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랑스 루아르 내추럴 와인 생산자 Thierry

삶과 자연은 동그라미야. 자본주의는 사각형이지.

프랑스는 2월이 지나고 서서히 날씨가 풀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보기도 힘들던 눈이 오더니, 어느새 14-15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되며, 햇살도 따스하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여행하기 너무 좋은 날씨가 왔다.

노을 지는 파리 에펠탐

음력으로도 설날이 지나고,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정말 무작정 한 번 언젠간 떠나야지 했는데, 마침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기에, 무작정 길을 나서기로 결정했다.

지난 여름에 너무 반갑게 맞아주신 Thierry Hesnault

사실 어디를 가야 할까 많은 고민을 하다가, 내가 지난여름에 방문했을 때 너무 반갑게 맞아주셨던 내추럴 와인 생산자, thierry hesnault 아저씨에게 무작정 연락을 했다. 농사를 하시느라 투박한 손에 문자도 잘 못 치시는데 그래도 마음은 진심인지, 다행히 전화가 오신다.


내추럴 와인이 뭐예요? 묻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 부분을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고 있는 투몽님께서 설명해주신 글이 있어 우선 아래에 첨부한다.

https://brunch.co.kr/@toosim/113


Ca va bien? 싸바 비앙? 특유의 시골 억양과 함께 전화기 너머로 들러오는 너무나 반가운 아저씨의 인사. 마침 주말에 시간이 되는데 가서 하루 이틀 정도 자면서 와인도 좀 사고 메종에서 쉬고 싶다고 하니, 그래 걱정하지 말고 토요일 낮에 점심 준비할 테니 마음 편하게 오라며 반겨주셨다.


금요일까지 미리 집과 짐 정리를 하고 토요일 아침에 하나하나 짐을 실으며 지도를 찍어보았다. 아래와 같이 베르사유에서 샤르트르를 지나 르망과 투르 사이의 시골까지 가는 길이었는데, 15일간 서른 도시에서처럼 이번에도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좋아하는 국도를 타고 가기로 했다.

투르 Tours부터 루아르 강을 따라 앙제로 향하는 쪽으로 내추럴 와이너리와 공원들이 많다. (물론 아직도 발견해야 할 곳들이 많지만) 오른쪽으로 가면, 루아르 고성 투어로 유명한 앙부아스, 블루아 성부터 잔다르크로 유명한 오를레앙.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프랑스 남부로 이어지는 상세르 와인 밭까지 이어지는 이 엄청난 루아르 강과 와인들.

설레는 혹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오래간만에 상쾌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차에 짐을 실었다. 이유를 모르게 무언가 여행이 하루 이틀 더 길어질 것 같은 느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캐리어에  가지와 읽고 싶던 책들고 챙기고, 내 영혼의 반쪽인 기타도 실은 채 천천히 국도에 발을 올렸다.

햇살이 눈이 부시게 펼쳐진 평야 위로 나를 반기는 이 풍경. 얼마만인지. 드디어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반증 같기도 하면서, 문득 혼자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참 오랜만이구나 하던 생각도 들며 앞으로 길게 펼쳐진 생각의 도로 위로 흩어진 생각들을 모아 담으며 나아갔다.

아침 9시에 출발했는데, 1시간쯤 지나니 샤트르 르 대성당이 보인다. 베르사유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라 가끔 1년에 2번 정도는 지나가는 동네인데, 분지 위에 있는 마을이라 생각보다 멀리서도 대성당이 참 잘 보인다.

