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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by 라라감성



우리가 만드는 모든 도구에는 나름의 본질이 있다.

예를 들면, 톱의 본질은 썰기 위한 것이다.

이런 본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톱을 만든다.

썰지 못하는 톱은 톱이 아니다.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물에서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하지만 인간은 반대다.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한편으로 자유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자유로운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기에

늘 고민과 불안에 싸여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려 한다.

군인 · 공무원 등 사회가 주는 역할에 안주하며

무한한 자유가 주는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종교가 제시하는 삶의 의미를 좇음으로써

스스로 삶을 결단해야 하는 불안에서 벗어나려 한다. 사르트르는 이를 ‘자기기만’으로 본다.


진정한 인간,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다른 것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주변과 상황을 핑계 대지 않고

항상 주체적으로 살기에 긍정적이며 도전적이다.

진정한 인간 실존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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