 일출
고개 한편에 배낭을 내려 두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M이 미리 노고단 출입신청을 해둔 터라 인원 확인 후 입구로 들어설 수 있었다. 노고단을 오른쪽으로 휘돌아 오르는 나무 데크 길 주변은 키 작은 관목과 초목만 무성하여 시원스레 전망이 트였다. 고개를 젖히니 능선에 걸려 있는 오리온자리와 그 위쪽의 카시오페아 등 익숙한 별자리들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별들은 여명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검푸른 하늘 속으로 하나 둘 모습을 감춘다.
이십여 분 만에 노고단에 올라서니 키를 훌쩍 넘어서는 높이의 노고단 표지석과 그 뒤로 기단처럼 돌을 쌓아 올린 원뿔꼴 모양의 탑이 맞이한다. 노고단 아래 우뚝한 송신탑은 눈에 띄는 유일한 인공물이고 온 골짜기를 채운 운해 사이로 구례 화엄사 쪽 마을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너울처럼 새하얀 운해 위로 다도해의 섬처럼 드러난 능선이 겹겹 펼쳐져 있고, 일출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여명이 시시각각어둠을 몰아내며 동편 능선과 하늘 사이에 수평으로 길게 그은 가는 붉은빛 노을을 점점 더 하늘로 넓게 펼치기 시작한다.
많은 산객들이 일출 시각에 맞춰 속속 노고단 정상으로 모여들었다. 기다리던 일출 시각 05:45이 가까워지고 사방을 훤히 분간할 수 있게 될 즈음 반야봉 뒤로 겹겹 늘어선 능선 위로 태양이 홀연히 붉은빛을 뿜으며 노을을 뚫고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노고단 일출은 동해 해변의 일출에 비해 태양의 크기는 구슬처럼 작아 보였지만 그 빛은 그 어디에서 보던 일출보다 더욱 영롱하고 강렬했다.일출을 보고 대피소로 되돌아 내려오는 길엔 어둠이 완연히 물러나고 시야가 더욱 트여 운해의 장관이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다가왔다.
산행 첫날 시작부터 노고단 일출과 더불어 지리산 10경의 제3경인 '노고단 운해'를 직접 보는 행운까지 누리는 셈이다. 지리산 제5경 '벽소령 명월'은 초승달이 뜬 하늘이 대신하겠지만, 날씨와 시각이 맞아떨어진다면 제1경 '천왕봉 일출'과 제8경 '연하선경'도 눈앞에 목도하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반야봉과 주능선의 갈림길 노루목
주 능선으로 접어들다
여섯 시경 노고단 출입구로 되돌아 내려와서 지리산 주 능선을 따라 임걸령으로 향한다. 이처럼 이른 시각에 마주 오는 산객이 있어 어디서 오냐고 물으니 노고단 인증 스탬프를 찍으러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경사가 거의 없는 너덜길과 관목 숲길 등이 길게 이어진다. 저번 주 고도가 이곳과 비슷한 계방산에서 눈맞춤했던 동자꽃 모싯대 등 들꽃들이 이곳 등로 주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관목이 다하고 돌탑이 나타나는 곳에 산림청 백두대간 식생조사단원들이 내어준 자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산너울 사이 수많은 골짜기들은 여전히 운해에 잠겨 있다. 평탄한 돼지령과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07:30경 임걸령에 닿았다.
임걸령의 샘물은 듣던 것과 달리 끊길 듯 끊기지 않으며 감질나게 졸졸졸 흘러내린다. 물주걱에 물을 받아 물통을 채우고 있던 젊은 남녀 산객 한 쌍이 자리를 비켜주며 주걱을 건네는 아량을 베푼다. 줄어든 물병을 채울 마음을 접으며 노루목으로 향한다.
매년 두어 번 지리산을 찾았다는 M의 말대로 노루목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노루목으로 향하는 길 좌측 앞쪽으로 반야봉의 원만한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노루목에 올라서서 바위 무덤 주변에 배낭을 내려두고 지리산 제3봉인 반야봉으로 향한다.
반야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이 계속 이어진다. 등로 옆으로 고사목들이 얼굴에 홍조를 띤 시골 처녀처럼 생긴 동자꽃 군락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광경이 스쳐 지난다. 산정에서 내려오는 두 젊은 여성 산객에게 산정 위로 비둘기 날개처럼 펼쳐진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고 발길을 재촉했다.
높게 떠오른 태양은 뜨겁고 달아오른 몸은 땀이 비 오듯 하지만 수목 사이로 난 그늘진 등로를 지날 때면 선선함이 느껴진다. 반야봉 정상은 그 턱밑에 가파른 나무 계단을 내놓으며 산객을 맞아준다.
복슬강아지의 꼬리처럼 생긴 산오이풀이 반기는 산정의 저쪽 끝에서 반야봉 정상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등로 쪽으로 무채색 구름이 노고단을 넘어서 천군만마처럼 능선을 집어삼키며 엄습해 와서 제3봉인 반야봉은 넘보며 눈 아래 운해를 펼쳐 놓았다. 천왕봉 쪽 능선은 피어오른 흰 뭉게구름이 한 폭 그림을 펼쳐 보이며 손짓한다.
삼도봉(위)/화개재(아래)
노루목으로 되돌아 내려와서 삼도봉까지 약 1km 이어지는 바위 너덜길에 발목과 무릎이 힘겨워한다. 정상 아래로 마중 나온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날라리봉으로도 불리는 삼도봉에 올라섰다. 넓고 평평한 바위 봉우리 위에 한 면에 각각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라고 적힌 삼각뿔 형 표지석이 놓여 있는 삼도봉 정상은 이 지점이 3개 도의 경계가 맞닿는 곳임을 알린다. 여름이 아직 물러나지 않았다고 시위하듯 고추잠자리 떼가 어지럽게 군무를 추고 있다.
