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리나…
인간의 삶에서 찰나의 희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으나 그 파괴력은 일생을 흔들 만큼 강력하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 본능적으로 발생하는 행복감은 마치 섬광과 같아서, 눈이 멀어버린 찰나에 삶의 주도권은 타인의 손으로 넘어가기 십상이다. 많은 이들이 이 짧은 달콤함을 영원한 안식으로 착각하며 자신의 요새를 개방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존재는 때로 동반자가 아닌 점령군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행복이라는 명목하에 나의 시간과 가치관, 그리고 삶의 행로를 재편하려 드는 존재를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관계의 비정함과 주체성의 상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비극성과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자신이 누리던 귀족 사회의 안온함과 어머니로서의 책무를 모두 내던지고 브론스키라는 새로운 자극을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은 표면적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향한 용기로 포장되지만, 그 본질을 파고들면 지독할 정도의 자기중심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안나에게 사랑은 상대와 함께 나누는 삶의 확장이라기보다, 자신의 지루한 일상을 파괴하고 공허한 내면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녀는 새로움이 주는 짜릿한 해방감을 위해 주변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렸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문제는 안나가 갈구했던 그 새로운 사랑 역시 시간이라는 물리적 법칙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극은 반복되는 순간 일상이 된다. 불꽃 같던 열정도 매일 마주하는 식탁 위의 대화로 전락하고, 신비로웠던 상대의 몸짓은 예측 가능한 습관으로 변모한다. 안나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증폭된다. 그녀는 일상이 주는 권태를 견딜 수 있는 정신적 근력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브론스키와의 관계가 더 이상 예전 같은 폭발적인 전율을 주지 못하자, 그녀는 불안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새로움이 일상이 되어버린 순간, 그녀는 또다시 그 결핍을 채울 대상을 찾거나, 혹은 그 일상 자체를 파괴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만약 그녀가 기차역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결국 브론스키마저 버리고 또 다른 환상을 찾아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비단 소설 속 여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본래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외부에서 채워지는 자극으로는 결코 완벽한 평온에 도달할 수 없다. 특히 관계에서 짧은 행복을 빌미로 상대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여 주인이 되려는 행위는, 사실 자신의 내면이 그만큼 공허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상대를 통제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하고, 상대를 내 삶의 부속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태도는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구속하려 했던 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받고 싶은 이기심의 발로였다.
결국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오는 찰나의 자극에 영혼을 저당 잡히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건네는 짧은 행복이 내 삶의 전권을 위임받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는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평행선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궤도를 수정하려 드는 순간 그 관계는 숭고한 사랑이 아닌 저열한 권력 투쟁으로 변질된다. 안나 카레니나가 보여준 파멸은 일상을 경시하고 오직 새로움과 자극만을 좇는 인간이 맞이하게 될 필연적인 수순이다.
일상이란 지루하고 반복적이지만, 동시에 나를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지반이다. 이 지반을 스스로 관리하고 가꾸는 자만이 타인의 침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소설 속 레빈이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흙의 정직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찰나의 환상보다는 지속 가능한 평온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적인 선택과 타인의 삶을 지배하려는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뿐이다.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이 짧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순리다. 그 짧은 순간을 소중히 여기되, 그것을 빌미로 내 삶의 핸들을 타인에게 넘겨주거나 반대로 타인의 핸들을 빼앗으려 해서는 안 된다. 새로움은 언제나 낡은 것이 되기 마련이고,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른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내 삶의 주권을 타인의 시선이나 짧은 쾌락에 두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내면적 질서 위에 세우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기찻길은 자극만을 쫓던 욕망의 종착지였음을 기억하며, 우리는 각자의 고요한 일상을 주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온전한 나로 남는 길이며, 짧은 행복 뒤에 찾아올 긴 일상을 축복으로 바꾸는 지혜일 것이다. 이러한 성찰 끝에 남는 것은 결국 내 삶을 지배하는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준엄한 진실뿐이다. 구속 없는 자유와 자극 없는 평온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완성된 인격체로서 타인과 마주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