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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벌레 Feb 27. 2024

진눈깨비

'피해의식' 수업을 듣고

첫눈이 내린다. 소복하게 쌓일 모습을 기다렸다.

하얗게 쌓인 눈은 얼마나 뽀얗고 투명할까?

하지만, 첫눈은 첫눈이기에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


다시 눈이 내렸다.

반갑게 눈을 맞으러 간 순간 눈은 비가 되어버렸다.

내 몸을 흠뻑 적시고, 무겁게 만드는 비는 내가 기다리던 눈이 아니었다.

집으로 도망갔다.


또, 다시 눈이 내렸다.

어차피 비가 될 것이기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펄펄 눈이 내리기에 나갔더니 또 비가 되었다.

푹 젖도록 비를 맞았다.


그제야 알았다. 눈은 나의 뜨거움으로 인해 비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축 늘어지고 젖어버린 몸을 보느라 더 많이 헤아려주지 못했음을

나로 인해 비가 된 네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더 이상 흰 눈을 기다리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비가 되어 내리든, 눈이 되어 내리든 너를 맞으러 간다.


진눈깨비를 기다린다.

네가 비가 되고 싶지 않을 때까지

내가 미소 지으며 젖을 수 없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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