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정부 부처장 인사를 둘러싼 소동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다시 들춰냈다. 권력 앞에서는 신념도 쉽게 색을 바꾸고,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을 누리면서 각종 부조리한 이권을 탐해온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우리는 또 한 번 ‘겉과 속이 다른’ 민낯을 마주하게 됐다.
이 같은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반복되어 온 현실은, 위선과 짝퉁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았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내게 익숙한 분야에서도 짝퉁에 대해 어물쩍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관세법 제235조는 짝퉁을 틀어막겠다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상표권, 저작권, 특허권, 디자인권, 지리적 표시권, 식물 품종보호권, 심지어 방위산업기술까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침해한 물품은 수출입 자체가 금지된다고 하니, 법령상의 국경은 꽤나 튼실해 보인다.
그런데 막상 여행자와 캐리어들이 춤추듯 밀려드는 공항 입국장에서의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관세법의 하위 법규인 시행령(243조)은 여행자의 휴대품 가운데 “상업적 목적이 아닌 개인용도 소량의 물품"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하여, 이 엄숙한 금지의 칼날을 슬쩍 무디게 만들어준다.
법령 아래 행정규칙인 고시「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수출입통관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예외’를 아주 구체적인 숫자로 번역해 놓는다. "품목당 1개, 전체 2개"라는 친절한 기준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입법 의도는 일상적 여행자까지 일일이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 법 집행의 효율성과 현실성을 고려한 보충적 장치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이 허용한 작은 예외들은 종종 사람들의 도덕률 전체를 슬그머니 낮추고 필연적으로 준법의식의 해이를 초래하게 된다. '원래는 안 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는 기준을 제시해 놓으면, 어느새 '원래도 이 정도는 되는 것'처럼 당연시하게 되는 법이다.
진짜를 지키겠다는 규범이 스스로 흠집 난 틈으로, 가짜는 유유히 밀려 들어온다. 법규에 규정된 예외와 그 구체적인 숫자가 개미처럼 미미해 보일지 모르나, 개미굴이 저수지 제방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국경에서 허용된 ‘한두 개의 짝퉁’은 시장에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의 규모를 키운다. “나 하나쯤이야”가 “우리 정도야”로, 결국은 “다들 그러는데”라는 합창으로 스케일을 확장한다.
이러한 법적 사회적 용인의 논리는 상품에만 머물지 않고 남의 디자인을 베낀 제품, 남의 글을 짜깁기한 보고서, 부풀려진 경력과 실적 등 사회 전반으로 스며들었다. 국가가 예외를 두는 것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짝퉁 문화 원인의 한 축이라면, 그 예외를 도덕적 면죄부처럼 소비하는 사회 역시 또 다른 축이다.
짝퉁 가방 하나쯤, 짝퉁 이력 한 줄쯤, 짝퉁 실적 몇 개쯤,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우리 사회는 짝퉁이 판치는 가식의 가면을 뒤집어쓴 사회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는 말은 언제나 달콤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관세법과 그 하위 법규의 지식재산권 관련 '면죄부' 규정을 보면서, 짝퉁의 달콤함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는 듯해서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