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일지#2
헤어진
오래전
전 남자 친구
빈 하얀 화면에 여러 가지 키워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이것은 참 글로도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오래전 사귀었던 전 남자 친구의 결혼소식을 알게 됐다. 전해 들은 거면 차라리 나았을까?
평소와 같이 근무하던 평일, 점심 식사 후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으며 하릴없이 카카오톡 목록을 살펴보다, 맨 위에 추억의 X의 이름이 뜬 걸 보고 웬걸 했다. 그는 헤어진 이후 늘 언제나 프사가 없었기에. 최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기에 떴을 텐데. 호기심에 눌렀는데... 화사한 웨딩사진이 걸려있었다. 상태명은 2024.04.20.
4월 20일에 결혼하나 보다. 여자친구(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선 아내겠다^^)로 보이는 그녀는 어리고, 예쁘고, 날씬해 보였다. 가뜩이나 요즘 살이 쪄서 외모 자신감이 높지 않아 그런 거부터 먼저 보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난 하던 양치질을 멈추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1,2년 동안은 추석, 설, 생일 등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며 연락해 오던 그였는데 최근 2년 동안은 연락이 없었다. 어렴풋이 그래, 그도 지 짝 찾고 잘 살고 있나 보다 예상은 했지만. 머릿속의 상상과, 실제로 마주한 현실은 달랐고 훨씬 더 끔찍했다. 정말이야 괘씸했다. 뭐가 괘씸하냐면, 나한테 헤어질 때, 서로를 차단하게 되면 서로 인연이 추억인 건데 그거마저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제발 차단하지 말아 달라 그가 애원했다. 난 그걸 지켰을 뿐이었는데 이런 테러를 당할 줄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나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것은 미련? 후한? 안타까움?
어떤 감정의 꼬리표를 달아야 할 눈물인지 알아챌 새도 없이 또르르 액체가 눈에서 흘러나왔다. 영화 속 배우처럼. 친한 회사 동기들에게만 소식을 알리고 그날은 퇴근하고. 운동하고. 그렇게 여느 다른 날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주말, 그다음 주말, 소개팅으로 만나던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면서는 그들에게 집중하느라 생각보다 잊고 잘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할 때나, 퇴근하고 집에 오는 버스 안 등 뭔가에 몰두하지 않을 때면 갑자기 그 웨딩사진의 잔상이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갔고, 그때 느껴지는 그 감정은....
그게 좀 화가 난다. 나도 혹은 내가 그보다 더 빨리 내 짝을 찾아 만천하에 보여줬어야 했는데, 현실의 나는 그냥저냥 솔직히 엄청 끌리지도 않는 소위 말해 육각형의 남자들에게 차이고 있고 말이야. 결혼은 무슨, 연애도 잘 못 하고 있다. 그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약간 우울했다. 징징대고 싶지 않지만 내 마음을 속이고 싶지도 않다. 우울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올 초에 장난으로 지인들에게 아 이렇게 남자가 없으면 그냥 오래 사귀었던 전 남자 친구한테 연락이라도 해볼까? 했던 그 장난도, 이제는 더 이상 칠 수 없으니(유부남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어떻게 치겠냔 말이다.) 진짜로 내 과거의 한 페이지가 종결됐다는 생각이 든다.
종결,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 있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종교도 없는 나지만, 이것이 어떤 내 새 출발의 시초이자 징표가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난 결혼할 거고, 희망과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이제 남은 남자들은 다 별로야라고 믿는 사람에겐 진짜로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고, 나처럼 좋은 사람이 남자 편에도 어딘가 있어라고 믿는 사람에겐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니까. 내가 꿈꾸는 미래로 가는 과정일 뿐인데, 나는 늘 그래왔듯 내가 소망하는 것은 꼭 이루는 사람이니까. 조금 더 가볍게 그 미래로 가는 여정을 받아들여야겠다.
TO.X
잘 가!
내 새 출발을 기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