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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GO Oct 11. 2019

나는 바보였다. (2)

그래도 배웠으면 됐어.


1. 카페M에 출근하는 횟수가 늘어갈 때마다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힘들게 몸 써가며 일했던 전 카페가 왜 그리운 거지? 나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그 날은 매니저와 나, 그리고 다른 한국인 여자 동료 셋이서 일을 했다. 주말은 꽤 바쁜 편이었다. 사실 카페 경력자로 바라보면 엄청 바쁜 게 아닌데 다른 문제가 있어서 바쁜 느낌이었다. 일하는 동선이 불편하고, 쓸데없이 준비할 재료들이 많고, 플레이팅이 번거로운 등 그런 문제들이 그닥 바쁘지도 않은 카페를 더 바쁘게 느껴지게 했다. 일을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픈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이 문제들을 왜 아직도 갖고 있는 거지? 개선을 하지 않고 왜 자꾸 다른 것에만 집중을 하는 거지?


동료 여자애는 유학생이었는데 카페 들어온 날, 커피는 유튜브를 통해 배우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카페에서 사람을 뽑았는데 커피는 유튜브로 배워오라고? 응? 말이야 방구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니 당연히 일하면서 영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손님도 한국인 손님이 오면 당연히 한국어를 했다. 너무 바빠 모두가 지쳐있었는데 매니저가 갑자기 마감하고 술을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다음날도 일을 해야 해서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친해질 겸 해서 알겠다고 했다. 셋이서 마감을 하고 바로 근처에 있는 코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사실 이 코리안 레스토랑은 카페M의 대표님이 같이 운영하는 곳이다. 마치 자매 지점과 같은 느낌.


런던에 온 이후로 한국인들과 술자리는 처음이었다. 사실 밖에서 마실 때 소주 한 병이 한화로 15000원 정도 하니 난 주로 친구와 펍에 가서 5-6천 원 하는 맥주 한 잔 하는 게 다였다. 친해져야겠다는 명분 하에 참여한 외식이었다. 처음엔 조금 즐거웠다.


'얼마 만에 이런 분위기지. 한국에 온 것 같다 아 좋다.'


그 즐거움도 잠시, 매니저는 아주 잠깐 일 얘기를 꺼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 레스토랑 사장님이 자꾸 시키지도 않은 안주를 더 주셔서 발생했다. 결국 술판은 커졌고, 레스토랑의 가장 위인 셰프님이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결국 회식의 분위기로 흘러갔고 일 이야기, 비즈니스 이야기로 흘러갔다.


다음 날도 일해야 하는 핑계로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 자리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즐거웠던 마음이 가라앉고 나는 입을 닫게 되었다. 결국엔 일해야 하는 핑계를 대고 (이 핑계가 어찌나 고맙던지.) 중간에 자리를 나왔다. 집으로 뛰어갔다. 더 혼란스러웠다. 직원 할인을 했는데도 그 날 비용은 꽤 많이 나왔다.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자리에서 난 오히려 더 불편했고, 생각지도 못한 거금만 쓰게 되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난 전에 일했던 카페가 몹시(?) 그리웠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2. 엄마와 연락을 했다. 엄마는 대뜸 나에게 그러셨다.


"너 다시 전에 일했던 곳으로 돌아가면 안 돼? 거기까지 가서 한국인들이랑 일하고 영어 안 쓰고 그러기 너무 아까운 거 같아 엄마는."


왜 엄마는 항상 정답인 걸까?


엄마가 나에게 그 말씀을 하신 다음날, 문제는 그 날 터지고 말았다.


그 날은 내가 오픈을 하고(오픈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은 채 난 홀로 오픈을 하게 되었다.) 매니저와 둘이 마감을 하는 날이었다. 그전에 일했던 카페는 오전에 출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 바빴는데 이곳은 굉장히 (어색할 정도로) 한가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커피 한 잔 하며 한두 명의 손님만 받는 그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혼자 한가히 일하던 그 시간은 꽤 좋았다. 아 역시 나는 이 곳의 분위기랑 맞긴 하는구나, 싶었으니까. 자유로웠고, 한가로왔으니까.


점심이 다 될 무렵 매니저가 왔다. 그리고 곧이어 대표님이 들어오셨다. 대표님이라는 분은 심각한 얼굴로 와서 이것저것 매니저와 얘기를 했다. 매니저는 대표 옆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도로시라고 했나? 카페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내가 직접 면접을 본 게 아니어서 잠깐 앉아봐요. 지금 우리가 카페에 변화를 줄 거예요. 매출이 영 그래서. 손님들이 북적북적이는 곳으로 만들 거예요. (중간 생략) 그러니 도로시가 잘 참여하고 열심히 일해줬으면 해요."


"네."


마음이 불편한 채로 일을 하니 매니저와 대화도 없이 일만 했다. 매니저도 굳이 나에게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다. 자꾸만 전에 일했던 카페와 비교가 되었다.


굉장히 프렌들리 했던 매니저, 동료들.

손님들로 북적여 늘 영어를 해야 했던 환경.


그런 것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게다가 매니저는 고집이 센 편이었다. 내가 어떤 것을 제안해도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내 제안을 무시하였다. 그래서 일상 대화 조차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매니저님, 커피 드실래요? 한 잔 만들어 드릴까요?"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속으로 여러 번 생각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나에게 일과 관련되어 얘기하는 말투가 조금 부대꼈다. 기분 나쁘게 들릴 때가 많았다. 결국 나도 매니저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게 되었다.


카페 안 쪽 주방에서 일을 하다 갑자기 매니저가 화가 났는지,


"제가 말하는 게 언짢으세요?"라고 하였다. 그 물음표가 굉장히 공격적이었고, 나는 순간 무서웠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느꼈지만 이 정도로 공격적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객관적으로는 내 잘못이 컸다. 내가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마감하고 다시 얘기합시다."


