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이 없는 두꺼운 책

by 오성진

이사를 하고 나서 보이지 않던 책들을 다시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 중에 분실한 것으로 생각을 했지요. 두 권 모두 매우 두꺼워서 책값도 상당히 비쌌지만, 내용이 매우 좋아서 다시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밑에 문이 달린 곳을 열어보고서는 그곳에 세 권의 책이 보였습니다. 두 권은 바로 지금 읽고 있는 책이었고, 나머지 한 권은 산 기억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무려 9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이 정도의 책을 구입했다면, 어떤 저자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책을 이번 설 연휴 동안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작부터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설을 세워 놓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가설을 근거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기술해 나가는데,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을 해도 잘못된 가설로 인해서 실제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계속 느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저명한 학자, 저널리스트, 유명한 미국계 신문, 잡지였다는 데 있습니다.

읽다 보면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것이 얻어지리라고 생각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계속 읽어갔는데, 도대체 언제 결론을 내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처에 납득이 되지 않는 가설이 계속 세워지고, 그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는 추가적인 설명은 아무리 읽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맨 마지막 창(章)의 제목은 "안생의 의미"입니다.



자유의지는 사건들과 상태들의 인과적 연쇄가 아닌 것이 자명하다. 의미의 조합적 측면(말이나 생각이 어떻게 결합하여 문장이나 명제의 의미가 되는가)은 밝혀졌지만 의미의 핵심, 즉 어떤 것을 지시하는 단순한 행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지시된 대상과 지시하는 개인 간의 어떤 인과관계와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식 역시 인식자가 한 번도 부딪혀 본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다는 모순을 던져 준다. 우리가 의식, 자아, 의지, 지식의 수수께끼들에 속수무책인 것은 그 문제들의 본질과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갖춰 준 계산 장치들 간의 불일치 때문일 것이다.

이 추측이 옳다면, 우리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괴롭힘을 선사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정하기 힘든 존재인 우리의 의식은 영원히 우리의 개념적 이해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 그것은 기대할 만한 일이고 심지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연계는 생물체들과 그 부분들의 특화된 설계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독수리가 땅 위에서 어색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을 놀리지 않고, 눈이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하나의 설계는 다른 과제들과 타협할 때에만 자신의 과제를 탁월하게 해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불가사의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좌절감은 인간의 마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 즉 단어와 문자, 이론과 방정식, 시와 선율, 농담과 이야기의 세계를 열었던 조합적 마음을 얻기 위해 지불한 비용일 것이다.


착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시작부터 끝까지가 이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기술된 책.

아쉬움 없이 창고에 넣어 버립니다.


책 제목을 적지 않은 것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깨달을 수 있는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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