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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 방랑자 Oct 26. 2019

두 세계의 충돌

우리 엄마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나와 엄마는 조금 친해지기 어려운 사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단지 나에게 엄마는 한 명이지만 엄마는 네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 엄마와 단둘이 무엇을 한다는 일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아픔과 수고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서 보았고 그녀를 마음 깊이 동정하고 사랑했지만  

엄마라면 원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이기적이고 무신경한 나의 어리석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나 말고 다른 3명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어떤 친밀함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엄마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순간은 새롭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를 처음 태어난 날부터 그저 사랑하기만 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당연하게 그녀를 이해하고 깊이 사랑했다.

엄마도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서 서로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그랬기에 이렇게 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이는 대단한 결정을 나 혼자 내리고 곧장 저질러버린 현시점에서 새삼스레 서로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격렬하게 대립하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엄마는 가끔 신경질적이고 우울함이 차오를 때 내 마음을 아프게 할퀴긴 했지만 (거의 결혼 문제로)

그런 모습을 뺀 다른 대부분의 모습은 애증의 아빠를 인류애로 보듬고 와중에 4남매를 키우면서 지금은 두 명의 손녀까지 야무지게 키워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엄마였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내 고양이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악담을 퍼부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내 마음을 사정없이 날카로운 말로 찔러댔다.


현관에서 들어와 앉지도 않고 벌벌 떨면서 당장 갖다 주라고, 다시 버리라고 발을 동동 굴렸다.

너 진짜 시집 안 가려고 그래? 저런 거 있으면 애도 못 낳아. 저게 애 낳으면 질투해서 애도 괴롭혀. 안돼 진짜 안돼. 난 못 봐. 그럼 나 이제 앞으로 너희 집 안가. 니 애도 안 봐줘. 안 보고 살 거야.


엄마의 수많은 모습을 보고 자랐지만 저렇게 싫다고 바들바들 떠는 엄마의 모습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도 다른 문제였으면 엄마가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겠지만 이제 고양이는 나에게 물러설 수 없는 문제였다.

버려진 아이를 데려와서 다시 버리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거의 울기 직전인 엄마를 데리고 나와 일단 저녁을 먹었다.

고양이가 눈에 안보이니 비교적 차분해진 엄마는 단호하게 안돼 안돼 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했고 나는 안 돼가 5번쯤 나오면 1번쯤 내가 알아서 할게 로 대꾸했다.


엄마와 내가 살아온 30여 년 동안 이렇게 극렬하게 두 세계가 대립한 건 처음이었다.

나는 대단한 딸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엄마의 자랑이 되기 위해 조금은 피곤하게 살아왔던 이경옥 여사의 큰딸이었다.

근 5년 동안은 결혼을 하지 못해 엄마의 자랑에서 엄마의 콤플렉스로 이름표를 바꿔달아 불효녀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결혼 빼고는 엄마가 하자는 건 다하는 미안한 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고양이만은 절대 안 된다고 날을 새웠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아프게 상처 받았지만 담담한 척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용한 불꽃이 엄마와 나 사이에서 쉴 새 없이 튀었고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집으로 가고 다시 평화가 찾아온 그날 밤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고양이와 나밖에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나 말고는 진짜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하구나.


녀석은 우리집에 온지 3일째가 되서야 내 눈을 보고 눈인사를 해줬다. 소스윗...


지켜줘야지. 온 가족이 사랑해주는 다른 고양이들보다 더 사랑해줘야지.

엄마가 그럴수록 나는 이 처량한 고양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견고해져 갔다.


우리 둘만이라도 이 세계가 꽉 차는 느낌이다. 이거면 됐다.

나는 절대 너를 떠나가지 않을게. 절대 버리지 않을게.

애정을 담아 고양이를 어루만지자 고양이는 내 손길에 녹아서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랫만에 꽉 찬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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