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리 만만한 인생

by 고요

아침에 눈을 떴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생각이 또 길을 내고 깊게 파고든다.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할 것임을 알면서도 문득문득 그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버리게 된다. 자학이라도 해야 편해지는 것일까? 어쩌면 스스로를 벌하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상황을 계속 반복하고 반복한다. 그러면, 여지없이 호흡이 가빠진다. 호흡을 조절하지 못하면 얼굴로 열이 오른다. 그리고 막힌다.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섰다. 빚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만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유독 빚을 두려워했기에 남들이 하는 투자라는 것도 하지 못하고 따박 따박 그냥 솔직하게 돈을 모았었다. 그런 나에게 수천의 빚이 생기고 억 단위의 돈이 통장에서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생겼다. 세상이 바뀌어 남은 오십 년을 준비해야 하는 갈 길이 먼 오십 대이지만, 그래도 세상의 쓴맛 단맛을 맛 본 노련하지는 않아도 유연한 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리 쉬운 삶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좋은 일들과 좋은 사람, 좋은 상황들이 만들어지면서 힘든 고비들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사이즈가 다르다.


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이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지고 있는 성향과 살아온 방식에 따라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 회피하고 도망가는 사람 , 또 다른 일로 고통을 밀어내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다. 고통의 원인이 사람이면 회피하고 마주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의도치 않게 정리될 수도 있다. 가능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미루다 해결한다. 고통을 정면으로 맞닥드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타격이 너무 크다. 회복하기에는 너무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그 흔하고 낡은 방식인 검찰 사칭, 금융감독원 사칭의 그물에 걸려 100만 원씩 꼬박 12~3년을 저축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3일 만에 날렸다.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공모죄가 더해져서 그 사람도 공범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나는 어떻게 믿었을까? 죄가 없는 데 죄가 있다고 몰아치니 겁이 났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것이 검찰이라는 금융감독원 직원의 말에 속아 그 순간부터 나의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금통장에 있는 돈부터 현금흐름을 조회한다면서 인출하게 했었다. 사람은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난 다음부터는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본성이 있다고 한다. 나도 그랬었다. 처음에는 작은 돈부터 인출하기 시작해서 점점 액수가 커졌다. 통장의 돈을 탈탈 털어 알거지를 만들더니 보험과 카드대출을 받게 했었다. 계속 전화하는 과정에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일이 몰려 바쁘기도 했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정신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대검찰청을 조회해서 전화를 걸었다. 김현우 검사가 있는지 물어봤다. 검사가 있었고 왜 그러냐는 질문과 함께 연결을 원하냐고 상대편 상담원이 물어왔다. "아니예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있으면 됬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핸드폰에 악성앱이 심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기에 내가 거는 전화가 범죄자들에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모른 체 검사를 의심했던 나를 미안해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피의자신분에서 벗어나는 동시 범죄자를 잡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고 해서 돈을 인출하고 직접 전달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일억 오천의 돈을 범죄자들 손에 쥐어주었다. 처음에는 일억 오천이라는 숫자가 그냥 멀리 있는 숫자로 느껴졌었다. 속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를 둘러싼 공간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아득할 뿐,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조서에 사인을 하는 손이 덜덜 떨려 쓸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피해액을 정리하고 갚아야 할 돈과 이자를 계산하는 순간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비어있는 달 2020

허망하고 기가 막혔다. 정말 그가 소비자보호원 직원으로, 금융감독원 담당자로 또 80여 명이 연루된 초대형 금융사기단을 검거하기 위해 작전중인 검사인 줄 알았다. 검사는 나를 범죄자 취급했고 다그쳤다. 갑자기 내가 만들지도 않은 가짜통장으로 피해자가 2~30명이 넘는다는 말에 겁이 났고 금융사기단이 꼭 검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형처럼 움직였다. 은행 창구직원이 연루된 것이라고 하니

은행업무를 보는 과정에서도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몰랐었다. 아니 범죄자의 말을 믿고 은행 직원을 의심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었다. 내 명의로 된 대포통장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며 현금을 찾아 번호를 조회해야 한다는 말에 현금으로 찾아 그대로 전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만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나의 은행 잔고를 거덜 냈고 대출까지 받게 해서 빚더미에 앉게 했다. 수 천만 원을 바꾸는 그 와중에도 지갑 안에 가득 찬 동전을 5천 원짜리 지폐로 바꾸는 갖은 궁상을 은행 창구 앞에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은행의 협조를 받았다면서 cctv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제 그들은 내가 입은 옷과 머리스타일 내가 어떤 직원과 말을 했던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카메라를 통해 그들은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돈으로 시작해서 미션 수행하듯이 이것만 하면 피의자 신분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준 현금을 찾을 수 있다는 확인서를 보내주었다. 침착한 나의 행동에 대해 놀랍다고 했었다. 그들은 사람의 심리를 수준높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과 오갔던 많은 말들과 나의 행동을 되돌려 보면서 그 어떤 이성도 합리적인 사고도 하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감은 이제 나자신을 가르키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왜 사회악인지 알 수 있었다.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럽게 자책과 분노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분노의 대상에 나를 가져다 놓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책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아이들에 대한, 그리고 열심히 살았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갚지 못할 것 같은 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책감에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만든 자신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람이 힘든 건 한 달 두 달, 매일매일 죽을 만큼 힘든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이다. 순간을 견디지 못해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사회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마땅한 해결책도 없다고 한다. 한번 당하면 찾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은 그만큼 그들을 체포하지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났을까? 너무 바빴고 너무 순진해서 라는 사람들의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라는 말로 귀에 와서 박혔다.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꽤나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했었다. 욕심내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능력 이상의 욕심도 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KakaoTalk_20201026_090915223_14.jpg 어느 유쾌한 자유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