불편한 마음으로 마감을 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본인이 매니저면 일이 끝나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화가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투가 굉장히 공격적이었으니까. 그 말투에 나도 날이 서고 만 것이다.


내 일을 다 끝내고 앉아서 매니저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 매니저는 일이 늦게 끝날 거 같은지 중간에 나에게 와서 대뜸 또 물음표를 던졌다.


"여기서 같이 계속 일하고 싶으세요?"


그 물음표도 꽤 공격적이었다.


"저기요 매니저님. 아까 오해가 되었던 상황에 대해서 대화를 하지도 않고 대뜸 그렇게 물으시면, 전 나가라고밖에 안 들리는데요? 저 자르고 싶으신 거예요?"


(이렇게 적고 나니 아 우리가 싸웠구나, 싶다.)  


매니저의 얼굴엔 화가 가득하였다. 나는 최대한 심호흡을 하고 대화를 하려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화로 잘 풀고 싶었다. 난 그에게 악감정이 있지 않았으니까.


"매니저님, 일단은 아까 제가 죄송했어요. 제가 그러면 안됐는데. 근데 매니저님의 말투가 저에게 굉장히 공격적이었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저의 반응이 그랬던 거 같아요. 이건 전적으로 제 잘못이에요. 변명을 늘어놓자면 사실 제가 여기에 와서 혼란스러웠어요. 매니저님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절대 아니었어요. 죄송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대화를 하면서 좀 알 거 같아요. 저는 경험을 하러 영국에 왔지 이렇게 일을 하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닌데. 계속 외국인들과 일을 해서 그 환경에 제가 익숙했나 봐요. 여기에 오니까 한국에 온 거 같았어요. 저는 한국에 온 느낌을 받으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 혼란스러움을 시간으로 버티기에는... 저는 워홀러라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죄송해요."


그제야 매니저도 얼굴이 조금 풀렸다.


"저도 근무 중에 공격적으로 말한 거에 대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생각해보시고 알려주세요."


그 날, 나는 전에 일했던 카페 매니저 Ange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고마운 안지.



'도로시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우리도 사람 구해서 이제 괜찮아졌어.'

'안지, 나 사실 혼란스러워. 다시 돌아가고 싶어.'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매장에는 자리가 없고... 일단 내가 area manager에게 물어볼게! 괜찮을 거야. 걱정 마!'


그 날 그녀의 메시지가 어쩐지 유독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Area manager 에게도 전화가 왔다.


"도로시! 이게 무슨 일이야. 떠난 지 6일 만에 연락이 오다니."

"모르겠어요. 저 꽤 혼란스러웠어요. 아무래도 외국인들과 영어를 쓰며 일하고 싶나 봐요. 제가 실수했어요."

"그래 너 실수했어. 으이그. 괜찮아. A 매장하고 B매장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네가 선택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그 카페에서 언제까지 일하는지 바로 알려주렴."


난 운이 좋게 다시 그전에 일했던 카페로 돌아가게 되었다. 내가 일했던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다른 매장 A로 옮겨지게 되었다. 운이 좋아 그 매장은 우리 집과 가까웠고, 백화점 안에 있어서 내가 싫어하던 새벽 출근도 할 필요가 없었다.



3. 약 일주일간 카페 M에서 일을 하며 내가 불편하고 혼란스러워했던 것들이 정리가 되었다.


몸이 더 힘들지언정 지금 이 시간만큼은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영어를 해야겠다 싶었다. 한국인들과 일을 하니 영어를 전혀 쓰지 않게 되었고, 난 꼭 한국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한국인들과 부대끼는 건 한국에 서면 충분하니까. 이곳에서의 시간만큼은 더 경험하고 배우기로 결심을 하였다.  


워홀러로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있다. 그 남은 시간을 이렇게 지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그래서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었다. 비빌 언덕(그 전 카페)이 있었고, 그들이 나를 다시 받아줘서 너무 감사할 뿐이다. 다시 돌아가면 또 바쁜 환경에 몸이 지칠 테고, 빵을 잔뜩 먹어 살이 찔 수도 있을 것이다. 손님들의 영어를 다 못 알아들어 웃음으로 넘어갈 때도 있을 테고 외국인 동료들과 싸움이 날 때도 있을 테지.


그래도 그것이 낫겠다.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 난 이곳에 온 거니까. 목적에 맞게 겪어야지. 어쩐지 사서 고생을 하는 듯하지만 마음보다 몸이 고생하는 게 나을 듯하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말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카페M으로 옮긴 후부터 식욕을 잃었다. 처음엔 일 배우는 것에 집중하다, 나중엔 혼란스러워서. 플랏 메이트인 J는 나에게 그랬다.


"언니가 식욕을 잃을 정도면... 언니 심각한데요?!"


매니저에게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였고, 다행히 빨리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바로 그 전 카페 다른 매장 A로 바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백이 안 생겨서 다행이다.


그만두게 되니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잃었던 식욕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섣부른 나의 결정이었다. 이 바보 같은 결정에 고생을 얹은 책임이 따랐지만... 배웠으니 됐다. 아마 이 결정이 없었다면 나는 그 전 카페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무미건조하게 일했을 거다. 아 힘들어, 극혐. 이러면서.


힘들게 생각했던 그곳이 지금 나에게는 최적의 장소라는 걸. 내가 온몸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정말 <삶의 체험현장> 같은 곳이라서 힘들지만 그래서 내가 자랄 수 있는 곳이라는 걸. 그러니까 내가 있는 곳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는 걸.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이 깨달음을 명심하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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