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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Apr 26. 2020

내 이름은 래리, 다시 시작할 뿐이죠

15년 동안 내가 '래리'로 살아온 이유

I'm Larry, an English teacher. (내 이름은 래리, 영어교사죠.)


내가 학생들에게 동격을 가르칠 때마다 항상 제시하는 예문이다. 모 애니메이션 주인공 캐릭터의 어투를 흉내 낸 해석까지 덧붙이며 순전히 나 재밌으라고 만든 예문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간단한 자기소개는 나의 인생철학이 담긴 진중한 자기 선언이기도 하다.


내 영어 이름 래리는 고등학교 때 게임 아이디 만들듯 가볍게 지은 이름이었다. 아마 영미권 인명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정식 이름 'Lawrence(로렌스)'를 두고 애칭 격에 해당하는 'Larry'를 사용하는 것이 다소 부적합하다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이름이 '래리 킹(미국의 저명한 뉴스 및 라디오 진행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 당시에도 래리라는 이름이 귀엽다고 생각했으니 영향력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별생각 없이 만들어졌던 이름이 어떻게 나의 인생철학을 담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다시'다.


어렸을 때부터 완벽주의자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을 세우며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나의 시작이 얼마나 신중했느냐와는 관계없이 대부분의 일들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처참한 실패로 끝나기 일쑤였다. 실패한 일들은 몇 번의 재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비로소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결국 최초의 시작보다는 거듭될 재시작이 내 인생을 지탱하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영어를 전공하면서 영어 이름이 필수사항이 되자, 나는 기존에 지었던 래리라는 이름에 '다시(再)'를 나타내는 접두사 're'의 의미를 집어넣기로 했다. 접두사일 때의 re는 '리'로 발음되지만, 계이름으로서의 re는 '레'로 발음된다. 그리고 레 또한 두 번째 계이름이라는 점에서 '다시'라는 이미지에 부합하니, 이 이상 좋을 수 없는 해석이었다. 다소 콩글리시를 가미하긴 했지만, 이쯤 되니 래리라는 이름은 나에게 더 이상 우연이 아닌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15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줄곧 래리였고, 나를 낙담시키는 실패와 좌절 앞에서도 '다시'를 나직이 속삭이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래리꼬(Let It Go)였지만, 이제는 래리꼬(Larry Go)다.


한 때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유행하면서 주제가인 'Let It Go'를 들먹이며 '선생님 교실에서 나가주세요'를 열창하던 아이들의 장난이 짓궂다고 느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애정 섞인 장난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고 '전진하며 나아가라(Larry Go)'는 응원 구호로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두고 나의 지론을 유치한 망상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박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스스로 이름을 래리라고 정했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란 걸 인정하니까. 여러 번의 재도전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여전히 첫 시작은 두렵고, 나의 부족함에서 오는 실패는 여전히 쓰라리다. 하지만 나는 '이름이 가지는 힘'을 믿고 내 이름의 지닌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위대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끝없는 도전을 통해 치열하게 살아남으며 선한 영향력을 베풀 수 있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를 맞이하면서 교사로서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상황들을 맞이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날이 없는 교사지만, 요즘에는 특히 감당해야 할 시선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다. 대중 매체는 설익은 온라인 수업 제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나는 그보다 아이들 간의 아이스 브레이킹(어색함을 깨고 친해지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벌써 평소대로라면 모두가 어색함을 어느 정도 풀었을 4월 말이지만, 교실에 나와 새로운 반 친구들과 인사조차 나눠 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아이들은 여전히 단체 채팅방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와 개인적으로 통화를 할 때는 잘 웃고 하고 싶은 말도 잘하는 아이들인데...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소통하는 학급을 만들고 싶었던 나로서는 아이들의 묵묵부답이 매우 슬프고 힘겹게 다가온다.


에효, 무언가 또 망쳐버린 기분이 들지만 래리라는 이름을 걸고 다시 시작해 보련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금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나의 실패와 도전이 아이들에게 피해가 아닌 배움의 과정이 될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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