3대 고딕 성당 중 하나인 샤르트르 대성당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2세기 화재 때문에 한쪽 탑이 소실되면서 새로 지은 한쪽은 Clother Neuf라는 이름과 함께 고딕 양식으로 재건이 된다. 이렇게 왼쪽과 오른쪽에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이 공존함에도 너무나 이쁜 3대 고딕 성당 중의 하나로 불린다. 그냥 지나치려다 뭔가 오랜만에 나왔고 10시쯤 되니 공복의 출출함도 다가오기에, 샤르트르 도심으로 가서 크루아상과 카페를 하나 사서 무작정 가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왔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 샤르트르 도시에 빛 축제를 하면서 축제가 열리는 첫날은 야간 마라톤도 하고, 도시의 역사적인 배경이 담긴 곳들은 조명을 쏘아 역사를 음악과 영상으로 설명하는데, 무더운 여름밤 대성당을 거닐었던 여름의 향기가 문득 느껴졌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샤트르 르 대성당에게 비주를 하고, 다시 2시간 남은 시골길을 향해 끊임없이 평야를 또 달리고 달렸다.

긴 국도의 끝에 도착한 Chahaignes

드디어 도착한 Chahaignes. 불어로 적혀있어 참 읽기 어려운데 뜻이 딱히 있는 건 아니고 발음은 샤이인 이라고 해서, 마치 영어의 빛나는 샤이닝처럼 들린다. 동네 자체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이 빛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샤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시골 할아버지와 같은 Thierry Hesnault 아저씨와 포옹을 마쳤다.

따스한 슈미네와 함께 점심을 준비해주신 Thierry

생각보다 샤르트르에 들렀다 온 게 시간이 좀 지체되어서 거의 1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는데 시작부터 음식들을 내어주며 바로 Petillant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열어주신다. 원래 식전주에는 샴페인이나 스파클링으로 시작하면 적당히 온기도 올라오면서 식욕을 당겨준다.


즐겁게 짠 한 잔 하면서, 마치 한국과 수육과도 같으면서도 지방기가 푸아그라처럼 부드럽게 썰리는 음식을 준비해주셨다. 이름도 못 물어보고 배고파서 나도 막 마구 마구 먹고.

달팽이가 들어간 Feuilleté des escargots

그러고 돌아서니, 또 달팽이를 넣은 Feuilleté des escargots 빵도 준비해주시면서 2018년에 배럭에 담가 낸 화이트 와인  Le Blanc de la Fosse Vineuse을 또 여신다. 물론.. 이번에도 라벨도 없는 비판매용을 마구마구.. 소화도 시키기 전에 벌써 반쯤 취한 거 같아서 아저씨와 연애 이야기도 하고 사람 이야기도 하면서 마구마구 웃다 보니 배가 터질 거 같은데..


아저씨가 이제 스테이크를 사두었으니 먹어야 한다면서, 자기도 막상 배가 너무 부르신 지 두 덩어리 사두신 거에서 절반만 잘라서 같이 나눠먹자고 하셔서 또 스테이크를 버터 베이스에 간단하게 구워 주셨다. 뭐 물론, 프랑스에서는 스테이크 굽기에 대한 표현이 영어랑 좀 많이 다르다.

소고기와 감자전 흰콩자반? ㅎㅎ

Blue 레어 / Saignant 미디엄 레어 / À Point 미디엄 / Bien cuit 웰던


이렇게 나뉘는데 아저씨가 미디엄 레어가 괜찮냐고 해서 저야 뭐 아저씨 원하시는 대로 가죠 이러는데 ㅎㅎ 역시 핏물 가득. 그래도 원래 육회를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이거 정도야. 너무 오랜만에 먹는 소고기 스테이크라 정말 맛났다. 아 물론 그 와중에 또 레드 와인 중에 La Centenaire du Vauperroux라고, Pineau D'Aunis 품종을 사용한 레드 와인 마지막 남은 한 병을 열어주셨다. 정말.. 파리 와인바에서는 거의 40유로나 줘야 살 수 있는데..


그러고 이제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그 와중에 또 블루치즈에 커피까지 먹자고 정말.. 분명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기 시작했는데 다 먹고 나니 오후 4시였다. 3시간의 점심시간이 이야기와 그리웠던 말들과 추억들을 되삼으며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일단 너무 배가 부르기도 했고 먼 길을 달려오느라 피곤했기도 했기에 한 숨만 돌리고 4시 반쯤 자기 이웃 잠깐 보고 자기 와이너리 동네에 있는 거 보여주신다며 정말 외할머니댁에 온 거처럼 아저씨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주시려고 하는 그 마음에 괜스레 너무 고마운지.