앞에 화개재 고개와 토끼봉이 기다린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계단은 땅속으로 꺼질 듯 끝이 없을 듯 아래로 이어진다. 등로 옆 넓고 평평한 능선에 잡초 사이로 원추리 등 들꽃이 만발한 화개재를 지난다. 이곳 화개재는 장터목, 벽소령과 더불어 각각 전라 경상 충청의 내륙과 삼한시대 때부터 장터 구실을 했다는 온갖 물산의 집결지 화개(花開) 장터를 연결하는 교역의 통로 역할을 오랫동안 담당해 왔을 것이다.
눈에 익숙한 동자꽃은 등로 주변에 지천이고 이질풀, 벌개미취, 꽃며느리밥풀 등도 가끔씩 눈에 띈다. 삼도봉을 타고 넘어며 뒤쫓아 오는 구름이 무거워진 발길을 재촉했다.
무성한 구상나무와 전나무 숲 사이로 급경사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 토끼봉 오르는 길은 버겁기만 하다. 쉬지 않고 토끼봉으로 먼저 직행한 H의 체력에 혀를 내두르며 나머지 일행은 그 중턱에서 휴식을 취했다. 등로 주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동자꽃을 지게꾼 삼아 비탈을 오르면 좋겠다는 어쭙잖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화개재부터 40여 분을 토끼봉 비탈과 씨름하며 그 위로 올라서니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흠뻑 젖었다.
연하천을 향해
해발 1,534m 토끼봉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충전했다. 시각은 정오가 지나 오후 1시로 향하고 우리 일행은 3km 거리의 연하천대피소로 향한다. 임걸령 샘에서 물을 확보하지 못해 수통에서 간당거리는 물이 신경을 그슬리며 발길을 재촉케 한다. 앞서 치고 나아가는 동행을 쫓아가지만 B와 나는 걸음이 자꾸 뒤처지며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명선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에 털썩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해는 구름 속에 숨었고 바람은 간간이 불어 이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발 1,583m 명선봉 너머에 숨어 있을 대피소에 먼저 도착했다는 M의 연락에 B가 물이 간절하다는 회신을 하고 발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하천대피소에서 물병을 들고 명선봉까지 되돌아 올라온 M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생명수를 만난 듯 갈증을 달래고 나무계단을 따라 400여 미터를 내려가서 연하천대피소에 닿았다. 뒤돌아보니 고통스럽게 넘어온 명선봉 위로 그림처럼 목화꽃 같은 새하얀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다른 대피소에 비해 샘물 맛이 좋기로 소문난 연하천대피소는 노고단고개에서 10.5km, 천왕봉까지 15.4km를 남긴 지점에 위치하여 정통적인 2박 3일 지리산 주능선 종주의 첫 숙박지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연하천대피소에서 한 시간가량 머물며 물을 끓여 B가 준비해 온 건식 즉석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들며 이른 새벽부터 10시간가량 이어진 긴 산행의 피로도 조금 누그려뜨렸다.
지친 다리는 무겁기만 한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 한발 한발 걷다 보면 오늘의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벽소령대피소까지의 거리가 3.6 km라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15:40경 연하천대피소를 뒤로한다.
벽소령의 초승달과 별
연하천 대피소에서 700m를 전진하자 지도 앱에 삼각고지로 표기된 지점에 음정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 형제봉을 넘어서면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벽소령대피소가 나올 것이다.
해발 1,452m 형제봉 봉우리 위에 도착할 즈음 어느 방향에선가 시나브로 밀려온 안개구름이 주위 숲을 뒤덮으며 시야를 가두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위가 자리한 정상부를 지나 내리막 비탈을 조금 내려오자 거대한 암벽 두 개가 등로 옆을 가로막고 우뚝 솟아 있다. 필시 이 두 개의 바위를 두고 형제봉이라 이름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형제봉을 넘어서며 금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했던 벽소령대피소는 한 시간가량 더 절치부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17:58경에 홀연히 닿았다.
노고단과 천왕봉 사이 중간쯤에 위치하여 지리산 주 능선의 허리에 해당하는 이 대피소는 수용 가능인원 63명으로 개별난방이 되는 수면실, 조리실, 급수대, 순환수세식 화장실 등을 구비하고 있다. 아무리 시설이 좋다고 해도 대피소에서는 비누나 치약을 사용할 수 없고 세수할 곳도 없어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수습하여 하루 저녁을 넘기는 일이 고역이다.수면실을 배정받고 배낭을 내린 후 물 티슈로 몸과 머리의 땀을 닦아 내고 옷을 갈아입은 뒤 저녁을 준비하여 고픈 배를 달랬다.
일행은 다들 각기 준비해 온 음식물을 서로 먼저 소진하여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줄여 보려 안달이다. 가져온 음식물의 포장지 등 쓰레기는 되가져 가야 하고 갈아입고 벗은 옷가지는 땀에 젖어서 배낭의 무게는 좀체 줄어들지 않기 마련이다.
저녁을 든 후 잠시 수면실에 몸을 뉘였다가 밖으로 나가 어두워진 서쪽 하늘에 가늘게 뜬 초승달과 온 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눈에 가득 담았다. 오후 9시가 되자 대피소 수면실은 소등이 되었다. 침상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가 멀어지는 듯 꿈나라 속으로 빠져들며 길고 길었던 산행 첫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