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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미 Jul 27. 2023

'하얼빈'

그 시대 젊음과 기개, 시련과 굴욕, 유랑의 기록

                                                                                                                              1. 일본 메이지와 이토 히로부미, 이은

메이지의 치세는 힘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시대에 밝음은 힘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고, 시대는 그 힘을 믿었다. 천황의 군대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겼다. 천황의 무위는 세계에 떨쳤고, 아시아의 산과 바다에 시체가 쌓였다 .... 메이지는 사해가 평안하고 풍우가 순조롭기를 기원했다. 메이지의 황궁은 늘 고요해서 겨울에는 눈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 3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일본이 할 것이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이들은 칼과 총을 들고 전쟁을 시작했다. 

이제 일본을 누가 막겠는가? 백성들이 몸으로 부딪혀서 될 일이 아니다만 그렇게 되어가는구나.

그러니 급한 일이다. 

- 오늘의 정부도 누구에게 의존할 일이 아니라 안을 단단히 하고 경계하여 막아내야 할 일이 아닌가

  오늘의 국민도 의기로 촛불하나 들고 소리치며 안된다고 외치고 있는 것 아닌가


           2. 안중근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 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익현은 일흔네살에 전북 태안에서 봉기했다. 최익현은 군진의 전개를 몰랐고, 군사들은 의기충천했으나 명령을 받을 줄 몰랐다. 


안중근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역에 힘과 재력으로 세력을 이룬 문벌가문의 장자였으며, 1908년 서른살의 안중근은 연해주에서 결성된 의병대의 참모중장이었으며 우영장의 직책으로 오십여명을 거느렸다. 

안중근은 말했다 '가져가라. 가서, 발설하지 마라.' 석방된 일본군 포로는 부대로 돌아가서 안중근 부대의 위치와 병력 규모를 보고했다. 석방된 자들이 선두에서 길을 인도했다. 


- 도의와 종교에 기초한 인류애는 중요하지만, 나를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이들의 안전을 먼저 확보하여 책임지는 리더십도 중요함. 안중근은 개인의 결단과 톻찰력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영웅주의, 결사조직으로서의 리더십으로 생각하고 싶음.

- 승패와 유불리를 돌아보지 않고, 국운을 개탄하고 난세를 성토하며, 국권회복의 실마리를 위한 막연한 열망과 충정으로 저마다의 신념으로 독립운동의 길에 나선 사람들이지만 삶의 처지-신분과  재산, 배움과 학문의 경지-에 따라 선 자리가 달랐다. 


1993년 김수환추기경 공식 추모 최초 미사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3. 조선 황제와 이토 통감의 남방순행

일본 제국의 문명화된 우호 정책을 조선 민중과 세계만방에 이해시키는 전기, 일본 천황이 보낸 함대의 위용으로 조선 황제를 영접함으로써 강과 약 사이의 친선을 과시한 것으로 남방순행의 결과를 보고함

(종합과 분석이 부실하고 보고자의 의견이 돌출, 판단을 미리 하지 마라,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서 보고하라, 뒤섞지 마라..... 사진은 의도에 맞게 구도와 초첨을 미리 지시)


사진과 언론, 민중의 상처를 자극하지만 위력으로 압도하고 민중을 갈라치기하여 권력의 이득을 취하라


          4.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순종은 살 길을 생각했다. 조선의 살길과 황실의 살길과 백성의 살길은 겹치고 또 부딪히면서 복잡하게 엵혀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의 권력자는 망국의 그늘에서 단 한순간도 나라와 백성의 살 길을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력과 부, 황실과 황권의 보장만을 위해 발버둥쳤을 뿐이다. 


순종의 슬픔의 의전은 화려하고 엄숙했다. 그 슬픔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가식이라 하더라도 가식이 지극하면 진짜 슿픔과 구별하기 어려웠고, 구별하기 어려워지니 마음이 편안했다. 


          5. 그날 저녘 뮈텔은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에 있었다. 

약육강식하는 이 세계의 맨 앞에 서서 몸으로 세상을 끌고 나가던 이토의 고단한 영혼을 하느님께서 거두어주소서. 교회는 하느님게서 세우신다. 세속의 일을 교회의 일에 빗대어 말하지 말라. 아름답지 않다.


- 종교라는 이름으로 세속의 욕망과 하나 다를것 없는 욕망을 대신하는 자들. 십자군전쟁의 피로 물든 깃발과 십자가에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지만 용서와 사랑과 평화를 주문처럼 외는 종교라는 이름의 면죄부일 뿐


           6.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하층의 불량배에게 정치사상이 있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정신의 용력이 있다는 것을 미조부치는 인정할 수 없었고, 그것은 본국의 외무성이 이 재판에 요구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나는 다만 일개의 국민으로서 했다. 의병이기 때문에 하고, 의병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의 배운 자들이 구사하는 지배적 언어는 헛되고 또 헛되었지만 말쑥한 논리를 갖추어서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 법은 가진가들의 정의이고 배운자들은 결코 자신의 배움을 낮은 곳과 나누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삶의 처지-신분과  재산, 배움과 학문의 경지-를 따지지 않고 연대하고 있으며

  연민과 인류애를 이해하는 사회와 문화로 나아가고 있다. 


           7. 안정근, 안공근, 안명근

북만주 독립운동, 안창호와 소통,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모병 및 교육에 헌신, 독립 투쟁 단체들의 통합 추진, 청산리 전투 참가

김구의 최측근이자 대리인, 이봉창 윤봉길 의거에 역할... 실종

무장 독립 투쟁에 헌신, 군사 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 사건으로 조작되어 복역


           8. 포수, 무직, 담배팔이

남루한 세 단어


한국의 근대는 문명개화의 꿈에 매혹되었고 제국주의의 폭력에 짓밟혔다. 이 문명개화는 곧 서구화였고, 한국인이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이미 이룩한 문명은 개화의 추동력애 합류될 수 없었다. 20세기 초의 한반도에서 과거는 미래를 감당할 힘을 상실했고, 억압과 수탈을 위장한 문명개화는 약육강식의 쓰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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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살의 청춘이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이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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