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닮은 도시
오래전 이야기이다. 출장 여정의 귀로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스톱오버 하게 되었다. 독일 뮌헨과 폴란드 포즈난에서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맞이한 코펜하겐은 마치 긴 숨을 고르게 해주는 휴식 같은 도시였다.
포즈난을 떠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깔끔하게 정비된 공항과 효율적인 교통망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친절했다. 기차를 타고 중앙역에 도착해서 숙소인 S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도시의 정갈함과 조용한 활기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분초를 아껴 코펜하겐 탐방을 시작했다. 호텔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나선 길에는 북유럽 특유의 신선한 공기가 가득했다. 티볼리 공원, 시청사와 안데르센(1805-1875)의 동상, 성령교회와 스트뢰이엇 거리, 그리고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선 뉘하운 운하를 거닐며, 도시가 품은 낭만과 여유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뉘하운에서는 운하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는 관광 보트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의 속살을 물 위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이방인에게 특별한 시선을 선사했다.
도심을 벗어나 로센보르 성, 성 알반스 교회, 게피온 분수, 그리고 도시의 상징인 인어공주 동상에 이르기까지, 코펜하겐은 크지 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부했다. 고요한 호수와 강,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세계를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자전거 문화였다. 어디를 가든 도로 옆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양복을 입은 남성도, 원피스를 입은 여성도 자연스럽게 페달을 밟고 있었다. 자전거 타기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이 도시가 추구하는 건강한 삶의 방식과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철학이 묻어나는 풍경이었다.
크리스티안스보르 성 주변을 둘러본 후,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중식당 ‘상하이’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친 뒤 공항으로 향했다. 북유럽의 허브공항인 코펜하겐 공항은 시설이나 규모가 우리의 인천공항에 비하여 크게 떨어진다.
체크인, 보안검색 등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혼잡하여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질서를 지키는 시민들의 태도는 매우 인상 깊었다. 외적인 치장보다는 내적인 성숙함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코펜하겐에서의 자투리 시간은 짧았지만, 북유럽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선진국의 품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이 있는 도시. 비행 연결편이 여의치 않아 우연찮게 들른 이 도시를 언젠가 다시 찾아 느긋하게 둘러보는 행운이 홀연히 또다시 찾아올까. 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