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 수업을 듣고
첫눈이 내린다. 소복하게 쌓일 모습을 기다렸다.
하얗게 쌓인 눈은 얼마나 뽀얗고 투명할까?
하지만, 첫눈은 첫눈이기에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
다시 눈이 내렸다.
반갑게 눈을 맞으러 간 순간 눈은 비가 되어버렸다.
내 몸을 흠뻑 적시고, 무겁게 만드는 비는 내가 기다리던 눈이 아니었다.
집으로 도망갔다.
또, 다시 눈이 내렸다.
어차피 비가 될 것이기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펄펄 눈이 내리기에 나갔더니 또 비가 되었다.
푹 젖도록 비를 맞았다.
그제야 알았다. 눈은 나의 뜨거움으로 인해 비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축 늘어지고 젖어버린 몸을 보느라 더 많이 헤아려주지 못했음을
나로 인해 비가 된 네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더 이상 흰 눈을 기다리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비가 되어 내리든, 눈이 되어 내리든 너를 맞으러 간다.
진눈깨비를 기다린다.
네가 비가 되고 싶지 않을 때까지
내가 미소 지으며 젖을 수 없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