식사 이후에 만난 아저씨의 동네 친구들

내추럴 와인은 애초에 자본주의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소량으로 만들고 자연적으로 만들고 여기 현장에 오면 로컬에서 생산한 그대로 사실 마을 주민들과는 딱히 돈도 많이 안 받고 최소한의 가격만 받고 거래를 하지만, 한국에서 내추럴 와인이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수요가 폭증하면서 뭔가 내추럴 와인이 또 마치 아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듯하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데 이제는 해외에서 한국에 가져오는 것들이 비싸게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또 다른 세계의 하나의 문화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공유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줘야 하지 않을까?

Thierry Hesnault 아저씨 와인밭 130년도 넘은 포도나무들

문득 아저씨가 레드 와인을 마시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Jangmin, tu le connais? La vie est ronde est la nature est ronde. Mais dans la capitalisme, on est toujours encrassée dans les carrées. Voila. Mais tu vois? Le soleil est ronde, les raisins sont rondes, les assiettes sont rondes, nos yeux sont rondes. Le rond ne attaque pas les hommes. Mais le system profite des hommes. A la campagne, on a toujours la convivialité. On vivre ensemble. Tu le comprends? C'est la CONVIVIALITÉ.
장민, 너 그거 아니? 삶은 동그라미야, 자연도 동그라미지.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우리는 모두 사각형에 갇혀있어. 그렇지. 근데 그거 알겠니? 태양도 동그라미고, 포도알도 동그라미도, 접시도 동그라미고, 우리의 눈도 동그라미야. 동그라미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 그런데 시스템은 인간을 착취하지. 비록 시골이지만, 우리는 항상 "공생"이라는 개념이 있어. 우리는 같이 살아간다고. 그거 이해되니? 그게 바로 꽁비비 알리떼(공생)이라는 거야.


그렇다. 아저씨는 늘 진심으로 베풀어주셨다. 작은 선물이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하시고, 손님이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 이해해주셨다. 한국에서는 자꾸 내추럴 와인이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왜 그렇게 구하기가 어렵냐고. 그것이야 말로 산업화의 본질이다. 대량 생산하여 저렴한 가격에 빠른 공정을 통해 모든 것을 사각형 안에 집어놓고, 다양한 포장을 하지만 결국 돈은 자본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

자기 소유가 아닌 빌린 꺄브에 정말 필요한 와인만 저장하시는 Thierry

물론 산업화가 대중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재화를 대량의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빠르게 공급함은 물론 사회에 크나큰 혜택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생산자, 농부로서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Thierry Hesnault와 같은 아저씨는 우리의 일상 속의 동그란 포도알을 담아 가치를 나누고자 와인을 만들어왔지, 누군가에게 대량으로 돈을 벌려고 만드시는 분 자체가 아니다.

아저씨의 고양이, 잘 때마다 찾아온다

요즘 정말 내추럴 와인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Natrual wine. 말 그대로 자연의 와인.

산업화되지 않고, 화학 물질을 넣어서 억지로 보존하지 않고, 농부의 마음으로 가장 정성스럽게 보살핀 포도알들을 숙성시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일이 되게 하는 포도주.

브런치를 쓰기 위해 구상하던 중 고양이와 불멍을 때리며

그것이 이번 여행을 하며, 내추럴 와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며 얻은 답이다.

보여주기 위해서, 인스타그램에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 이쁘다고 찍어서 올려야 할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다. 내추럴 와인은 프랑스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신선하며 감칠맛 나는 제철 과일 같은, 존중하고 우리가 어떤 것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경험이다.


다음편

https://brunch.co.kr/@larosedepensee/9


편하고 흥미롭지만, 지속가능한 와인 문화.
#라발렌느 #labaleine #프랑스와인직구 #와인직구 #유럽와인 #와인구매대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