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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Candy Oct 10. 2023

양극화 (Polarization)

시급한 과제

'우리 사회의 문제'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낮은 경제성장, 저출산, 극심한 사회 갈등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양극화라는 단어로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양극화란 소위 말하는 중간 지대(Middle Ground, Gray Zone)가 점차 사라지고 양쪽 극단의 입장만 남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양극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경제적 양극화입니다. 양극화의 전통적 의미에 가깝습니다. '돈이 돈을 낳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원래 가진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자산증식을 달성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지요. 어쩌면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이 마치 자석처럼 사람들을 양 끝으로(가진 자와 없는 자로) 끌어당기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는 정치적 양극화입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는 서로 밥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정치적 양극화 문제가 존재합니다. 민주당과 국민의 힘으로 대표되는 양 거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치공간에서, 언론을 통해, 또는 일상에서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명절에 친척들끼리 모이면 정치, 종교 얘기는 피하라고들 하는데, 아마 정치 얘기가 나오면 십중팔구 견해가 다른 이들끼리 언쟁을 벌이게 되고 즐거운 명절을 망치기 때문이겠지요.


셋째는 사회적 양극화입니다. 젠더 이슈, 환경 문제, 동물권리 등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주제에 대한 의견 역시 양극화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합니다. 드디어 양쪽 끝으로 갈라져서 싸우는 모습이 우리 일상생활에도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언쟁하고, 소리 지르고, 인신 공격하며, 심지어 물리적 충돌까지로 번지는 <이쪽 끝과 저쪽 끝>의 대결은 국회를 넘어 시민들의 일상과 핸드폰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견해가 다른 이들끼리 협력해서 풀어야만 하는 과제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행정부나 의회를 운영하는(소위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정 내에서, 일터에서, 온갖 집단에서 서로 견해가 다른 이들끼리의 협동은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분명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갈등은 많고 협력은 적어질 것이므로, 사회의 건강한 자정기능에 문제가 생깁니다.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입니다. 정치인들끼리 다투는 것만 봐도 한숨이 나는데, 중립적인 영상이나 인터넷 기사에서조차 다투고 있는 댓글들을 볼 때 사람들이 쉽게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 못할 것 같다'는 식의 냉소주의나 패배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효능감이 낮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런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법은 무엇일까요? 간략하게 붙여 보고자 합니다. 먼저 경제적 양극화의 원인은 어려워서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 써 보겠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인들이 주로 빚어내는 정치문화에 원인을 두고 있을지 모릅니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민을 위해 양쪽 입장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취하자는 식의 논리를 펴는 인물은 정치권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전에 했던 말을 바꾸더라도 자신의 당을 위해, 당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투견처럼 맹렬하고 여우처럼 영악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인물을 정치권에서는 선호합니다. 그래야 공천도 받기 쉽겠지요. 예를 들어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정당에 가깝지만 복지에 있어서는 좌파정당에 가까운 인물이 분명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정치적 역학관계'에서는 그런 양다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양 거대정당이 국민의 삶과 행복에 진정으로 필요한 정책에 대한 논의는 고이 접어 두고, 양 극단으로 갈려서 무의미한 당파 싸움을 무한대로 생산하는 데에 국민이 제동을 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하고 거의 유일한 방법은 투표입니다. 투표를 야당에 해서 현 정부를 몰아낸다고 해도, 양 정당이 100년도 더 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처리문제를 끌고 와서 수많은 사회현안을 내팽개친 채로 대립하는 것과 같은 무의미한 정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듯 합니다. 해서 투표 외의 방법으로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권에 반영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적 양극화의 경우 알고리즘과 온라인공간의 확대가 한 몫을 했습니다. 가령 젠더 문제에 대해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댓글로 견해충돌을 보게 되면, 정말 찬성/반대 양 선택지밖에 없는 듯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하지만 현실의 실제 인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상의 대중과는 다르게 양 극단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극단적이고 격렬한 주장일수록 더 많은 주목을 받는 온라인공간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방대한 정보가 나뒹구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동그란 것은 더 동그랗게, 각진 것은 더 확실히 각지게 만들어야 하겠지요. 문제는 온라인 상에서 양 끝으로 잡아당겨진 사람들의 견해나 의견이 실제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여,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의 타협이나 의견교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시민사회가 활기를 품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공식적, 비공식적 시민사회모임이 더 다양하게 전개될수록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익명의 탈 뒤에서 서로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이상함', '불가해함' 은 상당히 과장된 것임을 인지할 때 비로소 대화와 협력이 사회 곳곳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경제적 / 정치적 / 사회적 양극화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요. 그러나 극단적인 양쪽 끝으로 갈려서 사회에 건강한 토론과 논의보다는 반대 쪽을 무화하고 상처주기 위한 다툼이 점점 늘어나는 양상은 분명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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