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과 대학원, 학문적 공동체에서 하나의 점으로 자리하는 일은 요즘 같은 세상에 크게 매력 없는 불확실한 길로 보이기 쉽다. 석사과정이든 박사과정이든, 혹은 석사를 했든, 박사를 했든, 혹은 강의를 하든 전임이 되었든, 혹은 정년트랙에서 정년자리를 보장 받았든 그렇지 않든, 혹은 이 아카데미아에서 제법 멋져 보이는 어떤 자리들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건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위치의 사람을 비교하며 불행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저마다의 무게를 감내하며, 자신이 다다르고자 하는 어떤 곳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 하는, 이 길에 들어선 모두들 응원하고 싶다. 지름길 같은 건 없다. 저만치 건너편으로 옮겨가려면 그저 발 밑에 돌 하나 짚고, 또 그다음 돌로 다리를 옮기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내디디는 수밖에. 그리고 건너가서 처음의 이 자리를 돌아보면, 아, 내가 해냈구나, 싶은 날이 온다. 그건 생각보다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2.
매학기 이맘때면 교내 학술대회와 논문제안서 공개발표회가 열린다. 오늘도 몇 명의 대학원생들이 각자 연구해 온 주제로 열심히 써 온 논문을 발표했다. 지도학생 다섯 명이 발표자로 서야 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동안 함께 준비하느라 매주 지도모임을 하며 분주히 달려왔다.
학과뿐 아니라 대학원 학과장 업무도 겸하고 있으므로 나는 오늘 사회를 보고 전체적인 진행도 해야 했다. 토론자를 섭외하는 것부터 학술행사의 전반적인 준비로 그간 신경이 좀 쓰이기도 했는데, 제본, 샌드위치 등 간식 준비까지 조교가 성실하고 야무지게 잘 준비해 주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뻐서 행사 마치고 커피랑 조각케이크 선물로 보내 주었다.
대학원 학사 일정 중 꽤나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고, 원생들의 졸업과 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중간 허들이기도 해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스러운 자리다. 특히나 유학생들은 모어가 아닌 언어로 그 많은 분량의 학술 논문을 써내고, 그것을 또 PPT로 재정비해 한정된 시간 내에 논리를 펼쳐보이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언어 장벽이 덜한 한국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학문적 언어로 논리를 세우고 설득력 있는 글을 써내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사고하고, 읽고 쓰고, 전달하고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일은 다른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모두들 아직도 보완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열심히 해서 마지막 관문까지 잘 도달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