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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애들레이드와 시드니

@애들레이드 세인트빈센트 만(灣)의 일몰

by 꿈꾸는 시시포스

십여 년 전 가을, 늦더위가 물러나지 않고 치기를 부리던 한국을 떠나 봄이 한창일 남반구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앳된 처녀의 이름을 닮은 호주 남부의 도시, 애들레이드(Adelaide)이다. 국제회의 참석을 위한 비즈니스 트립으로 일면 긴장되기도 했지만, 마음속에는 낯선 대륙의 자연과 사람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도 일었다.


시드니를 경유해서 도착한 애들레이드, 파타와롱가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자리한 호텔에 짐을 내렸다.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애들레이드의 해변은 잔잔한 세인트 빈센트만 너머로 남극해로 통하는 바다를 끝없이 펼쳐놓고 있었다.

그날 오후의 예비 회에 이어 다음날부터 사흘간 본회의가 진행되었고, 자투리시간에 틈틈이 애들레이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주최 측이 마련한 애들레이드 외곽 고원지대에 위치한 Mt. Lofty House에서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하며 감상한 한없이 펼쳐진 평원과 부드럽게 번지는 석양, 빅토리아 스퀘어 중식당의 뜨거운 국물에 돼지고기와 게맛살이 들어간 국수, 초콜릿 공장과 세계적인 와인 산지인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의 와이너리 투어 등이 기억에 남는다.


남극해로 통하는 망망대해로 길게 놓인 잔도와 해변에 앉아서 해면에 드리운 낙조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편 평화롭고 한편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애들레이드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대성당 앞 성 메리 맥킬롭 동상(좌)/ Glenelg Town Hall(중)/포도원(우)
애들레이드 해변 잔교와 일몰

1836년 스튜어트에 의해 개발된 도시로 제분·직물·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도시, 개발 당시 영국 왕비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 도시. 오세아니아 대륙 남쪽 끝 도시 애들레이드를 추억할 때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발랄한 시골 처녀가 떠오른다.


호주 남부 도시 애들레이드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귀로의 중간 기착지인 시드니에 도착한 건 밤늦은 시간이었다.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도심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을 땐 피로가 몸을 눌렀지만, 낯선 도시의 공기가 나를 다시 길거리로 이끌었다. 피곤해하는 J를 호텔에 남겨두고, 혼자 달링하버( Darling Harbour)까지 걸음을 옮겼다. 어둠에 묻혀 깊은 잠에 빠져들려 하는 달링하버의 잔잔한 수면 위에 불빛을 드리운 채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음 날 아침 7시경, 창문에 비치는 햇살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도쿄로의 연결 항공편 출발시간까지의 여유시간가 많지 않다. 컵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프런트에 맡긴 후 시드니 시내 지도를 살펴보며 도시 탐험을 시작했다.


‘에메랄드 시티(Emerald City)’, ‘하버 시티(Harbour City)’로도 불리는 시드니(Sydney)는 호주 최대의 도시이자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이주 대륙 호주의 역사는 1770년 제임스 쿡이 시드니의 보터니 만에 상륙하고, 1788년 아서 필립의 죄수들을 태운 선단이 시드니 지역을 영국의 유배 식민지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대규모로 이주자가 유입된 시드니는 2021년 기준 인구의 40% 이상이 중국, 인도, 잉글랜드, 베트남, 필리핀 등 출신이라고 한다.


King's street와 Clearance St. 교차지점에 위치한 호텔에서 북쪽으로 향하니 이내 시드니만(Circular Quay)과 여객선 선착장이 나타났다. 시드니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견고하고 거대한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와 그 너머로 오페라하우스가 익숙한 듯 눈에 들어왔다.

오페라하우스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이 독특한 건축물은 마치 돛을 펼친 배처럼 바다 위에 우아하게 서 있었고,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시시각각 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시드니.하이드 파크(좌)/뉴사우스웨일스 주 최초의 총독 아서 필립을 기리는 기념물(중)/패디스마켓(우)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로열 보태닉 가든을 따라 걷고, 성 마리아 대성당, 하이드파크를 거쳐 다시 달링하버 방향으로 내려왔다. 정오 무렵이 되어 작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음료를 사서 달링하버 브리지 아래, 잔잔한 바닷가 벤치에 앉았다. 고급 음식도, 특별한 레스토랑도 아니었지만 햇살과 바람, 바다와 마주한 이 점심은 특별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오후에는 달링하버 남쪽에 위치한 어린이 놀이터 공원과 중국정원을 지나 차이나타운과 패디스 마켓(Paddy's Market)을 둘러보았다. 시드니는 다문화 도시답게 아시아의 향취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시장 한편에서 귀여운 코알라 인형을 하나 사고, 카디건도 하나 골랐다. 시장의 북적임 속에서도 마음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Redoak Bar'에서 맥주를 한잔씩 들었다. 시드니에서의 짧은 자투리 투어를 마무리하고 오세아니아 대륙을 뒤로하는 작별의 맥주 한 잔, 그 맛 부드럽고 청량했다. 공항 행 셔틀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퇴근시간에 접어든 시드니 도심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찼고, 셔틀버스는 힘겹게 도심을 빠져나와 공항에 닿았다.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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