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주사

by 라온재

3개월 반이라는 치열한 수습 기간이 끝났다. 전임자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은 단순히 비어있는 책상만이 아니었다. 그가 짊어지고 있던 모든 책임과 긴장이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알러지 및 예방접종실의 일원으로서, 누군가의 면역 체계를 관리하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실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곳의 주된 업무는 명료하면서도 무겁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주사 작업이다. 주삿바늘이 살을 파고드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뒷받침하기 위해 처리해야 할 행정적 절차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정확한 기록과 철저한 전산 처리가 수반되지 않는 의료 행위는 완성될 수 없기에, 바늘을 잡는 손만큼이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환자군은 실로 다양하다. 갓 태어난 갓난아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주로 현역 군인과 그 가족들이 이곳을 찾는다. 예방접종실은 협업의 공간이다. 동료 간호사와 손발을 맞추며 정해진 스케줄과 의사의 오더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백신을 투여한다. 다행히 약물을 스캐너로 확인하는 시스템 덕분에 투약 오류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덜한 편이다. 다만, 주사기 앞에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진땀이 난다. 지금은 서툴지만,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 요령이 생기면 울음 섞인 비명 속에서도 평온하게 아이들을 달래는 베테랑의 면모를 갖출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반면, 알러지 치료실은 내가 전담하여 이끄는 독립적인 영역이다. 이곳의 주사는 예방접종과는 결이 다르다. 인체가 스스로 항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알러젠을 직접 주사하는 특수 치료다. 때로는 벌 독(Venom)과 같은 치명적인 성분을 다루기도 하기에, 항상 심각한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환자의 몸이 충분한 면역력을 갖출 때까지 치료는 수없이 반복된다. 덕분에 알러지 환자들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매주 얼굴을 마주하는 정기적인 고객이 된다.


이전 근무지였던 정신병원에서는 매일 약을 나누어주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면, 이제는 매일 주사를 놓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환자를 향한 마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벌써 끝났나요?", "바늘로 찌르는지도 몰랐네요"라고 말하며 웃어주는 환자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그 사소한 칭찬 한마디가 긴장된 어깨를 누그러뜨린다.

나는 화려하고 빠른 기술을 가진 간호사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정직하고 안전한 간호사로 기억되고 싶다. 특히 거친 세월을 살아온 할아버지 환자들에게, 내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단순한 통증이 아닌 신뢰로 닿기를 바란다. 비록 매일이 바늘 끝을 세우는 팽팽한 긴장의 연속일지라도, 누군가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나는 오늘도 묵묵히 주사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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