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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돈 Jan 19. 2021

웃으며 네 뺨을 때려도 되겠니

2020년의 교직생활을 돌이켜 보며

내 교직생활에 있어 가장 기묘하기 짝이 없던 2020학년도가 끝났다. 성과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여러 군데 후회와 씁쓸한 뒷맛이 남아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전에도 교직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의 나약함에 과연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가 줄곧 고민했지만, 2020학년도는 임시방편으로 자리 잡은 이 교수 체계가 교사로서의 지속 가능한 자존감을 보장해 줄 것인지 줄곧 의구심이 드는 나날이었다.


누군가는 학교현장의 원격수업이라고 하면 뉴스 자료화면에서 보여주는 실시간 양방향 원격수업의 사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으나, 전국적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실제로 그렇게 운영 가능한 사례는 소수일 뿐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전염병 사태에 IT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대다수의 학교는 최첨단의 방식으로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인적 차원에서도 아날로그 수업방식에 익숙한 교사진을 짧은 시일에 최첨단 수업을 운영하게끔 육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내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많은 선생님들이 시중에 영상으로 제작된 교육자료를 끌어다 와 과제와 병합하는 방식을 택했고, 나 역시 학교에 보조를 맞추어야 했다. 원격수업 주간에는 진도 나가기에 바빴고, 학생들이 학교로 나오는 등교 주간에는 수행평가 치르기에 바빴다. 그마저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강의식 수업으로 진행될 때가 많았고, 이건 아니다 싶어 할 수 있는 모둠 활동이 없을까 고민하다 보면 들려오는 확진자 폭등 뉴스까지. 사실상 올해는 잘하려야 잘할 수가 없었다.


결국 2020년을 돌이켜 볼 때 나의 기억에서 일과 중 주요하게 남은 장면은 하루에 수십 차례 집요하게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계적으로 과제를 독려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8개 학급의 수업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아이들의 과제 수행현황을 일일이 확인하고 전화를 거는 작업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당일 내준 과제를 당일 처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교육청은 학생의 피치 못할 사정을 고려하여 해당 과제를 1주일 내로 완료하면 해당 교시의 수업을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 주라고 지침을 내렸다. 즉, 교사는 어떤 학생이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그 해당 교시의 수업을 두고 최대 1주일까지 계속해서 연락하고 과제를 수행하게끔 책임질 의무가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미해결 된 사례들이 쌓이다 보면, 더는 유쾌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기 어려워지는 시점이 온다.


전화를 걸어 사유를 물으면 어쩌다 과제가 있는 것을 깜빡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장기화된 원격 수업에 익숙해짐으로써 생겨난 태만이 원인이었다. 개중에는 신속하고 예의 바르게 응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사의 전화를 기피하여 일부러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말만 그럴싸할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일일이 문자를 돌렸다. 매크로 마냥 동일한 메시지를 복사하여 붙여 넣기도 하고,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어르기도 하고 내신 점수를 깎는다며 화도 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감정은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끝까지 안 한다'로 귀결되는 인간 불신이었다. 스스로 학생의 관심을 갈구하며 굳이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인데, 전화 목록과 문자 메시지가 학생들과의 기록으로 지저분하게 도배되어 있는 것을 보며 정말 '투폰'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학교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학생들은 옛날에도 있었다. 다만 코로나 시대 이전의 교사는 지금과 같이 학생에게 매일같이 접촉하며 수업을 들으라 노골적으로 강요할 것을 강요받은 적이 없었다. 모순되게도, 교사는 공적인 용무로 전화를 걸어야 하지만 그것을 받아야 하는 학생의 입장은 이를 사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이기에 그 의도치 않은 농밀한(?) 간섭이 양자에게 서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나는 마치 표정은 웃고 있지만 관자놀이에 '빠직' 마크를 달고서 잠자는 상대방에게 따귀를 선사하는 만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까지 잠자고 있는 학생에게 모닝콜을 해주며 친절하게 '일어나서 출석 체크하고 과제하라'는 말을 건네는 선생님. 아무리 학생을 사랑해야 하는 교사도 어디까지나 월급이 꼬박꼬박 나와야 일할 수 있는 자본주의에 종속된 직장인임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2020학년도였다.


교육부는 교사들을 상대로 2021학년도에는 본격적으로 실시간 양방향 원격 수업을 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교실 현장에서는 이를 위한 기자재가 하나 둘 보급되고 있고, EBS에서는 원격 수업에 최적화된 통합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격으로 실시간 수업을 한다는 것이 교사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교육적으로 보았을 때 작금의 경향이 바람직한 것임을 인정한다. 과제형 원격 수업이 어떤 학생에게는 교사에게 정교화된 개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겠지만, 매일 백 명도 넘는 학생들의 과제를 조사하고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달갑지 않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야 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과제형 원격 수업은 반드시 효율적이지만은 않다. 학생들이 원격 수업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 갖춰지고 출결 처리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수만 있다면, 실시간 양방향 원격 수업은 현재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수업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새 학년도에는 상실과 시행착오의 2020년을 딛고 부족했던 부분을 메워 나갈 수 있는 충실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누군가의 잠을 깨우고자 웃으면서 뺨을 때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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