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5년, 배운 것과 깨달은 것

by 라온재

미국에 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 한국에서 자란 내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동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타인의 외모나 행동에 대해 쉽게 평가하거나 조언하는 것이 일종의 관심 표현으로 여겨진다.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 머리 스타일을 바꿔보는 게 어때? 같은 말들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물론 악의 없는 조언일 때도 많지만, 때로는 듣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타인의 외모나 사적인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실례가 될 수 있다. 길을 걸으면서 특이한 옷을 입거나, 머리를 무지개색으로 염색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무관심이 낯설게 느껴졌다. 저렇게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누군가의 변화를 보면 반응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었다. 머리 잘랐네요? 같은 말을 할까 하다가, 혹시나 실례가 될까 싶어 참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도 괜찮구나.


한국에서는 나이가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다. 나이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존중을 받고, 나이가 어리면 예의를 갖춰야 한다. 대화할 때도 호칭이 중요하고, 말투도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나이보다 사람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처음 이 차이를 실감한 것은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후였다. 나보다 서른 살이나 어린 동료가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다. Hey, W, could you help me with this? 처음에는 당황했다. 한국에서는 후배가 선배에게 그렇게 말을 걸면 무례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상사든 동료든 퍼스트 네임으로 부르는 것이 당연했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점점 더 편안해졌다. 나이라는 장벽이 사라지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수평적으로 느껴졌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더 중요했다. 존경은 나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태도와 역량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배웠다. 사실 아직까지 가금씩 당황할때가 있다. 아마 은퇴할 때 가지 그럴것 같다.


한국에서는 우리 회사, 우리 팀, 우리 학교처럼 ‘우리’라는 개념이 강하다. 소속감이 중요하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회사와 개인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처음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여기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회사 일이 많아 야근을 하게 되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어느 정도 동조해야 한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눈치를 보며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칼퇴근이 기본이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시간 됐으니까 간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회사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냥 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는 그게 당연했다. 회사는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노동을 제공하는 곳일 뿐이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이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 회사에서 오래 다니는 것이 안정적이고 신뢰를 받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이직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내가 이 회사에서 충분히 성장했으면,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사고방식이 기본이다. 그 덕분에 나는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미국에서 15년을 살면서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자유로움을 얻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고, 내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에 의존하지 않는 삶. 한국에서 살 때는 나도 모르게 남들의 기대에 맞추려 했던 것 같다.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야 하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원하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물론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문화에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하지만 두나라 모두에서 배운 삶의 방식이 모두 내 남은 은퇴 생활에 뼈와 살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나는 내 방식대로,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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