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RGO Mar 13. 2019

런던에 도착해서 툭하면 울었다.

새장에 오래 갇혀있던 새가 새장을 나오면.

1.

내가 중학생 때, 하교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나면 약 오후 4시 즈음이었다. 그때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강아지랑 누워서 요리 채널을 보곤 하였다. 그때 재밌게 보았던 프로그램에 웬 외국 남자가 요리를 간지 나게 했는데 생전 처음 듣는 재료들이며, 뚝딱 만들어내는 그 요리사의 손길이며, 프로그램은 내 눈길을 사로잡기 딱이었다. 사실 내가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그 요리사의 섹시한 영어 발음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water를 워러가 아닌 우오터로 들었다. 그렇다. 그는 영국 남자, 제이미 올리버였다. 우습게도 난 그때부터 영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흔히 '내가 대학생이 되면' 리스트를 적던 고등학생 때는, 꼭 유럽 배낭여행 갈 때 영국에 가야지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빅벤과 런던아이가 있는 사진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곤 했다. 영국은... 내가 꿈에 그리던 나라였다. 영국을 막연히 좋아하게 되면서, 난 점차 비틀스와 콜드플레이, 아델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엔 에드 시런도 좋아하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녀의 작품을 영화로 한 <오만과 편견>과 <비커밍 제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영화들에 나오는 영국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게 되었다.)  


2.

대학생이 되고, 유럽여행을 갔을까, 꿈에 그리던 영국 땅을 밟아봤을까? 사실 난 유럽여행은 커녕 그 흔히 가는 내일로(국내여행)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주변에 누가 유럽여행을 간다고 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유럽에 대한 꿈은 (특히나 런던아이와 빅벤에 대한 환상은) 막연히 커져가기만 했다. 언제 실현될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전공은 생물학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선택해서 듣던 교양은 예술사, 음악의 이해, 기초 독일어, 유럽 문화의 역사와 이해 등등이었다. 전공책은 시험기간 외에 별로 펴보지도 않으면서 예술사 ppt는 프린트해서 따로 고이 보관하던 나였다. '나중에 유럽에 가면 꼭 이 피피티 다시 보고 갈 거야.' 이러면서. 그렇다. 나는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던 사람이었다. 나를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 채, 그저 유럽은, 나의 영국은 아득해진 꿈으로 남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3.

대학교 4학년부터 긴 수험생활을 했다. 나는 마치 날기만을 갈망하는 새장 속의 새 같았다. 그때 당시, 독서실 내 자리는 옆에 아주 작은 창문이 나있었는데 그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답답하다. 새장 같아. 날고 싶다.'를 외치며 힘들게 공부했다. 참 이상도 하지.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후회 없이 준비했던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면접까지 보았지만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때 사실 난, 실망이나 우울, 좌절보다는 그보다 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젠 정말 내 길을 찾아갈 생각에 나는 조금 설레었고, 오랫동안 준비하던 이 길을 이젠 정말 안 갈 거라는 생각에 이상했다. 나의 불합격을 친한 언니에게 알리고, 언니가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정말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될 거 같아."


마지막 시험과 함께 해묵은 수험생활, 그 길에 대한 미련까지 모두 털어버리고 나는 다시 고민을 하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나 진짜 해보고 싶었던 거. 그게 뭐였지?


그때 갑자기 내 안에서 불쑥 이 말이 튀어나왔다.


'영국에 가고 싶다.'


나의 유럽여행 혹은 영국 여행에 대한 소원은 늘 뒷전이었다. 나중에. 이걸 이루고 나면. 돈을 충분히 모으게 되면. 그때 하면 되지. 하며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른 채 나는 나의 소원을 계속 미루기만 했다. 이번엔 진짜 다른 것들 따지지 말고 (가령 나이, 전공, 부모님, 친구들의 인생 속도 등등.) 순수하게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이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나에게 기회가 보였다. 바로 영국 워킹홀리데이였다.



4.

내 나름대로 착실하게 워홀을 준비했다. 돈을 모았고,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니고, 여러 종류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때가 되어 2018년 6월 15일, 그 날 꿈에 그리던 히드로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우습지만 그전에 종종 영국에 가는 꿈을 꿨었다. 영국행 비행기 안에서 '내가 영국에 가다니!' 라며 마음껏 들뜨던 꿈. 그 꿈에서 깨고 나면, 현실의 내가 보여서 난 조금 씁쓸해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정말 영국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와, 내가 10년 전부터 꿈에 그리던 영국에 가는 거라니. 실화? 이거 정말 실화 맞아? 말도 안 돼!


기내 안에서 내 옆에 앉아계시던 영국인 아주머니와 대화를 잠시 하게 되었다. 처음 직접 들어본 영국식 악센트가 너무나 낯설었지만 어찌어찌 짧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영국에 여행 가냐는 질문에, 사실 몇 년 살러 가요. 영국에 가는 게 저의 오래된 소원이었어요.라고 답하니 아주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Oh, your dream comes true! Congratulations!"


아주머니의 대답에 비로소 조금씩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5.

2018년 6월 15일, 런던 땅을 밟은 나는 그 해 여름, 툭하면 울기 바빴다.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이 처음이었다. 스물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밟은 유럽 땅은 너무나 간절했던 꿈이어서 꽤 감격적이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고흐의 작품들을 보았을 때, 우연히 가게 되었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예전부터 가고 싶던 힐송 교회 예배에 가서, 처음 런던아이를 보았을 때... 나는 자주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왜 울었냐고 묻는다면...


내가 정말 원했던 거였거든요...


라고 대답을 하고 싶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알고, 행동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용기를 내기까지,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쉽지도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환경이 날 도와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에 나오면 난 바로 날아갈 줄 알았다. 자신이 그렇게 훨훨 날고 싶던 하늘을 향해. 그렇지 않았다. 나라는 새는 새장에 나와, 자꾸만 감격한 채 한동안 울고만 있었다.


내가 정말 나왔네.

내가 너무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나 이 작품 정말 직접 보고 싶었는데.

이층 버스 너무 타보고 싶었는데.

아... 사진으로만 보던 거리에 내가 있네.

런던아이... 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그렇게 9개월 전, 꿈에서만 그리던 이 곳에 왔다.



처음 갔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 / photographed by Lar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