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은 나의 우울의 단상이며, 정신과 치료 기록입니다. 매월별 기록해 둔 일지를 복원한 것입니다.
1. 3월(치료를 시작한 3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의 기록)
지난 일주일 동안 3일 정도 자기 전에 눈물이 나고, 4일 정도 살기 싫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전에 답답함이 심해 잠들기가 힘들다. 회사에서는 전화도 적고 드물게 스트레스가 적은 일주일이어서 버틸만했다. 약 때문에 몸이 노곤하고 녹아내릴 것 같지만, 기분이 업되는 효과를 아직 크게는 못 느끼겠다. 몰래 먹는 약에 가족들 눈치가 보이고 신경이 쓰인다.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을 텐데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까.
밤마다 약기운에 쳐져 아침까지도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길에 녹초가 된다. 변화라면 기분이 형체 없는 상태랄까 내 마음대로 진흙 주무르듯 만지면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럴 마음도, 힘도 없다는 것. 약기운에서 깨고 나면 딱 회사에 도착할 시간이 되는데 이때쯤 기운이 차려져서 하루 중 가장 상태가 좋아진다. 업되어 있다고 스스로 느껴질 만큼 붕 뜬 상태이다. (내가 먹는 약은 아침, 저녁 두 번 이기에) 점심시간 이후에는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온다. 계속 머리가 아픈데 부작용은 아니겠지. 저녁 먹고 나서 노곤함이 계속되어 약 먹기 전인데도 몸이 저릿저릿한 기분 나쁜 피곤함이 계속된다. 그런 상태로 잠은 안 와서 계속 누워있다가 11시 가까이 돼서야 정신이 들었다. 약 먹고 다시 잤다.
A주사님은 아직 20대이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30살이 될 때까지는 취업을 안 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번 돈을 오직 자신을 위해 쓴다고 했다. A주사님의 우울함 극복 얘기를 듣고 나서 같은 직장인이어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고 쫄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어제 아침과는 전혀 다르게 오늘은 안 졸리고, 노곤하지도 않고 개운했다. 같은 약을 먹었는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신기하다. 약에 취한 느낌이 좋다. 기분이 업되어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약 때문인지 입술이 자꾸 마르고 목이 마르다. 점심에 B주사님과 얘기하고 민원이랑도 트러블 없이 무난하게 넘어가서 내 모습에 만족하기도 했다. 나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처음으로 생각이 들었다.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구나. B주사님은 동료라기보다 삼촌 같다. 어느새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고 진심으로 공감해주신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게 감사할 일이다.
병원 가는 날이다. 상담이 끝나갈 때쯤 눈물이 나서 울고 약을 바꿔주셨다. 좀 졸린 약이 추가된 듯하다. 선생님은 증상에 집중하지만 약 성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불안할 때도 있지만 차라리 모르고 싶기도 하다. 어찌 됐든 자살, 죽음에 대한 생각, 우울감 감소에 도움이 되기만 바란다.
어제 집에 오고서 문득문득 우울한 생각이 치밀어 들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태가 괜찮았다. 자취하던 때보다 집에 가족들이 있어서 그런지, 바꾼 약이 잘 맞는 건지 덜 노곤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가 지속된다. 계속 약 먹어도 되니까 활기차고 싶다. 약을 먹는다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상태가 나아진 게 확연히 느껴지니 너무 좋다. 그래서 조금은 더 슬퍼지기도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주말이었고, 회사에 녹즙도 시키고 택배도 시키고 심지어 내일이 되었으면 바랐다. 약을 먹은 상태가 좋으면서도 그게 익숙해져 또 우울해지고, 더 센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주말에 누워만 있고 힘이 없던걸 생각하면 이번 주말은 아주 많은 일을 했고 잘 해냈다. 하지만 여전히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상태가 아주 나았다. 우울증이 심하지 않은 평상시의 나 같았다.
이번 주는 새로운 것들이 많아 기대되는 한 주지만, 기분이 많이 나아졌지만, 왜 이렇게 세상을 산다는 것이 힘든지 모르겠다. 웹툰을 보면서도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시큰시큰하다. 왜 모두들 힘들어야 할까.
충동적인 행동을 자주 하게 된다. 갑자기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던가, 돈을 자주 쓴다던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은 괜찮지만 조금 걱정이 된다.
바뀐 약을 먹으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약 때문에 기분이 업된 것도 덜 느껴진다. 병원에 가면 약을 계속 먹고 싶다는 말부터 할 것 같다. 기분 탓인지 절제 없이 돈을 쓰는 것 같고 평소 나답지 않게 한 단계 생각을 덜 거치고 돈을 쓰게 된다. 조금 걱정이다. 기분만 좋으면 된 건가.. 그리고 우리 팀 주사님한테도 말해야 할 텐데. 완전히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고 속에 잠재되어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일상생활 가능이라는 점에 큰 의의를 둔다. 또, 일을 할 때도 의욕이 조금 생겨서 너무나 신기하다.
(3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