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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GO Mar 31. 2019

노트에 담아보는 손님들.

3월 18일의 일기의 일부.


도시락을 준비하는 아침.

분명 햇살이 얼굴로 쬐어 눈이 부셔 일어났는데 날은 왜 흐릴까. 맑고 쨍한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요즘엔 날이 너무 오락가락해. 동생이 알려준 참치콘마요를 도시락 메뉴로 정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밥 위에 콘 마요를 적당히 뿌리고, 참치 올리고 포슬포슬한 계란 올리고. 간장 쪼르르, 참기름 휘- 돌려서 비비면 끝. 도시락을 준비하며 아침을 먹고 시간이 남아 화장도 했다. 오전 11시 출근. 언제나 그렇듯 10분 전에 도착해 Hi~ Morning~ 동료들과 인사한다. 스몰 사이즈에 샷 추가를 해 아메리카노를 준비하고 앞치마 두르고 워밍업.


오늘 노트를 펴고 펜으로 남기고 싶었던 손님 넘버 3을 써보려고 한다.


먼저 3rd, 스몰 아메리카노에 핫 밀크 조금 넣고 위에 거품을 얹어 마시는 할머니 두 분. 멍멍이를 데리고 오는 날이면 *베이비치노를 시키신다. (멍멍이 먹으라고.) 오늘은 창가 쪽 푹신한 자리에 앉으셨는데 창가 선반에 멍멍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어찌나 순한지 잠시 가서 쓰다듬으니 꼬리를 살랑이며 좋아한다. 밖에서 지나가던 아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창문을 통해 멍멍이를 본다. 다음에 또 오면 사진으로 담고 싶다.


*베이비치노(Babycino)

에스프레소 테이크어웨이 컵에 밀크폼만 담아주는 애기용 카푸치노. 실제로 3세 아가들이 자기도 엄마처럼 카푸치노를 마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So cute!


2nd, 늘 카푸치노를 시키는 젊은 엄마의 둘째 아들.

첫째 아들은 만 3세, 둘째 아들은 이제 1살 넘은 것처럼 보인다. 첫째는 이제 장난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내가 달링~이라고 부르면 까르르 거리며 오글거려한다. 둘째는 꼭 떡두꺼비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늘 유모차에 왕(?)처럼 편히 앉아 카페에 오면 진저 비스킷을 먹는다. 진저 비스킷은 늘 남자 어르신들이 즐기는 간식이다. 한 살 갓 넘긴 떡두꺼비 같은 애기가 이 간식을 즐기는 게 어쩐지 웃기면서 귀엽다. 나도 모르게 “오구오구 맛이쪄??” 하게 된다. 우리 둘째는 나랑 눈이 마주치면 빵끗 웃어 날 웃게 만든다. 저번엔 나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Hi~~ 를 하더니 오늘은 Byebyebye~ 를 했다. (정확히는 바으바으바이~~) 헌터 레인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부츠가 너무 작아 어찌나 귀엽던지!


1st는 단연컨대 Gorgeous Granny. 그녀는 늘 스몰 카푸치노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가신다. 그녀를 본 지는 꽤 됐다. 오실 때마다 거동이 불편하셔 우리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시고 앉으시면 우린 카푸치노를 만들어 설탕과 냅킨과 함께 자리로 가져다 드린다. 그러면 온화한 미소로 항상 너무 고맙다고 하신다. 어쩐지 그녀를 서빙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녀의 수식어는 Gorgeous 라는 형용사가 어울린다. 거동은 불편하셔도 그녀의 옷차림은 항상 깔끔하고 근사하기 때문이다. 샤넬이나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의 의류여서가 아니라 그녀의 센스 때문에. 나는 늘 속으로 감탄했다. 조금 촌스럽게 말이다.


와, 디올이다 샤넬이다... 와 근데 어떻게 70세가 넘은 저 나이에도 우아함을 간직할 수가 있지? 꼭 사람이 명품 같아. 어떻게 저렇게 우아하게 자신을 꾸밀 수가 있지 저 연세에? 너무 멋지다. 너무 우아하시다. 근사하시다.


언젠가는 할머니와 대화해보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그저 굿모닝~ 하며 인사를 건넸는데 오히려 그녀가 내게 대화의 줄을 툭 건네셨다.


“나는 독일인이고 남편이 인도 사람이야.

남편은 18년 전에 죽었어.

허리 수술하고 늘 여기에 와서 쉬었다 가는데

참 좋더라구. 참 너는 어디에서 왔니?”


“전 한국에서 왔어요.”


“아 그렇구나. 일본은 가봤는데 한국은 안 가봤네. 남편이랑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 남편이 인도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늘 동양에 관심이 많았어. 너를 보면 항상 평상시 차림이 예쁘더구나.”


이 부분에서 놀랐다. 막 꾸미면서 출근하지도 않는데 내 최소한의 꾸밈을 알아보신 것 같아서!


나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오랫동안 속으로 삼켰던 말을 꺼내었다.


“항상 뵐 때마다 옷차림이며 할머니의 모습이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짜에요!”


할머니가 수줍게 웃으셨다. 그녀와 이것저것 대화를 이어가며 나는 그녀에게 인생의 지혜 두 가지를 건네어 받았다.


“할머니, 런던은 너무 다인종 다국적 도시라 처음에 좀 살기 퍽퍽하다고 생각했어요. 외롭기도 했고요.”


“그래서 더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지 않니? 시야를 넓게 보렴. 영국이라는 섬에만 너를 국한시키지 말거라. 다양한 국가, 문화, 사람들을 수용하며 이 곳에서 살아보렴.”


나는 그녀의 말에서 더 유연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드는 편협한 사고들은 버리자고 다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우아하게 차려입으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직접 차려입으시는 거예요?”


“그럼. 거동은 불편해도 매일 아침마다 나를 단장한단다.”


할머니는 손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무엇보다 이 안이 아름다워야 한단다. 겉모습이야 꾸미면 그만이지만 속은 꾸며지지가 않아. 배려, 착한 마음, 긍정, 감사... 이런 것들을 잃지 마렴. 계속해서 너의 내면을 가꿔야 해. 이게 제일 중요해.”


나는 그제야 알았다.

왜 그녀를 볼 때마다 근사하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그녀 자신,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속부터가 근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근사했던 것이다.


늘 근사하다 생각했던 할머니에게서 인생의 근사한 지혜를 건네어 받아 나는 기운이 났다.


멍멍이가 앉아있던 자리이자 할머니와 대화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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