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도 많고 일도 많고 변화도 많았던 일 년이었다. 내가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약도 먹고 휴직을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나도 몰랐던 일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나 덤덤해졌다.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몸서리쳐질 때가 있다. 그래도 담담해지고 힘들었던 기억이 잊혀 간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지난 2년 동안 좋은 기억들 뒤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는 안다. 매일 밤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먹은 것들을 다 게워내고, 어디서나 무표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나. 의지할 사람을 만나면 눈물부터 쏟던 나였다. 나 자신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
내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된 27살이었다. 아마 내년도 그럴 것 같다. 2021년에는 더 나은 내가 되어있을지 나는 모른다. 아마 올해보다, 그동안보다 더 힘들어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아직 가늠이 안 간다. 그래도 이제는 그만 숨고, 그만 피하고 내 발로 나아가 봐야지. 내 삶은 내 것이라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 적이 없었다. 반성은 그만하고 움직여보자.
해보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해봤다. 휴직도 하고, 글도 써보고, 그 글을 누군가가 읽고, 오프라인 독서모임으로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눠보고, 책 읽느라 밤도 새보고, 목공도 배워보고, 새로운 꿈을 위해 공부도 해봤다. 굵직한 것 말고도 자잘하게 도전해 본 것들도 많다. 처음 휴직 버킷리스트를 쓸 때 이걸 다 지울 수 있을까 싶었다. 연초에 세우는 계획처럼 어느새 사라져 가는 그런 것들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대부분을 이루었다. 생각보다 나는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루한 장마 같던 오랜 연애도 끝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났다. 매번, 연애를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중이다.
앞으로 해볼 것들도 무궁무진할 거다. 올해가 끝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지만, 올해는 정말 삶을 다시 태어나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행복할 거리도 분명 작지만 있을 거다. 그러니까 조금 더 살자. 고생했어. 조금만 더 힘 내보자.
이제는 우울증 완치 후 일기를 쓰고 싶다. 나 스스로 이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무 생각 없던(건 아니지만 덜 심각했던) 학창 시절처럼 하루하루에만 집중하며 살자.
살. 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일이다.
고생 많았습니다.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고생 많았습니다. 분명 우리는 앞으로도 고생길이 열려있을 거예요. 여러 명이 말하더군요. 삶은 고통이라고. 그래도 누군가 삶을 같이 위로할 때, 고통만은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당신을, 나를 위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